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재순 송영미 신대원 신순말 유재호 이상훈 임술랑 정의선 조영옥

학생:조성권  김현정 김도연 장혜민 최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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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김재순
                                

덜거덕거리는 마음을 끌고

낡은 몸이 옵니다

바닥마저 긁은 통장 한 개 싣고

진흙탕에 떨어진 손자 하나 거두어 싣고

헐은 몸, 무너질 듯 무너질 듯 옵니다


배급 좀 주소, 손자 굶겨 죽이겠소

에미 애비 없는 아이오, 오늘도 울면서 학교에 갔소

손자를 꺼내들자 슬픔은 백동전처럼 쏟아지고

낡은 몸은 펄펄 푸른 줄기를 세웁니다


강줄기에도 유람선을 띄운다는 아아 나의 조국은

저 조손에게도 풀꽃 한 포기 선사한다만

가뭄은 깊어 풀꽃은 이내 마르네


한 백 년, 눈보라의 밤길을 걷는 동안

가슴에 쟁였던 아들도 쏟아버리고

뿜어내던 게거품도 잦았지만

가랑가랑, 어린손자 붙들고 있는 할머니














길/송영미
                       

신호등에 길이 걸려 있다

대롱대롱 거미줄같이

이리저리 설켜 꽃잎을 띄워야 하는 여름


어떤 불에 걸려들지 몰라

열심히 달려보지만

꽃잎은 가만가만  바람길에

매달려 있다


길속에 묻힌

신호

등에 불을 밝히며

오늘을 삭힌다


























가을꽃/신대원


노랗게 모과 익어가고

발갛게 먹감 익어가고

익어가는 것들이

낯선 바람에도 파르르

몸 떠는 시간

여름이 남긴 상흔傷痕

군데군데

짧은 몸짓으로 남아

옷깃 여미네.


아, 꽃이여

그리움 속으로 걸어 들어간

누이의 참 깊은 눈동자처럼

그대 사연 깊어

온통 저렇듯이

가을이 되어

가을로 피어나는가.





















놀이의 진수(眞髓)/신순말

집전화를 안 받으신다, 청소기 돌리시나?

열 시에도 부재중, 아침 운동 가셨나?

휴대폰 열한 번 울리자 그제야 오는 목소리.


나 요즘 일 나간다, 희선네가  가자해서…

애고! 좀 노시라니까, 다리도 아프다면서…

괘안타! 알아서 하께 걱정하지 마래이…

도무지 노는 이가 없다며 심심하다고

자식 몰래 잠종장(蠶種場) 누에치러 가신

일흔 살 우리 어머니, 노는 法은 일하시는 것.


홀로 우리 키우느라 평생 일로 사시더니

주일 미사 가시고 꽃 가꾸기밖에는

노는 法 다 잃어버리신, 놀이 達人 우리 엄마.
























서천 앞바다/유재호



성긴 빗방울이 떨어지는

서천 앞바다

누가 이 큰 그릇의 물을 흔드는가


무릇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는 것이다

넘실넘실 한바다를 가르며

흔들거리는 저 파도


들숨과 날숨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바다는 오늘밤도

별 하나 안는다


























꼬래비/이상훈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꼬래비다


배낭에다 철모, 군화, 거기다 총까지 멘

완전군장을 하고

수십 킬로 행군을 하다보면

배낭이 무거워서 처지고,

철모가 무거워서 처지고,

총이 무거워서 처지고,

드디어 몸이 무거워서 처지는 무리들

눈을 떠 보면 이 중의 누구든 조금씩은 꼬래비다


과목은 모두 열 개보다 더 나누어지고,

거기서 국어는 문학, 작문, 화법, 문법으로 나누어지고,

수학은 기초,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지고,

영어는 오렌지와 어렌쥐로 나누어진다

나누다 보면 해야 할 것이 뭔지

한 것은 뭔지

아는 것은 뭔지

알아야 할 것은 뭔지 머리가 무거워서 처지는 무리들

눈을 떠보면 이 중의 누구든 조금씩은 꼬래비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산다

돈으로 명예를 사고

명예로 돈을 사고

돈으로 돈을 사고

명예로 명예를 사다보면

돈이 명옌지 명예가 돈인지 정신을 잃은 무리들

눈을 떠보면 이 중의 누구든 조금씩은 꼬래비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꼬래비다







