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에 대하여


그 불거져 나온 이마의 핏줄을 보고 있노라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 브레히트,「악한 자의 가면」중에서  


깊은 밤에 고등학생이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 평화롭게 살던 중년 부부의 집으로 돌진했다.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 기자가 아이 집으로 찾아가자 아이 아버지는 문도 열어주지 않고 말했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모르는 사람한테 말해야 해요?”
아이 아버지는 이 세상에 도둑놈 아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처음엔 그도 선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온갖 세상의 쓴맛을 맛보며 차츰 악하게 변해갔을 것이다. 결국엔 이마에 핏줄이 불거져 나온 악마 형상의 얼굴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숨쉬기 체온조절 등을 관장하는 파충류 뇌(뇌간), 감정 기억 성욕 식욕을 관할하는 포유류 뇌(변연계), 이성을 관장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영장류 뇌(전두엽)가 함께 존재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 모든 뇌의 기능을 쓰고 살아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 그런데 악하게 살게 되면 인간 고유의 뇌(전두엽)를 거의 쓰지 않고 살게 되어 포유류나 파충류처럼 살게 된다.
예수는 ‘이 세상을 다 얻더라도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말했다.

소탐대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는 목숨까지 걸면서 큰 이익엔 아예 눈을 감고 살아간다. 다들 마음의 눈이 멀어 버렸다.
아들이 사고를 내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는데도 뻔뻔한 인간. 우리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우리는 뻔뻔하게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얼마나 뻔뻔하게 사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런 괴물들과 (마음속에서) 싸우다 보니 니체의 말대로 우리 모두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흐려지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하지만 그렇게 악마가 되어 얻은 것들이 영혼을 잃어버렸는데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선하게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남을 위해 행하는 이타주의를 잘못 교육 받아 선행은 남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이런 선행은 노예의 도덕이다.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게 되면 자신을 위하는 삶과 남을 위하는 삶이 결국엔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전두엽의 기능이다.
우리는 늘 눈 코 뜰새 없이 헉헉대며 열심히 사는데도 가슴이 항상 헛헛하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지 못한 죄에 대한 벌이다.  
삼라만상 다 저 태어난 모습으로 사는데 인간만이 태어나지 않은 모습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