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한내 나이 스물아홉.

 짧지 않은 날들을 우리는 문학을 매개로 만났다 헤어지곤 한다. 지금 이 지역에서 함께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보다 한내에 몸담았다가 직장을 따라 도시로 가신 분들이 훨씬 많다. 또한 이미 우리 곁을 떠나 세상 너머로 가신 분도 있다.

 

 잠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즐거웠던 날보다 힘들고 아팠던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취가 모두 소중한 자산이며 남은 사람이나 떠난 사람 모두 고맙고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도시로 떠난 사람들은 남아 있는 한내사람들을 잊지 못하며 남은 사람 역시 그분들의 안위를 궁금해 하며 한내에서 함께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고 헤쳐 나오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지만 글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단순히 지식을 쌓고 지혜를 터득하는 이상의 것, 즉 사람을 경험하고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또한 문학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삶이란 돌 나무 새 구름 꽃 등 자연을 들여다보며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과 인간의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깊게 들여다보느라 넓은 것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를 경계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 될 때 삶의 문학이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너와 내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쌓아놓은 삶이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이 보다 맑고 순수하며 향기로 채워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그래서 우리네 삶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채색되길 바란다.


 이 글모음집이 나오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군청 관계자 여러분과 교정과 편집에 애쓰신 꾸민이, 조용하게 한내 살림을 맡아 오신 막일꾼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변함없이 한내의 물길이 끊이지 않고 왕성하게 흘러가길 기원한다.

 

                                                                                                                                                                            한내 앞일꾼 장 해욱




 우편함과 나팔꽃

              권영숙




나팔꽃은 나보다 먼저 우편함에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아직 우체부가 오기엔 이른 시간


텅 빈 우편함 속으로 자꾸만 눈이 갑니다


그도 나만큼이나 소식이 기다려지나 봅니다


여름 한 철 담쟁이와 이끼가 서로를 보듬던


원고개길 112번


누가 새로 달아준 낮선 주소


단풍잎처럼 달린 우편함


날마다 넝쿨손 뻗으며


한 뼘이나 그리움 자라나던, 그러나


입술이 탈 때까지


우체부는 오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담벼락에 기대 밤을 세며 소식을 기다리다


분홍 입술이 거의 말라


나팔꽃 씨 같은 날은 까맣게 가고


잊는 일 조차 힘이 들었지요



허기처럼 들락거리던 바람이


빈 우편함에


발신도 없는 노오란 엽서 하나 두고 갔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아려


차마, 그 사연 다 읽지 못하는


가을


나뭇잎 편지
































들꽃 베개

       권영숙




들꽃베개를 베고 잠을 잤어요


꿈꾸는 일보다 꿈을 깨우는 일이 먼저였던 시간


매듭을 푸는 일보다 묶는 일에 불면과 싸우던 날들


어린 동서가 보내 준


들꽃잠 베개를 베고 잠을 불렀어요


머리맡엔 들꽃이 피어


문살이 환하도록


들꽃이 피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잠이 내게로 오더군요


굳이, 별의 이름을 외지 않아도


겨울 들녘을 시름처럼 걷지 않아도


나직나직 푸념이 노래가 되고


별이 매만지고


바람이 영글린 소중한 것들이


푸른 영혼처럼 들꽃베개로 모여


난 가장 아름다운 들꽃으로 피어나는 꿈을


난 가장 소박한 들꽃으로 피어나는 꿈을


지금, 막 꾸고 있어요


나무를 기억함

           박명희



이 책의 전생은 마을 어귀에 서 있던

당산나무였나 봐 축문 읽는 소리가 들려

또는 포크래인소리가  농성소리가 들리는 걸보니

재개발지역에서 베어진 나무인가 봐


그 책의 문장은 그 책의 전생인 것만 같지 뭐야


가지를 거두고 잎을 거둔 나무

나무가 배경으로 두었던 때를

상상해보곤 하지

나비가 강을 건너고

석양이 능선을 넘어가는


누군가 써넣은 문장을 읽다보면

책에선 아직, 나무였던 때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끌어올린 수액 냄새가나

















한통속

    박명희



도토리에서 기어 나와

햇살의 꽃밭을 기어가는

저 징그러운 벌레가

어느 때는 도토리의 몸이었고


사랑 없는 눈빛으로

나를 지나가는 네가

나를 사랑했던 너였고


그러니 사랑과 미움이 따로 아니라는 거지


사랑에 배반당하고 눈물에 밥 말아 먹을 때도

집을 사기 치이고 집을 잃고

밥숟가락 놓고 누워 있을 때도

간간이 웃을 일 있어 숨 쉬어지는 거지


볕든 날 그늘진 날 한생 속에

한 두름의 굴비 엮인 생이라서

그 생을 다 살아야하는 거지














파리 목숨

       변두연




책상 위 좌충우돌 거침없는

보무당당 파리 한 마리

 