黃澗에서/임술랑


봄이 오는 駕鶴樓에 올라

나는 훨훨 나르는 꿈꾸며

서성거렸고

당신은 봄나물 캐고 있었었지

아이는 "가자" "가자" "집에 가자"

노래를 불렀고.

 

초강천 흐르고 바람이 분다

 

아이가 자라서

집을 나갈 때까지

나는 날지 못했고

아내는 나물만 캤다

 

오늘 다시 이 누각에 올라서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데

집 나간 그 아이가 생각 나

눈물 흘린다














그대 있음에/정의선

벼랑 끝에 서면,


평생 거짓말 한번 하지 않고 살 것 같은

그대만 생각하며 정말 행복에 겨워보자.


벼랑의 끝에는

되돌아가는 길

가야할 길도 없음에

눈물 없는 눈물만 가득하지만

진정 죽을 줄 아는 자만이

산 자의 별리(別離) 알듯

내 아픔이

너의 기쁨으로 가득한

그래서

아프지만 기쁜 마음이 되는 세상 만들어보자.


벼랑 끝에 서면,


해말간 미소로

다가오는 그대만 그리며

다음 세상에서의 즐거움 그려보자.


가는 길 험하다 해도

은행나무 가로수

키 재기 하듯

마주 선 그 사이로 

마음으로 상상하며

손잡고 걷는 여정이라면

떨어지는 낭떠러지도

구름 위 사뿐사뿐

고향별 막차 타는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닐는지.







해바라기/조영옥

여름 방학하는 날

전교생 37명 한자리 모여

한 학기 즐거웠던 일 아쉬웠던 일

돌아가며 발표하였다

3학년 명우는

즐거웠던 일이 사회선생님과 해바라기 심었던 일

아쉬웠던 일이 심어놓은 해바라기가

죽어버린 것이라 했다

연변에서 와  말이 서툰 엄마

이미 어른인 이복형제들

그래서 마음 부칠 곳 없는 명우는

동아리활동도 방과 후 특기적성시간에도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고

아이들 저대로 자기 특성을 살리고 즐기는 시간

명우는 사회선생님과 호미 한 자루 들고

고구마밭 풀을 매고

해바라기 모종을 심었다

학교담장 따라 줄줄이 심고

화단주변에 보기 좋게 심어 놓았다

학생들 돌아가며 즐겁고 아쉬웠던 일 다 털어내고

선생님들 차례에

우리 사회선생님 제일 기뻤던 일

명우랑 해바라기 심었던 일

제일 아쉬웠던 일은

명우가 심은 해바라기가 넘어졌을 때라 했다

희미하지만 환한 명우 웃음이

고단한 마음을 씻어준다

텅 빈 방학 한 달 우리 학교는

명우가 심은 해바라기

꽃을 피워 환한 불 밝히겠다

저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외롭지 않겠다

공부도 특기도 아닌 노동의 힘으로

온 세상에 꽃이 피고 희망이 피어나는 것을

명우는 몰라도

호미질과 흙손의 의미를 몰라도

가녀린 모종이 뿌리를 박듯

세상을 버티는 힘이 될 것이다

여름방학 끝나면 해바라기 환한 웃음으로

돌아올 아이들 속에

빛처럼 투명한 명우의 웃음도 함께

뛰어올 것이다.






































