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간 사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

대저 작가란 동서고금의 주옥같은 명편들이나 읊조리면서 가끔은 한 잔 술로 가슴의 온도를 한껏 올린 채 파도에 쓸려가는 자갈 구르는 소리나 음미하면서 살아야 제격이다. 그도 아니라면 어느 낯선 무인도 단애나 떠돌면서 평생 고독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 그것도 아니라면 허름한 주막에 앉아 음주가무나 즐기면서 한평생 세상과 연애를 하며 사는 것도 즐겁다.


작가가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하는 시대는 역사적으로도 불행한 시대였다. 80~90년대 방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던 작가에 대한 정치적 발언의 요청이, 적어도 그런 요청이 있는 사회는 막말로 나쁜 사회이며 작가 개인에게는 어떤 면에서 인격 모독에 가까운 수치스런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와 다양성이 일상화되고 국경 없는 소통을 또 다른 미덕으로 삼는 넷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그 순간, 난데없이 광화문 광장은 컨테이너로 봉쇄된 채 불통의 시대로 역주행했고 미네르바는 고국을 등졌으며 70년대 이전에나 상상할 수 있었던 삽질공화국으로 1년 만에 회귀하는 희비극을 목도했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다 담아도 모자랄 작가의 입은 이제 분노의 정치적 수사로 가득 찼고 자연의 진경을 그려내야 할 작가의 붓끝은 온갖 성명서를 쓰거나 격문에 서명하는 잡일로 바뀌었다. 이제 작가의 머릿속 상상력은 사회과학자나 정치평론가와 별 다를 바 없는 지경에까지로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바람소리로 돌아가길 원한다. 우리는 다시 원래 있던 남해의 孤島로 돌아가길 원한다. 자기만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자기만의 애인 곁으로 복귀하길 원한다. 이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인 상태를 종식하고 원래의 술자리로, 원래의 노랫가락 속으로, 7색의 강물 속으로 다시 돌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아직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당분간은 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영주작가』6호에서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영주댐 건설로 지역의 평은강과 내성천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을 천경배 신부님과 송성일 선생님의 글을 통해 고발하고자 한다.


또 출향문인으로 우리 시조 시단에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박시교 시인과 역시 소설계의 중진인 봉화 출신 정소성 선생님을 모셔서 좀더 두툼한 책을 만들고자 했다. 


역시 지역출신으로 서울대 라티아메리카 연구소 소장이신 김창민 교수님의 글은 우리를 스페인과 멕시코 灣의 어디쯤에 내려다줌으로써 우리의 눈과 귀가 한층 더 밝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순흥 출신으로 진보적 문화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정윤수 선생님의 글 또한 현 시대에 대한 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지역 초대시는 수주 번영로 선생의 고향인 부천작가회의를 모셨다.


원고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영주작가』가 좀 더 내실을 기하는 책이 되길 소망한다. 또 지역출신의 문인들을 더 많이 발굴해내며 지역의 보수적인 문화풍토를 쇄신하는 환풍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2010년 6월 2일


                             한국작가회의 영주지부장   박승민

 

 

 

 

 

 

시처럼 소설처럼


김우출


별이 쏟아진다

삼경(三更)의 정적과 미망(迷妄)속을

별과 함께 달리고 있다

코고는 소리를 싣고 침대열차가 달리고 있다

차창 밖에 쏟아져 내리는 별처럼

나는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시집이 쏟아진다

읽어줄 사람도 없는데

발표하기 위한 지면을 향해 달리고 있다

출판물의 홍수시대에 나까지 보태고 싶지 않은데

명색이 시인들끼리 서로의 시에 주례를 서고 있다

삶이 연극이고 소설이라면

어디 시처럼 소설처럼 살 수는 없을까

시처럼 소설처럼 말이다














(습작) 아버지 父 아들 子

- 정윤천 시를 읽다가

                          강태규

 

(2고)

 

'아버지 父' 를 읽다가,

나도 엇갈린 심지를 흉내냈다

 

아버지, 란 아물지 않는 생채기 같아서

만지면 아프고 덧날 것만 같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쯤 읽다가

생채기를 가린 딱지가 손톱처럼 벗겨진다

 

아버지란,

제 살과 발톱과 상처를 덮고있는 

죽어가는 살과 같아서

떨어져 나가면,

아프다

 

'아들 子' 의 가슴에

큰 쇠못 하나 그릉댄다



















짜장국물로 그린 그림

 

강태규

 

국물이 먹물처럼 보이는 날이다

 

남은 짜장국물을 숟갈로 긁다가

너울너울 산굽이가 보이더니

골골이 멧돼지 몇 내려오고

 

여남은 밥알을 사근사근 긁다가

아슬아슬 다랭이논이 거뭇머뭇하더니

밥투정하는 아이도 희끗희끗 보이고

 

뱃길 만든다고 휘적인 강변에는

밭이 사라진다

젓가락으로 집어올린 만한

당근이나, 파나, 감자가 없다

짜장 그릇만 깨끗해졌다

 

그것도 낙동강 물길 공사 덕이려니, 했다



















                           새해 첫날의 다짐


                                      권 화 빈



                               새해가 밝았다

                               달력을 꺼내놓고

                               요리조리 동그라미 친다

                                


                               내 나이 벌써 쉰!

