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에 실린 시 중에서 강과 관련된 시만 뽑았습니다... 

수록 작가:  권선희 김건중 김송배 김주완 김학천 문인수 백종성 성춘복

                      엄영란 엄재국 위초하 이경림 이우걸 이은 전선구 정숙 조영일 황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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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강


 권선희


 

 실컷 울고 난 하늘

 퉁퉁 부은 눈두덩이 붉다


 돌아보지 않은지 오랜

 먼지 쌓인 갈피

 후박나무 아래서 바라 본

 바래지 않은

 약속 한 장


 배반과 능욕의 숲을 돌아 나가야

 비로소 닿을

 저,

 말줄임표


 떠나지 않고 흐르는

 저,

 사람



낙동강


김 건 중



그 강은

우리의 심장을 안고

천만년 흐르던

물줄기

온갖 역사를 안고

말없이 흘러


어디서

누굴 만나도

우리의 위대한

삶의 역사를

그리고 평화를

지켜본 그대로

노래하는 강물은

오늘도

내일의 역사를 위해

그렇게 흐른다

 




물 詩 . 13

  -바슐라르의 물


김송배



물이 꿈을 꾸고 있었다

봄물 호수에는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별들이

찰랑찰랑 춤춘다


잠자는 물은 언제나 평화롭다

그의 생애에 악몽은 없었을까

가을 물새 한 마리 한가롭다

하늘도 파아랗다


그는 물에서 세상을 읽었다

여름 난폭한 물은 우주를 뒤흔들고

사람을 재앙으로 파묻는다

세상은 언제나 위험하다


다시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어렵게 물길을 트며

그에게 점지된 운명을 헤쳐 떠난다

절망과 희망을 강에서 모두 헹군다



 

겨울강 1


김주완



투신하던 보름달이 튕겨져 나와

은빛 가루로 부서진다


결빙된 강물

수정 같은 얼음판이 거부하는 것이다

안온한 탐닉은 끝났다

한때,

몸 담그고 살 섞어 몽롱했던 황홀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투명한 냉혈성의 배반 위에서

부서진 달빛 가루 무안하여

돌아서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


― 화장대 유리판에 쏟아져 반짝이는 백분白粉가루


 



강 이 여


김학천[중국]



만약 아직도 칠색 무지개의 허리를

한 모퉁이의 장벽처럼

의지할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수 있으리


가장 적막한

한 줄기의 강처럼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르면서

사랑하는 사연을 엮어 가리


고향의 줄줄이 이어진 논밭과

찬연한 해바라기밭은 황홀하기만하고

달빛아래 그 사랑은

어쩐지 진실을 외면하려는 듯하다


자기의 령혼을 품에안고

생명의 환상곡을 연주할때

아름다운 그 자세는

허무한 인생을 무색하게 한다


강이여

그래서 강은 세월과함께 흐르고

력사와 시대와 함께호흡하면서

끈질기게 꿈으로 꿈으로 흘러든다




 


두물머리의 눈


문 인 수



  낙동강 금호강 두 물머리가 거칠게 합수하는 角,

  삼각주엔 그러나 부드러운 풀이 많다.

  풀 뜯는 저녁노을이 붉다. 붉게 맞닥뜨린 뿔, 그러나

  뿔의 뿌리는 슬프다.* 강물은 바로 여기서 굵게 부풀어 더 깊이 풀리며 흘러가

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옛날 우리네 아버지들의 물꼬다툼이나 6.25전쟁 같은 동족상잔은

  초식성? 싸우는 소 두 눈은 커다랗게 젖어있다.






*졸시, 「뿔의 뿌리는 슬프다」에서 빌림.



 


낙동강


백종성



발밑으로 스며 나오는 모래 밟으며

구름 위에 가려진

칠백리 강 한 모롱이에 흔적 남긴다


허리 잘린 동강난 슬픈 다리는

붕대를 감았고

그의 얼굴은 기름때 찌들어

숨구멍 속 조개무지는 신음소리 지른다


도도하게 흘러라

지쳐있는 너의 뒤안길

구석구석 멍든 눈 흘김은

철로 위에 갈아 뭉개 버려라


내일이면

대순이 속살을 드러내고

피라미 떼들은 물살을 가르며

망각의 강 저편에서 다가온다.