2010 달밤 시쓰기 한마당 수상작


[달빛 큰상]


거짓말

     상영초등학교 4학년 조성권



배탈나서 보올록

솟아나온 배

꼬옥꼭 주물러주시면

금방 낫는다 금방 나아

할머니 손 약손이라고


구멍 난 무릎 속에

가시 찔린 것처럼

아픈 피투성이

호호 부시며

후우후 금방 낫는다

금방 나아

할아버지 입김이라고


어릴 때는 거짓말 아니었는데

지금은 거짓말인데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

알쏭달쏭
















제15회 들문학상 공모전


[시부문, 중등부 큰상]



가을의 선물

성신여자중학교 2학년 장혜민



벼, 보리가 손짓한다.

어서 오라고, 가을이 왔다고.

마당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어서 오라고, 우리 주인 왔다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웃으신다.

어서 오라고, 예쁜 손녀딸 왔다고.


할아버지 깊은 주름이 웃음에 덮인다.

할머니 아픈 다리도 영그는 가을에 나았다.


시원한 가을바람 마주보고

여름의 짜증과 때를 털고 있으면

여름과 겨울을 이어주는

짧은 계절의 선물이 고마울 뿐이다.



















[시부문 고등부 큰상]



찰칵

우석여자고등학교 3학년 최영현




친구들 모여앉아 추억을 그려놓고

활짝 핀 웃음꽃을 사진에 담아본다

이 순간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담는다


사진 속 순간순간 찍혀진 다른 표정

슬펐던 행복했던 표정이 담겨진다

감추려 애써 웃음을 지어 봐도 들킨다


잊혀져 지나가는 순간을 잡아준다

행복한 시간들을 추억에 새겨본다

버튼이 찰칵 할 때에, 내 기억 속 추억들…























[산문부문 중등부 큰상]


항상 감사드리는 사랑하는 아빠께


화동중학교 3학년 김현정



 정말 사랑하는 우리 아빠! 둘째 딸 현정이가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사실 너무 오랜만에 편지 써 보는 거라서 많이 어색하고, 조금은 쑥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편지’라는 단어의 힘을 빌려 마음을 전해보려 합니다.

 아빠! 가장 먼저 5월 8일 어버이날에 해야 했던 말인데 5개월이나 지난 지금 해요. 16년 동안 저를 위해 항상 아낌없는 사랑을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려요. 사실, ‘선물은 준비 못했지만 감사하다는 말만큼은 해 드려야겠다.’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아빠도 아시다시피 제가 감정을 잘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씀 못 드렸어요.

 중학교 들어와서 몇 차례 치룬 시험, 항상 만족하는 결과보단 그렇지 못한 결과가 더 많았지만, 전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언젠가 과학 시험 점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부 했던 것보다 낮게 나와 우울해하고 있었을 때, 아빠께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게 가장 큰 결과’라며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 그땐 과학 점수가 나빠서 ‘최선만 다하면 뭐해, 항상 이렇게 점수는 나쁜데’하고 생각하며 아빠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께서 해 주신 말씀 덕분에 더 집중해서 공부를 했고, 다음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끔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보면 아빠는 ‘일찍 자. 너무 무리하지 마. 더 잘하려는 태도는 좋은데 그게 지나치면 힘들어.’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어요. 가끔은 더 잘하고 싶은 제 맘을 몰라주신다는 생각에 그 말이 서운 할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빠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실 때 전 ‘아,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좀 더 건강히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제가 상을 받아올 때, 좋은 성적이 담긴 성적표를 가지고 왔을 때 아빠는 항상 고맙다고 말씀하셨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데 말이 예요. 아빠께서 저에게 충고를 해 주시지 않았다면, 적당한 칭찬으로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해 주시지 않았다면 상을 많이 받은 지금의 저는 아마 없었을 것 같아요. 항상 해 주시는 좋은 충고 감사드려요. 그 충고로 아빠 바람대로 용기를 가진, 마음이 아름다운 딸이 될게요.