지금

제 머리위에 엄청난 위력의

가공할 살인 무기

새매 같은 눈빛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순간

날아든 가공할 파괴력

내장, 두개골 파열

악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낭자이 피 뿌리며 사라진 생명 하나여



















바보 생각

       변두연



산다는 거

살아보이 참 별거 아니여


까닭 없는 세월 자꾸 흘러

속절없이 늙어 가는 걸


그렇게 아파했던 이별도

오랜 세월 아렸던 그리움도

울고 웃고

다 거품 같은 것을


당신 있어

이 세상

울다 웃다 성내다

그래 사는 거지요













무박 2일 지리산 산행

                  손범석


  

어두운 밤 헤드 랜턴  밝혀 쓰고

어설픈 발끝으로 가픈 숨 몰아쉬며

깊은 밤 지리산 그 골을 거슬러 올라 간다

  

두어 시간 올라가니 법계사 맑은 도량

걷혀지는 어둠속에 속살 드러낸 운무에 쌓인 산 또 산

숨길 수 없는 수려함과 짙은 초록 울창함의 화답

  

한잔 약수로 목축이고 또다시 올라가자

두어 시간 달려가니 천왕은 말없이 어서 오라 손짓 한다

고맙게도 천왕께선 자리를 내어주고

맑게 갠 백두대간 끝자락을 두루두루 보여 주시네

  

장터목 대피소서 늦은 시장기 잠재우자

쓴 소주 한잔에다 시름 또한 날려 보내자

배불러 든든하고 바람 또한 명쾌한데

몰려드는 졸음 가운데 장딴지 근육통에 무릎, 발목 통증

허름한 등산화 탓인가 발바닥엔 불이 나네

  

개울가에 내려 앉아 발 담그고 미소 지으나

저 기나 긴 골을 언제나 내려 갈고









그리운 가을 편지

              손범석


   

그리움을 전하기엔 더 없이 좋은 계절

바삐 살아온 일상일랑 내려놓고

아쉽거나 서운했던 잡티들은 털어내어

가을을 핑계 삼아 부딪쳐보자

   

잔잔한 눈빛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채색된 산야  맑은 하늘과 하나 되어

빈 마음 빈손에는 가을 풍경을 불러 모으자

   

세월은 기다리지 않는 것

   

삭막한 오늘이 아닌 기름진 내일을 보고

행여 반기지 않을 이 있어 두려움 일 지라도

그리운 이 있거들랑 소식 또한 전해보고

가을을 담은 사연 기쁨으로 띄워보자















어머니

    손봉금


 

풀 속의 귀뚜라미 꽈리 불고

둥지 떠난 텃새 어미 품 찾아 들면

잉걸불 지펴 다독이던 내 어머니

보름달이 되셨습니다

 

삶을 전환하기엔 미력한 지혜

길 아닌 길 헛짚고

나동그라져 깨어진 마음

눈망울엔 그렁그렁 슬픔을 삭이고

절룩거리는 인생 자막으로 흘러

웃음 보따리만한 망태기 남겨 놓은 자리엔

가랑비 같은 어머니 사랑 담습니다

 

하루치의 기다림을 담아

까치발 돋우던 시렁 위에 올려놓으며

저울에도 올릴 수  없는

소태 같은 그리움으로

피어오르는 향의 연기 눈길 따라 갑니다.




















백담사 계곡

         손봉금


 

아무 말도 하지 말라하시네

밤 새 울부짖으며

큰 물살 만들어

우렁찬 계곡물 키 높이 하시더니

누런 이빨 보이며 말씀 하시네

 

키 큰 활엽수들이 풀무질하는

뜨거운 숨결 거두고

능선을 휘감은 안개는

채색을 감춘 수묵화로 실루엣 걸쳤네

 

물소리조차 거두어진 하늘

이잰 말씀도 안 하시네

내 비워 놓은 곳간에 담아 올 걸

언제 아시고

빛살 프리즘, 침묵의 빛무리만 보이네

 

네가 함께 있다면 좋겠네

참 좋겠네



















사랑지기

      우미숙




물안개 피어오르듯


뽀얀 설레임



한 손 뻗어 움켜보면


촉촉한 그리움



먹먹한 속울음이


가슴을 적시면



아픈 사랑 보듬어줄


사랑지기 그대여












아! 천안함

        우미숙




꽃비가 내립니다.

