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문학 제17집을 내면서

  - 우리의 색깔을 살려


  들판의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한 해가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겨울눈으로 하얗게 변한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는 듯 깨끗하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녹아가는 눈 사이로 드러나는 갈색 들판은 그 안에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무게 있는 빛깔로 다가온다. 이른 봄이 되면 그 갈색 사이사이를 비집고 일어서는 연두색이 제비주둥이마냥 정겹다. 그게 녹색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금방 짙은 녹색으로 변하여 오랫동안 녹색의 풍성함을 세상에 떨치는데, 그 싱그러움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기에 족하다. 이윽고 가을이 되면 연한 노란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진한 노란색, 그 색이 갈색으로 변할 때쯤에는 가을걷이가 이어지고 조금씩 비어가는 들판을 휑한 가슴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 들문학도 색깔이 변해 왔다. 사람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세월에 따라 변하기도 해왔다.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젊었던 색깔이 많이 퇴색되기도 하고 싱그러움도 사라진 듯 보인다. 때로는 폭풍처럼 이어지던 열정들이 원색으로 화려하던 시기도 있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던 시기도 있었고 반대로 행동보다 생각이 많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삶을 가운데 놓고 삶의 모습을 글로 표현하고, 글을 통하여 삶을 풍성하게 하자고 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무슨 일이든 하다보면 나를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열정을 할애하기가 쉽다. 그런 열정은 늘 실제보다 과장된 몸짓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서 왜곡되거나 거짓된 모습으로 비추어지기 쉬워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들문학은 다행스럽게도 과장되지도, 위축되지도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점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하겠다. 우리의 삶을 꾸준히 글로 드러내고, 나누고, 실천해 왔는가 하면 지역사회에서 글로 함께 나누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문학강연회를 개최하고, 시화전을 열고, 들문학상을 제정하여 후진들을 격려하고, 달밤 시쓰기 한 마당에도 함께 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활동들의 결실이 올해로 열일곱 번째를 맞이하게 된다. 소박한 우리의 삶을 매년 이렇게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 일인가? 우리의 글모음집이 삶을 조금이라도 더 여물게 하는 매개체로 늘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0. 10


    상주들문학회 회장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