 지난 겨울, 저는 누구보다도 편안하게 학교를 다닌 것 같아요. 걸어서 가도 15분이면 갈 거리를 춥다고 말씀하시며 항상 데려다 주셨어요. 그리곤 언젠가,

 “아빠가 이렇게 너희들 데려다 주는 것도 길어야 2년이다. 아빠가 너희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서 사랑 많이 못 줬는데, 요즘 아빠가 너희한테 사랑 주는 게 느껴지지?” 하고 물으셔서 “당연하지!” 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했지요. 그런데 ‘이제 길어야 1년 동안 집에 있을 텐데, 그 동안만이라도 부모님 속상하게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맺혔어요. 그리곤 다짐했어요. 1년 후에 ‘좀 더 잘할 걸…….’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짜증내지 않을 거라고……’. 

 제가 감사드리는 게 많은 만큼 죄송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요. 몇 년 전, 제가 화령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아빠께선 종종 데리러 오셨죠. 하지만 그날은 아빠께서 오시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화동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몇 분 쯤 지났을까, 앞 유리가 모두 부서진 자동차 한 대를 봤었지요. ‘설마 아니겠지. 아빠는 지금쯤 다른 곳에 계셔. 그리고 오늘은 버스 타고 오라고 하셨고.’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를 했어요. 저 자동차 운전자가 아빠가 아니게 해 달라고, 혹시 맞더라도 아빠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집에 와서야 그 자동차 주인이 아빠란 걸 알았어요. 순간 ‘내가 학원만 가지 않았어도…….’하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몇 분 후 아빠께서 “현정이 왔어? 아빠가 미안해. 너 데리러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사고가 났어.” 하고 말씀하시며 들어오실 때 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무것도 해 드린 것 없는 딸 데리러 오시려다가 아픔을 가지신 아빠께 너무나도 죄송해서. 요즘도 가끔 다리가 아프시다는 아빠를 보면 ‘그때 사고 때문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들어요. 

 아빠! ‘아빠가 30년 동안은 책임지고 우리 3공주들 지켜줄게!’라고 약속하신 것 기억나세요? 30년 후면 저희들은 40대가 되고, 아빠는 아마 손자, 손녀가 있는 할아버지가 되어 계시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30년 후에도 아빠가 지금처럼 건강하실까 조금은 걱정이 돼요.

 30년 후에는 제가 아빠 지켜드릴 테니까 술 ․ 담배 조금만 줄이시고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돼요!  

 얼마 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어버이날에 부모님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부모님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사랑해요’라는 한마디라고 했어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아, 나는 마음만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지 정작 그 마음을 전해 드리진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저인데, 받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저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앞으론 항상 감사하는 맘으로 사랑해요. 감사 합니다 하는 말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함께할 수많은 시간동안, ‘사랑합니다.’, ‘감사해요.’ 하는 말을 자주 하는 둘째 딸이 될게요!

 아빠! ‘전에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행복하게 너희 키워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던 것 기억하세요? 그런데 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또 ‘걱정’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걱정’을 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저희들에겐 엄마, 아빠가 최고세요. 힘내세요!

 아빠께 감사드려야 할 게, 종이 몇 장에 담아 낼 수 있을 만큼의 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로 표현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종이에 담기지 않은 제 마음, 아빠는 알고계시죠? 너무 많은 사랑을 주시는데 미안하다고 하시는 아빠,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저인데 오히려 저희들한테 고맙다고 하시는 아빠. 항상 감사드려요. 그리고 마음이 예쁜, 남을 먼저 생각하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어딜 가도 자랑스러운 딸이 될게요. 아빠, 사랑해요. 


2010년 9월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아빠를 사랑하는 둘째 딸 올림





[산문부문 고등부 큰상]