내 고향의 강


성춘복



비 내려 땅 적시고

그 물 받아 안아

다시 흙으로 굳히는 물주기


잎새맞이, 꽃잎맞이 춤으로

거푸 하늘을 받들다가

안개 빚듯 매듭짓는 낙강


근심 걱정 참 많기도 했으나

그 신세들 한탄으로 다 풀고

꽃길로 푸는 내 고향의 언저리.




가을 강


엄 영란



물비늘을 세워 빠르게 흐르던 강물이

잠잠해집니다.

때 없이 툭툭 튀어 오르던

물고기들도 물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두루미 한 마리가 목을 빼고

두리번거립니다.

길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새의 발목으로 가을이 스며듭니다.

잔뜩 살이 찐 구름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칩니다.

햇살이 수면에 주름치마처럼 번집니다.

잘그락대던 돌들이 속에서 조용히

제 몸을 다듬고 있습니다.

낙엽 하나가

흘러갑니다.


흘러라!

가을!




 강 


엄재국



아버지의 신발을 신고 거리를 나선다

골목아 좁아져라

집들아 작아져라

지나는 강아지야 내 말 들어라


아버지의 신발을 신고

세상을 걸어 보려 한 적 있었다

신발에 작은 발을 쓰윽 넣고

거리를 나서면

뒷꿈치 남은 자리 그 좁고 어두운 공간이

내가 건너야 할 강이였다


세상의 강이

건너기 위해 흐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건너야 할 그 강에

띄울 배를 여태 만들고 있었다


세살바기 아들이

벗어놓은 구두를 신고 거리를 나선다


작은배 한 척 강기슭을

찌걱거리며 떠난다


물결이 배보다 한 발 먼저 닿는 강




겨울 강가에 서면


위초하


 

강은 희고 푸른 환부를

천천히 드러내고 있다

강변의 쓰레기들이 날리고

오래전에 가둔 웅덩이의 수위는

지난여름에 파낸 자국처럼 여전히 낮았다

눈보라가 할퀴고 가는 갈대밭 사이로

아나바스 스칸덴스*는 몰려가고 있었다

아마 나락이었을 것이다

너무 일찍 당도한 노을이

강변에 불을 지르고 있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맹금의 날개에

섬의 우울이 몇 장 붙어 있었고

나는 강의 배경처럼 붙들려 있었다

그는 모처럼 웃고 있었지만

그 어떤 명료한 수사로도 쓸 수 없었다

겨울 강은 나의 불면 사이로 흘러간다

그에게 더 늦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저토록 낮은 수위로 흘러 들 수 있을까





*몸 속 비축해놓은 물로 물을 벗어나서도 며칠간을 살 수 있다는 전설 속의 열대어




                       

이경림


강기슭에는 한 노파가 오줌을 누고 있었다

자기 속을 흘러나오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건너편을 보고 있다

손에는 여전히 쑥 캐던 칼을 들고

바닥에 쑥 같은 것이 조금 깔려있는 바구니 옆에 앉아


맞은편에는 저녁 해가 횃불처럼 타 오른다

수면 위로 잉걸들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새소리 몇이 아직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데 벌써 산이 어두워지다니'


그녀는 천천히 고쟁이를 추키고 바구니를 든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불똥이 튀고 있는 강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수세기, 자기 속을 돌아 나온 강을 치맛자락처럼 끌고

노파는 간다







낙동강

 -가야를 그리며  


이우걸



물은 흙을 기르고 흙은 물을 기르는

그 터에 오곡 가꾸며 사람들이 살았었네

굽그릇 목항아리 등

다소곳이 차려놓고.


목마른 눈썹달이 새벽길에 넘어지면

강은 제 치마폭으로 다정스레 안아주어

한 세상 겨운 시름도

풀꽃형

금관같았네.






