대화

 

갑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친구다. 원칙과 규칙을 존중하는 이른바 모범적인 사람이다. 그의 조부는 지방 부호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대다가 몰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이른바 수구꼴통으로 분류된다. 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사법시험 공부를 하다가 실패한 백수다. 일찍이 우리사회의 권력자들의 비리가 심각함을 보고 시민의 권리를 찾는 시민운동 단체에 관여해온 친구다. 수꼴에서 좌빨이라 부르는 인물이다. 필자는 이 두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므로 가끔 셋이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느 날 갑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셋이 주막에서 막걸리 사발을 마주했다. 선거철이므로 어쩌다 이야기가 정치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갑은 을이 좌빨인 줄 모르고, 을은 갑이 수꼴인 줄 모르는 상태다.

갑: 이번 대선에 나온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유력한 후보 같은가?

을: 자네가 서울사람이니 우리보다 더 잘 알지 않겠나.

갑: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경험이 많은 박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문과 안은 믿지를 못하겠어. 처음에 정치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었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을: (물끄러미 갑을 바라보다가) 자네 혹시 조선일보 보는가?

갑: 어떻게 알았어? 조선일보가 그래도 가장 믿을만한 신문 아닌가?

을: 역시 그렇군. 우리는 그걸 신문이라 하지 않고 찌라시라 하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던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직하고 권력의 편에서 왜곡보도를 일삼는 신문 아닌가?

갑: 하기야 서울대 나와서 조선일보 기자하던 우리 종형도 그때 해직 당했지.

을: 그런 신문의 보도를 자네는 그대로 외우고 있네. 나는 자네 조부께서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일을 알고 있는데, 그 돈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조 단위가 넘을 걸세.

갑: 맞아, 조부님이 그 재산만 지켰더라면 나는 넉넉하게 살았을 걸세.

을: 그런 가문의 후손이 어찌 조선일보의 보도를 그대로 믿고 친일을 했던 독재자의 딸을 지지하다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네.

갑: 독재자의 딸이라서 대통령 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리고 나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대통령이 제일 훌륭했다고 생각해. 가난하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게 해준 분이 아닌가? 그분이 아니면 우리가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겠나?

을: 독재자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니 문제지. 그리고 나는 그사람 혼자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네. 산업화 시기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한 사람들의 희생은 어떻게 하고? 그리고 그분은 다가끼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로 창씨개명을 하고 간도 토벌대에서 독립군울 잡다가 해방공간에서는 남노당 활동을 했고, 4,19이후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아닌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수없이 희생시키지 않았던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의 후손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가?

갑: 그 분이 그럴 리가 없네. 그건 처음 듣는 소리일세. 그런데 자네는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보게. 삐딱하게 보지 말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자면 작은 잘못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두 사람의 대화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 생각에 대한 변명을 견강부회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말하기가 결코 제대로 된 대화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런 대화 끝에는 뜨악해지기 쉽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낳은 지극히 서글픈 풍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글 / 권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