울지 않던 우리할머니


상지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도연



 우리 할머니는 울 줄을 모르신다. 몇 십년동안 자식들 앞에서 웃는 척만 해서 정말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로 굳은 것 같다. 내가 괜히 짜증을 내면 할머니는 웃으면서 정말 미안하다고 한다. 정말 잘못하고 미안한 건 나인데 말이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일찍부터 육남매를 혼자 키웠다. 내가 ‘결혼한 여자가, 그것도 옛날에 어떻게 돈을 벌었어?’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나를 밉지 않게 노려보고는 ‘어떻게 벌긴. 죽도록 일해서 벌었지’라고 얘기를 해 주신다. 새벽엔 공사판에 가서 밥을 해주고, 아침엔 식당에 가서 저녁까지 또 일을 하고 10시쯤에 돌아와서 육남매의 옷을 다 빨고 다음날 아침 일찍 자식들이 먹고 갈 반찬을 준비해 놓고 자고 있는 막내 삼촌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새벽에는 가마솥에 밥을 하고, 씻고 갈 물도 데워놓고 공사판으로 갔다고 한다. 돈이 부족할 땐 시멘트를 등에 엎쳐 메고 직접 짓고 있는 건물을 오른 적도 있다고 했다. 정말 말이 쉽지 여자가 남자의 일까지 해가며 돈을 버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쌍한 우리 할머니. 그러나 우리 할머니는 육남매 모두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거기다 우리 아빠는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집안 사정은 알지만 대구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낙동 촌마을에서 대구 큰 도시까지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우리 할머니는 집이 쪼들리는 걸 알면서도 대구까지 가서 공부하려던 아빠가 정말 미웠다고 했다. 하지만 난, 사실은 어린 아들이 보이지 않는 데서 무슨 험한 일을 당할까봐 걱정했을 걸 부끄러워 말을 바꾼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고생하며, 땀보다 많이 흘렸을 우리 할머니의 눈물을, 난 짐작은 하지만 뼈저리고 절실하게 느끼진 못했다. 왜냐하면 매일 웃고, 다른 할머니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할머니가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란 걸 느끼곤 한다. 자식들이 힘들게 번 돈을 의사 좋으라고 갖다 주냐면서 잘 안 다니던 병원엘, 아빠에게 병원비 좀 달라고 하면서까지 다니신다. 사실 할머니는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10년 전 집 앞의 텃밭을 정리하고 있다가 옆집에서 소가 낮은 담을 타넘고 와 할머니의 발을 밟아 한쪽 발은 병신이 됐고, 또 이년 전에는 기르던 개에게 손을 물려 아직도 상처가 있다. 또 젊었을 때부터 밥을 잘 먹지 않아 위장에 문제가 많은 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앓고 있던 병이다. 밀가루 음식, 조금이라도 맵거나 짠 음식, 고기나 생나물은 드시지 못 한다. 한마디로 먹을 건 죽과 물에 밥 말아 먹기, 국에 밥 말아 먹는 것밖에는 없다. 전이나 김치를 생으로 드시면 그날 밤 다 토해낸다. 젊었을 때 먹지 못한 걸 지금 아빠가 먹게 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할머니도 동물 죽은 음식 먹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거짓말이란 걸 안다. 매일 밥과 물만 먹으면 누가 안 질릴까.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은 있어도 먹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한테 맛있는 음식 많이 사드리고 싶지만 그것도 되지 않아 그저 아픈 할머니가 미울 뿐이다.