하얀 제복의 그들이

하얀 꽃비가 되어

잔인한 4월의 삼라만상에

흩날리고 있습니다.


멈추어 버린 계절

못다 핀 영혼들의 애달픈 넋

차갑고 어두운 해저


무엇이 우리의 그들을

이곳으로 가두어 버렸나요.

 

무엇 때문에 우리의 그들을

이렇게 숨 막히게 했나요.

 

무슨 권리로 그들의 삶을, 사랑을

막 터지려 준비한 진달래 꽃망울들을

잔인한 된서리로 눈물꽃을,

서리꽃을 피우나요.

남은 자의 가슴앓이가 아무리한들

화석이 된 그들의 꽃잎만 같을까요.

 

찢겨진 쇳덩이는

그들의 마지막 보루

통곡의 바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진 울부짖음

무심한 물결 위로

진달래 한 아름 띄워 드립니다.





  장해욱

 

 

 

바다 가운데 작은 점 하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어쩌지 못한 채

 

마치 구도자이기나 한 듯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섬

 

누군가 가 띄워놓은 부표처럼

일렁이는 파도에도

언제나 그대로인 그 섬에

눈발처럼 내려서고 싶다

 

이따금씩



















山寺에서

      장해욱

 

 

경내 에서 나지막하고도 무겁게

명상의 소리가 쉬임없이 이어진다

 

내려놓아야 한다 

비워버려야 한다

좋고 나쁨이 없고 

높고 낮음도 없고

없다는 그것마저 없고 

 

부처님께 탑 앞에 엎드려

백팔배 중생들의 기도가 애절하다

 

고득점 받도록 도와주세요

진급 하도록 도와주세요

극락왕생 지켜주세요

돈 많이 벌게 도와주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 지장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중생들의 기도소리

들리는지

들었는지

부처님은 미소뿐

 


(수필)


   다시 그 자리에

      김경숙                                                                


 우리 마을은 시골 여느 마을과 달리 노인과 젊은이들이 반반으로 균형을 이루고  중앙도로를 동서로 희한하게 노인들은 서쪽에 젊은이들은 동쪽에 많이 집을 짓고 산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소나무가 잘 다듬어진 정원이 근사한 이층집이 전원주택의 좋은 이미지로 큰 몫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시사철 꽃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장미가 피기 시작하면 울타리가 온통 빨간 장미넝쿨로 여름을 알리고 가을이면 하늘하늘한 바위 구절초가 하얀 미소를 지으며 손짓한다. 어둑한 퇴근길 자동차 불빛에 비친 한 무더기 흰 들국화는 집으로 오는 나를 기다린 듯 반긴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주인의 부지런한 손길과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젊은 사람들은 일찍 전원생활을 시작하여 예쁜 집을 지어서 잘 살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이 곳 저 곳 많은 곳을 다녀보았다. 그래서 지금의 위치에 황토 집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 내 나이 마흔이었다. 교통도 좋고 물 좋은 온천도 가깝고 공기도 좋은 곳이다. 다행히 좋은 목수를 만나 한옥을 짓게 되었고 벌써 7년이 다 되었다. 한국인이 한옥을 짓고 사는 게 뭔 대수라고 많은 사람들이 집 구경을 와서 손님들에게 차 대접을 많이도 하였다.

요즘은 황토 벽돌로 집도 많이 짓고 한옥의 장점을 살려 현대 가옥에 접목을 시키기도 하니 좋은 일이다.  한겨울의 추위를 감수하면서 노출 시킨 높은 천장의 서까래는 언제 봐도 정겹고 예쁘다.

 한껏 단장한 동네 집들과 달리 네모난 작은 블록집이 사랑채처럼 한 칸 있는데 2년 전 그 집 앞에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장롱과 서랍장을 집 앞에 내놓았다. 그 당시는 큰애가 기숙사에 있기에 당장 필요하지는 않아도 자취하게 되면 쓰일 지도 몰라 처마 밑으로 옮겼다. 햇빛에 남아나는 물건이 없기에 큰 덮개를 사서 덮어 놓았는데 이듬해 대학교에 입학한 딸애가 도시에서 방을 얻어 나가면서 그 서랍장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옷장과 이불장은 그대로 일 년을 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장롱이 지난 주말 참 잘 시집을 갔다. 그것도 2년 전 그 자리에 다시 그 연세의 할머니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품으려고. 허긴 그 집을 할머니가 살도록 내가 오지랖 넓게 주선을 했으니 장롱을 따로 장만하지 않도록 한 건 잘한 일이다.

