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명분, 민주화 + 경제성장 +소득재분배 +민족통일

 

양백산인 박희용

 

 

어느 시대나 명분의식의 건전한 작용은 한 사회를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하며, 사회를 강건하게 통합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명분의식의 건전한 작용은 새 시대의 필수이다. 필수이기 위해서는 현대사에 등장했던 몇 번 특수한 명분이 가져온 빛과 어둠을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과거에 박정희와 전두환이가 군벌반란을 감행하면서 안보강화와 경제발전이란 특수한 명분을 제시하여 권력 장악에 성공하고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소수자들의 것이었을 뿐 다수 국민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엔 권좌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소수의 야심가들이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여 특수한 명분을 제시하는 자체가 불법으로 국권을 찬탈하려는 범죄인 것이다.

시대 상황은 갑자기 의도적인 인위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의 내공이 쌓여 서서히 굳어진다. 광복 이후 좌우투쟁, 한국전쟁, 극우독재, 군벌독재 등을 겪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날이 갈수록 가치를 빛내고 있는 까닭은 과거의 고통을 밑거름으로 삼아 미래를 밝히자는 민심이 대세를 이루며 시대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두 세대가 흐르면서 이제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통일 등의 제반 국가 경영의 프레임에 대한 명분이 국민들에게 일반화 되어 있다. 그 덕분으로 분단국인 한국은 세계 10위 권 안에 드는 경제력과 비교적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13년은 새 정치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한다. 12월 18일 대선을 앞두고 세 명의 후보가 저마다 새 정치의 적임자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나타나는 시대명분과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시대명분이 동질성을 갖는지의 여부는 향후 5년을 좌우하는 중요성을 갖는다. 현재 보통의 한국인에게 형성되고 있는 여러 부문에서의 명분의식을 살펴보자.

정치적인 면에서는 민주주의가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가 덜 굳은 시멘트 판을 휘저으며 훼방하였지만 현명하고 끈기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다시 시멘트 판을 다독여 그들의 발자국을 지웠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물질주의, 사회 양극화, 4대강 유린, 남북관계 악화, 민주주의 퇴보 등의 실정을 자행했지만 한 달도 안 남은 18대 대선에선 분명 역사관이 뚜렷한 새 대통령이 선출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다시 힘차게 약동할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 10년 동안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굳었기 때문에 5년 동안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현대사를 일관하는 거대한 명분이 물질주의자들의 농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민주진영의 후보가 당선되면 다시는 민주주의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국민들의 명분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시급한 일이 언론 민주화이다. 사유 권력화 한 언론을 해체하여 공정화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자본의 독과점금지법을 제정하고 인사권을 주주와 기자들이 민주투표로 선출한 이사회에서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정보도권을 강화하고 오보 시에는 해당 기자와 편집권자를 문책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정당정치 구조의 확립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집권당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조치하고 집권당의 의원총회에서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와 의결이 되도록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현재의 5년 단임제가 좋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려면 다시 개헌론 때문에 국론이 분열하고, 재선하기 위하여 무리수를 두어 국정이 혼란해지고 민주주의가 훼손당하기 쉽다. 그것보다는 단임제가 깨끗하다. 정당정치가 활성화 되어 집권당의 정책이 국정의 방향이 되고, 후계 대통령이 그 정당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단임제의 미흡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국회의원의 수는 현재대로 300명으로 하고 비례대표 명부는 당원들의 직접투표로 정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사업보다는 국가 경영에 관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검찰과 사법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권력집단의 속성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법원과 검찰의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과 법무부장관이 갖되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부단한 관찰이 필요하다.

 