                               이제는 

                               될 수 있는 대로

                               부록은 빼며 살기로 했다

                                


                               꾹, 꾹,

                               엎드려 손가락에 힘은 주지만

                               그러나 가끔씩 새해 다짐은                

                               단 한 줄도 너무 길 때가 많다  














폐강(廢江)

  김 소 인

 선생님, 선생님 좆도 아닌 뱃노래는 그만 하셔요 낙동강은 이젠 강 아니어요 무뚝무뚝 끊어낸 창자 허연 배 뒤집은 채 까무라친 청태 낀 강바닥에 무엇 하나 살 수 있겠어요 어기어차, 어기어차 워녀리 씨발놈 고혈압 심한 강줄기에 배 띄우고 불알 잡고 탱자탱자 술잔 돌릴까요 어느 귀한 농부님네 저문 강서 삽 씻고 돌아갈 집 있을까요 선생님, 선생님 이제 그만 눈물 거두시고 고향 앞 좆퉁수나 허벌나게 부셔야죠 강 건너 미루나무 아래 기다려줄 님 그림자 얼씬 않고 여름 밤 환하던 물그림자 대신 말라버린 물새의 꿈  한숨처럼 떠다니는 걸요 선생님, 선생님 이제 그만 돌아가셔요 언젠가 강둑 가득 피어나던  서러운 풀빛보다 못한 좆도 아닌 강의 노래  이젠 신물 난다니까요























보덕각시 


박 희 용


다시 봄이 온다면

산수유꽃 울타리로 피는

지도에 없는 헌 집에서

다시 한 사랑 짓고 싶네


다시 봄이 온다면

이젠 남자를 버리고 싶네

오줌 누는 보덕각시를

이젠 무심히 보고 싶네


전생에 질펀하던 오르가즘

산뜻하니 버리고

이몸이 저몸으로

저몸이 이몸으로

무명 이불 밑에서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싶네


다시 봄이 온다면

이젠 단단한 남자로 서고 싶네

덜 익은 보덕각시 생식기

산뜻하니 고쳐

밤마다 비단이불 밑에서

금빛 샘물 마시고 싶네



 

 김재현

믿지 않겠지만  

나는 불을 가질 것이다 

보아라 

바위틈에서 태어난 뱀들이 먹이를 찾기 전부터 어둠은 있었고 

새들이 날개 짓 하기 전부터 불은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을 찾지 못했다 

 

억압과 압제에 저항하던 좌절과 고뇌가 있었고 

자유롭지 못한 자유를 위해 같이 울던 젊음이 있었다 

한잔 술에 울분의 가슴을 여미던 낭만도 있었다 

믿지 않겠지만 

청춘의 나는 불을 가지려 했다. 

 

보아라  

그리하여 불거진 꿈  

그리하여 불쑥 솟은 나의 의지를 보아라. 

우리가 잃어버린 불이 살았던 그 자리 

바위처럼 달궈진 뜨거운 희망을 되새김질 하며  

삭풍의 풍무질에 폭풍 같은 돗을 세우고 

어둠속에 가라앉은 전설의 불을 가지러 간다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어 줄 

아름다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밝히며 

이제  

세상의 모든 빛은 나에게서 태어 날 것이다 

 

보아라 

믿지 않겠지만  

나는 불을 가질 것이다

 

 

 

 

 폭 설

  권석창


이따금 폭설이 내려

집과 집으로 난

마을과 마을로 난

길을 지워버리는 것은

그리하여 너와 나를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려 하심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의 전용도로인

하얀 길을 만들게 하려 하심이다

그리하여 눈이 녹을 때까지

밤새워 긴 편지를 쓰게 하려 하심이다

그리움의 자음과 모음이

맨발로 하얀 길을 가게 하려 하심이다


 

 

 

 

 

 

 

 

 







꽃잠


권자미



늦잠을 잔다 장미 꽃수와 손날염한 잘잘한 안개꽃이불을 깔고

뻗어가는 넝쿨처럼 보듬어 자는 잠은 우리식 안부다


오늘도 아토피 때문에 둘째는 잠결이 솔다


노란 장판이 깔린 안방은 안전하고

붉은 벽돌 담장은 견고하다


이불을 털어 널고, 전화를 받고, 마당을 쓸고, 서로의 밥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주는 달그락거리는 사소한 일들