 우리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보다 걱정이 많다.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내 동생은 10살이지만 태권도 시합을 많이 다닌다. 그 때마다 할머니는 관장님을 전화로 혼낸다. 어린 걸 데려가서 무슨 일을 시키냐고, 커서 해도 될 걸 괜히 고생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동생이 금메달을 따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바로 관장님한테 전화해서 고맙다는 인사부터 한다. 또 직접 기른 깨로 짠 참기름이나 고추장, 김치, 밑반찬까지도 꼭 여섯 통에 담아 보관한다. 서울에 사는 작은아빠는 자주 오지 못 해 가져가지 못하면 꼭 다른 가족들 안 주고 곰팡이가 필 때까지 그대로 둔다. 가끔 아빠가 늦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아빠가 올 때 까지 밥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불을 켜두고, 밥과 국을 퍼 놓은 채로 잠이 든다. 심지어 닭과 개한테도 걱정을 해준다. 동물도 지겹다면서 개를 화장실 앞에 뒀다가 대문 앞에 뒀다가 밭 옆에 뒀다가 장소를 옮겨준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뉴스에서 살인사건이 나왔다하면 일일이 다 전화를 해서 밖에 나가지 마라, 우산은 있냐, 문 열어 주지 마라, 하며 귀찮을 정도로 걱정을 한다. 솔직히 가끔은 귀찮고 짜증도 난다. 그래서 큰아빠랑 고모들도 그만 좀 걱정하라며 화를 낸다. 엄마보다도 더 잘 처신한다면서 엄마나 밖에 나가지 말고 몸 좀 아끼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16년 동안 할머니의 모든 모습을 보고 자란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 하면서부터 바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 첫 날 나는 부모님이 그리워서, 3년 간 여기서 공부해야 될 생각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할머니의 눈물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난 처음 기숙사에 들어와서 솔직히 가족 생각은 나지 않았다. 이제 입학했으니 친구를 어떻게 사귀지 하는 걱정과 수업과 선생님들은 어떨까, 내가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근데 잠들기 전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기숙사엔 잘 들어갔고 방 친구는 어떻고 학교는 괜찮냐며 간단히 물으시고 할머니 바꿔 줄까 하면서 전화를 건넸다. 그때까지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한 마디를 듣자마자 울먹였다. ‘도연아’ 하고 울면서 나를 불렀다. 니가 간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허전하고, 니 언니랑 니 동생이랑 너랑 항상 같이 누워서 잤는데 니가 빠지니까 보는 내가 힘이 빠지고, 너 저녁을 안 먹이고 그냥 보내서 내가 죄를 지은 거 같다고 계속 자기 잘못을 말하면서 울었다. 그렇게 계속 학교 가서 잘하라면서 울었다. 할머니가 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강한 줄 알았던 할머니가 나 때문에 울었다. 내가 집에 없다고 울었다. 마지막에 난 공부 안하고 기숙사도 안 다니고 그냥 집에 붙어 있으면 안 되냐고 진심이 아닌 척 하는 진심의 말을 들었다.

 아, 내가 할머니한테 그런 존재였구나. 할머니가 그동안 지독히도 외로웠구나. 사람 한 명 없는데 울 정도로 약했구나. 나를 많이 사랑해 주고 계셨구나. 이게 가족이란 거구나. 내가 할머니한테 처음으로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지금까지의 사소한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느낌은 정말 ‘눈물’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다른 어떤 할머니보다도 약한 할머니였다. 속마음을 내비칠 정도로 강하지도 않았고, 끝까지 눈물을 숨길만큼 강한 분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그저 그냥 할머니였다. 슬펐다. 난 할머니한테서 위로를 받는데 할머니는 나에게 위로를 받지 못한다. 아직 어려서 할머니에게 어깨가 되어 줄 수 없단 게 슬펐다. 솔직한 할머니가 좋았지만 우는 할머니는 싫었다. 차라리 숨기더라도 강하게 보이는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가 약해지니 나까지 약해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80년 인생에서 17년은 나를 붙잡아 주기 위해 쓰였다고 생각하니 죽을 만큼 괴로웠다. 정말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나의 버팀목이란 사실을 단 한 번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할머니를 더 잘 알아서 더 많이 웃게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기숙사 들어가는 날이면 명태, 김, 김치를 싸주는 할머니가 고맙다. 들고 간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몰래 두고 가야 할 때마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난 매일 준비해 주시는 할머니가 고맙다. 왜냐면 그것들이 우리 할머니의 마음이고 사랑이고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할머니의 그 마음과 사랑과 눈물을 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나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우리 할머니를 존경하고 울먹일 거라곤 절대 믿지 않는다. 지금 울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이고 지금 울고 있는 사람도 나의 할머니이기 때문에……. 우리 할머니의 말 할 수도 없고 끝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은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할머니의 눈물을 글로 쓰는 이유는 우리 할머니의 사랑을 받는 나를 누구든 알아주었으면 해서이다. 할머니의 눈물을 본 나는 이미 성숙해졌고, 사랑과 고통이 아닌 할머니의 ‘눈물’로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할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