경제정책 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민주경제의 확립이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국민경제가 건강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대내적인 차원이고, 대외적으로 경제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재벌이 필수적이다. 재벌이 글로벌 경제시대에 적합한 조직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까닭은 재벌이 개척정신을 갖고 외국으로 진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려 하지 않고 앉아서 편하게 장사할 수 있는 자잘한 분야의 내수시장까지 독점하려는 재벌답지 못한 경영책략 때문이다. 명색이 한국의 유명한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삼켜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말이다. 이런 짓거리에 탐닉하다보니 정신은 미숙하나 덩치만 비대해진 공룡이 되어버렸다. 재벌이 공룡이 되어선 안 된다. 계속 공룡이다가는 서로 경쟁적으로 주변의 먹이를 다 먹어 치우고는 마침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재벌은 코끼리가 되어야 한다. 덩치는 크나 유순하고 사리분별을 잘하여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코끼리 같은 재벌의 모습이라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지나치게 비만한 재벌을 근육질화 시켜 세계를 무대로 뛸 활동력을 강화시키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계층 간 불화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부자들이 소유욕에 상처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여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복지정책을 착실하게 전개해야 한다. 재벌과 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우거나 닦달하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긍지심을 갖고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할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들을 공공의 적으로 보는 서민들의 관점을 불식시켜야 하고, 그들이 국가를 경영할 세금의 대부분을 내고 국민들의 복지를 향상할 자금을 댄다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기제를 제공해야 한다. 재벌이 명분론적 정당성을 품을 때 국가경제의 중심축으로 우뚝 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국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권리이고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가난은 불편하고 부끄럽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봉건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민주주의 시대에는 자기 노력에 따라 부자가 될 수 있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있고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번듯한 신체와 노동력을 가졌으면서도 일은 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이나 받으려 하면서 부자들에게 적개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장애인이나 병자, 노동력을 소진한 노인들과 고아들에게는 적당한 복지를 펴야하지만, 노동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이고 일률적인 복지를 주기보다는 자립하여 일할 수 있는 의지와 여건을 조성하여 주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축적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공적을 한순간에 파괴할 수 있는 뇌관이다. 그 뇌관이 터지면 전쟁이란 블랙홀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먼저 뇌관이 발화되어야 화약이 폭발하므로, 전쟁을 방지하자면 뇌관인 남북관계를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남한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로 대북정책이 소수 권력자들의 수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협의에서 나오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만, 북한은 전제군주 일인 지배체제로 대남정책이 소수에서 일방적으로 나오고 검토 없이 과격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것이 문제이다.

분단 이후 67년의 시간이 흘렀다. 초기의 조급한 통일의지도 세월과 함께 녹슬고, 남과 북이 한 나라라는 뿌리에서 나왔으나 나날이 갈수록 다른 나라로 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고 있다. 통일은 절대적인 목표이지만, 다시 전쟁을 거쳐야한다면 단연코 통일을 거절하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통일하기보다는 양국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교류와 협력을 하는 방법이 가장 타당성을 가진다. 이제는 무력 사용이 공멸이라는 인식이 남북의 지도층과 국민들에게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2013년에 남쪽에 다시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인 남북협상이 전개될 것이다. 남쪽에서 염려하는 바인 남침은 북한 국력이 작아서 단기적으로는 전투에서 승리해도 장기적으로는 전쟁에서 패할 것을 잘 아는 북한 지배층의 판단 때문에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으며, 북쪽에서 염려하는 바인 북침은 대통령 개인과 소수 집권층이 국회와 국민들의 동의 없이 자의로 저지를 수 없도록 법과 제도적으로 통제되고 있으며, 미국의 북폭이나 북침 문제도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대내외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남한과 북한이 2013년 봄에는 다시 대화와 협상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결과 전쟁보다는 대화와 협상이 훨씬 이득이 된다는 점은 남북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인식하니, 새로 시작하는 대회에서는 욕심내지 말고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체결한 남북합의안대로만 일단 시행하면 될 것이다. 결과에 따라 다음 정권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남북협력 사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기와 냉전 대결기에 서로 원수가 된 남북의 노년 세대들이 거의 다 사망하였기 때문에 감정적인 면에서 한결 유연성이 있을 것이다. 현재인들은 과거인에게 빚진 게 없다. 왜냐면 한국전쟁기에 살아남은 사람이 남긴 씨앗이 현재인이기 때문이다. 총각으로 죽은 자의 씨는 끊어졌다. 어린 나를 놔두고 전쟁 중에 부모가 죽었을 수도 있지만, 전쟁에서 나의 부모가 살아났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원수진 일이 없다. 그러므로 부모를 죽인 ‘불공대천지원수’라는 말은 명분적 정당성이 미약하다.

2013년을 맞이하는 남북 지식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온 세계 각국이 저마다 살려고 아우성치는 장엄한 생존경쟁의 지구에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이 서로 싸워봐야 이득 되는 게 추호도 없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권력은 국민들이 좀 잘 살게 해달라고 내게 한 부탁이며, 남북에 가득한 무력은 한반도 곳곳에 살고 있는 동족이 마련해준 것이다. 권력으로 사회를 안정되게 하고, 무력으로 다시는 외침을 당하지 않는 한반도를 만들어 달라는 겨레의 소망이 절절하다. 권력으로 일신의 부귀를 탐하고 무력으로 동족을 살상하라는 게 아니다. 남과 북의 지식인들이 권력과 무력의 명분론적 정당성을 뚜렷이 하여야만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