동네 할머니들 중 이 노인은 잠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 호미 하나로 동네 어귀의 공터를 옥답으로 일군 억척같이 부지런한 어른이시다. 자그마한 키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 굵은 손마디는 농사를 지어 자식 거두는데 평생을 보냈지만 노년을 함께 할 자식은 없는 것이 요즘 너나 할 것 없는 세태이다. 노인들 또한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끼니만 끓여 먹을 힘만 있어도 자식하고 사느니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고 하나 같이 말씀 하신다.

 나 또한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살면서 시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돌아가신 뒤에 가슴에 맺힌다.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사돈이 시어른 잘 모시는 거 보면 니도 내한테 그래 잘 하것제?” 하고 물으셨을 때 선뜻 대답을 못하고

 “저는 엄마만큼 못 해예.” 했으니 어머님 듣기엔 모시기 싫어하는 걸로 생각하셨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우리 집에 오이소.” 하고 시원스런 소리 제대로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내가 모신다고 해도 오시지도 않을 텐데…….

  그 할머니의 막내아들은 도시에서 살다가 얼마 전 고향으로 직장을 옮겨 모친과 함께 지내는데 모자간이라도 편치 않은 모양이다. 오며 가며 할머니는 우리 집에 들러서 아들이 집에서 밥 한 번 안 먹는다고 걱정, 잠 못 자고 밤중에 일 나간다고 걱정, 집에 들어오면 불 다 켜고 보일러 계속 돌린다고 걱정, 며느리 두고 혼자 있는 것도 안돼 보인다고 걱정이었다.

  그렇잖아도 아들은 읍내에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집이 잘 안 나와서 혹시 전세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러던 중 마침 우리 동네 작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아가씨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를 이 집에 살게 하면 아들 내외가 읍내에 이사 갈 필요도 없고 이웃에 사시니 자주 드나들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큰 집에 사시던 모친을 작은 집에 이사하라고 할 수 없는 자식의 입장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주제넘게 내가 할머니께 이사를 권유했다. 그렇잖아도 혼자 큰 집 지키고 있음 뭐하냐며 흔쾌히 승낙하셨다. 아들이 가까이 있는 것만도 든든하다고. 서운해 하시면 어쩌나 싶었는데 선뜻 응하시며

 “내가 그리 이사하면 넘들이 뭐라 안카겠제?  덕분에 내 맘 안 상하고 아들 내외도 편켔제?”

“누가 뭐라 하긴요. 할메만 괜찮으면 다 되는 기지예.”

이렇게 해서 이사를 하기로 하고 며칠이 지났다.

  여느 날 같으면 출근 하고 집에 없었을 텐데 대입시 날이라 쉬고 있는데 차가 길에 있어 왔다며 이사 갈 집 도배 다 하고 아들이 장롱 사러 읍내 갔다는 게 아닌가? 우리 집에 있는 그 장롱 보여드리니 아들 부담을 덜어 준다고 무척 좋아하셨다. 그리곤 내가 손 못 대고 있던 마른 밤 까는 일을 한참 동안 해주셨다. 두 해를 처마 밑에서 주인을 기다린 장롱도 좋아할 것 같았다. 

  아나바다― 아끼는 마음에 버리지 않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면서 정도 나누는 일이니 참 좋은 일이다. 보통 사람이 물건을 고르는데 이 장롱은 자기 주인을 기다려 다시 예전의 안방을 차지한 것이니 더욱 흐뭇하다.

 이번 주말엔 오미자 막걸리라도 사들고 할머니께 찾아가 집들이 하자고 해야겠다.

“할메 살림난 거 축하해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사이소.”