잔다, 오래 자는 잠은 꿈도 많지 달기도 하지 눈곱 붙어도

부끄러워 말고 일요일 아침 느긋대게 고양이처럼 쩌~억 하품도 하면서

담을 넘던 줄장미가 꽃무늬 카펫을 그늘에게 깔아 줄 때까지


줄장미식으로 무던하게 뿌리가, 잎에게, 잎맥에게, 줄기에게 하듯

우리는 우리식으로 안녕을 묻는다



















장날 이야기

      김 주태


싸락눈 밟으며 걸었다
얼음 낀 계곡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시오리 종점
얼어 푸석한 고추포대 내려놓은
후줄근한 엄마 등 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오일장 읍내로 가는 버스 안
대나무집 오지랖 창동댁
아. 글쎄 예수가 죽었답니다.
예수가 누군겨
머리는 산신령같이 축 늘어 뜨려
이마의 피는 온몸 칠갑하고
송판때기 매달려 손에 못 박힌 사내
어찌 죽었다 합니까
참 답답네 못에 찔려 죽었다 안 합니까
곰곰이 뒷좌석에서 듣고 있던 후포댁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데
서울 큰며느리 친정아버지 아닌가 몰라
올 봄 아들집 갔을 때 벽에 걸어 두고
아버지, 아버지 하더니
이제야 눈 감아 버렸구먼,
그 여린 것이 얼마나 가슴이 쓰릴까
제 목숨 다하고 죽어도 서글픈 판에 못에 찔려 죽었으니
달력에 적어둔 전화번호나 찢어올 걸.
그나저나 부조봉투에는 얼마나 넣어야 할꼬.
세월이 흘러
이 동네 저 동네 하나 둘 말동무 산으로 가니
부끄러울 것도 없는 지난 이야기
모두들 무심히 넋 놓고 있는
마을회관에서 풀어 놓자
치매 걸린 할망구 벌떡 일어나
똥 기저귀 턱- 뽑아 들고
예수 같은 년 뭣이 어째 하고 휘둘러
모두들 혼비백산 달아나버렸단다.











잉어를 기다리며

  박승민

 

 

개구리밥이 좀이 슨 벽지처럼 붙어 있는 늪은

좀처럼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지 않았고

바위 옆에 장구애비처럼 웅크리고

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매번 빈 소쿠리로 귀가하는 것이 그의 직업

미늘 없는 낚시에 특히 능했다

어떨 때는 떡밥대신 자신을 던지기도 했다

  

물수세미위로 엄마의 어두운 음색이 자주 기포로 뽀글거렸고

그런 날은 저녁상에 잉어대신 어린 쑥국이 올라왔다

  

오십억불 금자탑이

백억불 수출탑으로 바뀌어도

한 번도 물지 않던

아버지의 금니 잉어

  

낚싯줄에 매달려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던 水生家族

 






어머니집의 버려진 나무들

                        김 현 곤

어머니집에는 버려진 나무들이 누워 있다.

60년 넘게 큰집을 홀로 지키다 지난 해 쓰러진 감나무는 가지가지 베어다가 아랫채 봉당에 눕혀두고, 문화 주택 짓는다며 내다버린 50년 넘게 손때 묻은 외삼촌네 장롱은 조각조각 떼어다가 대문간에 눕혀두었다.

 

어머니는 6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잘도 눕혀 키우셨다.

주말에 자식들이라도 들릴라치면 온돌방에 잠시 누웠다 가라신다.

 

당신은 80년 넘게 고목처럼 서 계시면서도 버려진 나무들이 팔다리가 쑤시는 날이면 부엌 아궁이 속에 눕혀두고 조약으로 불을 쪼이신다.

당신이 팔다리가 아프시면 읍내 약장수에게 가 적외선 불로 지지시는 것처럼 그렇게 버려진 나무들에게도 정성껏 치료를 아끼지 않으신다.

 

부엌 아궁이 속 나무들이 고맙다는 탄성을 지른다.

어머니의 마른 몸속 뼈들도 신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해 겨울

  김 철 옥

하루는 흐리고 비
하루는 안개
늘 이런 식이었어
그해겨울은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주머니는 비어 있고 그리고
졸업 앨범 속에 멈추어버린 시간
좀처럼 걷히지 않는 안개 그리고
널 기다리던 레코드 가게의 물망초 꽃잎 한 장

네게 쓴 편지는 수취인 불명이고
거울속의 욕망은 나날이 수척해졌어
하루는 흐리고 비,
하루는 안개
출구 없는 거리에
나 혼자 우두커니
그해 겨울동안
























 자화상을 그리다
          송재훈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거울을 치웠다

고작 몇 개의 표정만으로
나를 고착시켰던
거울의 부재, 난감하다

화실은 이미 유리알이다

타인의 망막 위에서 드로잉 되던
비늘 같던 시간
그리고 인상들

지운 선(線)들이 상을 조정해가듯
지운 상들이 표정을 정정해내고 있다

함부로 성형하는 버릇처럼
자화상은 더디다

상상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익히 맞닥뜨린 적이 없는
낯설지 않은 타인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