겨울 강


이 은



  꿈에 똥 덩어리가 떠내려 오잖아 몽실몽실 김이 나는 게 얼마나 탐스럽던지 그

똥덩어리를 건지려고 강으로 들어갔잖아 손에 잡힐 듯 잡힐듯한 그 놈을 고만 놓

쳐 버리고 아이만 간신히 건져 나왔제


  돌도 지나기 전에 영문도 모르게 하나씩 죽어 자빠지는데 새끼 잃은 느그 아버지 맨날 술로 살았제 애둥이 같은 것을 포개기에 싸서 뒷산에다 묻고 돌아온 느그 아버지 맘이 성할 날이 있었겠냐


  새끼 열 넷 가운데 살린 게 니 혼자다 하두 귀한 새끼라 광주리에 담아 길렀제 저 바닷가 젊은 무당을 느그 어머이 삼았제 칠월칠석이면 쌀 한말 이고 가서 무당 앞에 절하던 거 기억 안나나? 그래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광주리 에미라 하제


  퍽!하고 새끼를 쏟아내니 글쎄 부들자리에 물이 홍건하더라 새끼 낳고 다음날로 갯목으로 가서 얼음 깨고 무명 홑청을 치데는데 한나절이 다 가버렸제 쩍쩍 갈라진 얼음 조각위로 기골이 장대한 느그 할머니 얼굴이 어른거려 부랴부랴 잰걸음으로 돌아오는데 저 강 건너 매서운 바람이 귓떼기를 때리며 펄떡 빨래를 걷어 가는거라 





갈대꽃


전 선 구



칠 백리 낙동강을 갈대꽃이 휘 젓는다

지날 손 애간장도 갈대꽃이 휘 저으면

품고 갈 회포는 만 리 물길보다 멀어라.


석양에 신음하는 애 끓이는 너의 사연

어느 뉘 이별하고 살풀이의 춤을 추나

하얀 손 허공에 저며 울음 우는 여인아.


청자 빛 맑은 물에 그리움을 흘러두고

비엽에 사연 적어 서천으로 보낼 때에

고적한 가을 강에는 저녁노을 여울진다.


 



유월 바람이 피를 토하다

--낙동강 3


정숙



아흔 여섯 해, 근 한 세기를 순응하다 흔들리며 분노하며 용서하며 흘러온 강물, 아직도 바다에 안착하지 못한 채 오늘도 삐그덕 삐그덕 자신의 낡은 풍차를 돌리고 있다


'너거 아부지는 마실에 숨어있고 혼자 아아들 넷 데리고 고 외딴 과수원에서 자는 한 밤중 총칼 든 빨갱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총구 들이밀며 돈을 요구했지 빨갱이는 아주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까운 동네 아는 사람이었어 나중엔 총구 내리며 돈을 요구했지 얼마 전 홍수에 떠내려간 세간 살 돈인데 이것뿐이라며 그 당시 큰돈이었는데 오 백 원 내 놓으니 모두 고맙다며 돌아가더군


그 이튿날 옆집 주인이 엉덩이 밑에 돈 깔고 앉아 주지 않았더니 불을 질러버렸지 하는 수 없이 과수원을 버리고 마실로 이사했는데 그 집지킴이 구렁이들이 따라 들어온 걸 삽으로 대가리 몽창몽창 다 잘라 불에 태워버리더니 그 집이 폭삭 망해버리더라 난 나중 경찰한테 당당하게 말했어 돈을 주지 않으면 내가 내 자식이 죽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후유! 까딱 잘못하면 빨갱이 도왔다고 총살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지 좋았어'


한 깊은 강물의 피맺힌 한숨을 오지랖 넓은 유월 바람이 넝쿨장미 가지마다 핏빛으로 토해 놓는다





모래 섬


조 영 일



강이 쉬지 않고 길을 내는 시간


삶의 한가운데 모래더미 쌓이고


알 수가 없는 크기의 물소리가 맴돈다.

 



어떤 물놀이


황봉학 



몹시도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시원한 물을 찾아 엄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갔습니다. 반짝이는 모래톱 파란 물이 어린 아이를 유혹하고 아이는 물의 유혹에 빠져 한 걸음 한 걸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파라솔 밑에서 잠깐 잠이 든 엄마는 어린 아들의 비명을 듣습니다. 아이는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벗을 사이도 없이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으려고 헤엄을 치는 엄마는 아이보다 수영에 더 미숙하였습니다. 아들아, 아들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아이도 물속으로 깊게 가라앉습니다. 한동안 소용돌이치던 물이 조용해지고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엄마와 아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이제는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는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들아, 엄마가 왔다, 이제는 안심하여라.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엄마의 목소리가 천연덕스럽게 흐르는 물결 위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