나는 경제 저격수였다(Apology of an Economic Hit Man)를 보고

                                                                       위초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화다 따라서 대개의 영화처럼 감독의 숨겨진 코드를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퍼킨스는 미국 제국 건설을 위해 세계 각국의 경제시장에서 소위‘작전’을 펼치던 이들 중 하나다. 이를 경제 저격수라고 불렀다. 9.11 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무시무시한 이슬람 테러집단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9.11 사건 속에 숨겨진 그간의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어쩌면 침략에 익숙했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리어 공격당할 수도 있는 나라였음에 경악했을지 모른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제국주의적 행태를 두 가지로 접근하고 있다. 군사적인 고강도 정책에서 저 강도 정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데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실패 이후 고강도정책을 회의하고 세계은행(IMF)과 다국적 기업을 통한 자본과 자원의 수탈을 용이하게 하는 저 강도 정책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얼마 전 3D영화로 소개되었던 아바타(ABATAR)도 자원수탈과 관련된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1968년 우연히 대학생의 신분으로 국가안보국에 채용된 뒤 경제 저격수로 키워져 활동해온 남자, 존 퍼킨스가 목숨을 걸고 음모를 밝히는 과정을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재연 드라마로 펼쳐진다. 한편으로는 존 퍼킨스의 증언과 관계를 맺는 역사적 자료화면들도 풍부하게 등장한다. 경제 저격수들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권력자들에게 접근하여 자원수탈의 대가를 흥정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쿠데타 또는 쿠데타 지원, 암살을 저질러 왔음을 밝히고 있다. 에콰아도르, 파나마, 이라크 등의 예를 적절하게 보여준다. 경제 저격수 들은 자원이 풍부한 제 3 세계에 주목한다. 문제는 그들이 제공하는 차관이나 원조 등을 통해 국가는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자원이 다국적 기업에게 넘어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부의 분배는 권력층으로만 혜택이 돌아감으로 인해 정작 국민은 엄청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 파산상태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이다. 민족주의자들이나 민주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정권이 들어섰다하더라도 요인 암살을 통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에콰도르의 하이메 롤도스와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 두 대통령은 모두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두 대통령은 모두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서로 결탁한 기업, 정부 및 은행에 반대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다. 경제 저격수들이 협상에 실패하면 그들이‘자칼’이라고 부르는 미 중앙 정보국의 암살자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라크에서처럼 자칼마저 실패하면 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방법, 즉 젊은 미국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보낸다.

 현대의 전쟁은 자원전쟁이다. 특히 석유자원은 미국이 노리는 최대 자원이다. 2003년 3월 20일에 시작된 이라크 전쟁도 미국의 거짓정보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미국은 끝내 자원전쟁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나 중동지방은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충분히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축복의 땅이지만 경제식민지를 꿈꾸는 미국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악몽이다. 경제저격수들은 이러한 악몽을 재현하는데 앞장서는 몰이꾼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표적이 된 국가에 민간인 신분으로 들어가서 그 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터무니없이 부풀려 예측하고 이에 따라 기간산업 개발 계획을 수립한다. 그들은 심지어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도록 표적 국가의 정, 재계 요인들을 매수하기도 한다. 석유 파동, 사우디아라비아 돈세탁 프로젝트, 파나마 운하 소유권 재협상으로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속여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운용하는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제적 약탈을 일삼을 수 있는 힘이 미국 특유의 정치 체제인 기업정치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거대 기업과 정부, 그리고 은행이 삼위일체가 되어 돈과 권력을 함께 쥐고 약소국을 상대로 전횡을 일삼는 기업 정치는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재직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맥나마라는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하고 나서 1967년 린든 존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 된다. 즉 IMF는 미국의 이익 정책을 가장 잘 실현시키는 금융기관인 셈이다. 우리도 IMF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 후유증이었을까 나라의 경제는 나아졌다고 경제수치는 나날이 바뀌어도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근로조건은 더 악화되었다. IMF 이후 급격하게 사라진 중산층을 생각한다면 미국 경제에 종속된 현실 극복이 당면과제로 느껴진다.

 퍼킨스는 10년에 걸쳐 경제 저격수로 활동한 그는 자신이 돈에 눈이 멀어 참여했던 사기 공작의 결과로 미국은 세계 경제대국이 되고 제 3 세계 사람들은 고통 받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는 미군의 파나마 침공이나 걸프전 같은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몇 번이나 경제 저격수의 정체를 밝히는 책을 쓰려 했으나 협박과 뇌물에 굴복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용기를 내서 미국의 경제 식민지정책이 얼마나 많은 제3세계의 자원을 장악하려고 하는지 담담히 밝히고 있다. 일부 청중들은 그를 조롱하기도 하고 일부는 그를 미래의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야유 섞인 말을 던지기도 한다. 미국이 일으키는 더러운 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생각해 볼일이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를 운운하면서 주둔하고 있고 친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