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1호...
   2019년 09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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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필 촌평(隨筆寸評) /채선후 file
편집자
27 2019-09-02
수필 촌평(隨筆寸評) 얼마 전 모 문학창작지원금 수필부문 심사평(審査評)을 읽었다. 긴 심사평을 짧게 요약하자면 대부분 일상을 소재로 잡다하기 그지없고, 실험작을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수필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 유명 인사들의 수필, 에세이, 산문이라는 제목 하에 정치적, 철학적, 교훈적인 내용에 자기 목소리를 담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저서들은 많지만 거의 비슷한 분위기다. 심사위원도 새로운 분위기의 글들을 만나고 싶어 촌평에 내비쳤을 것이다. 한 권의 수필집은 새로운 세계와 같다. 수필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픈 세계를 펼쳐 낸다. 그런 수필집 첫 장을 넘기면서 마구 설렌다. 어떤 세계를 담고 있을지 첫 문장에 대한 궁금증으로 떨리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몇 장 넘기다 말고 덮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필집에 담긴 지식은 백화점 판매대 상품처럼 잘 포장된 듯 보이고, 살아온 경험은 훈계적이며, 훈계는 대차서 그만 기가 죽는다. 내 경우는 그렇다. 혹자는 수필은 이것저것 붓 가는 대로 쓰기만 하면 다 담을 수 있고, 담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잡다한 것으로 단정 지어 하찮게 여긴다. 어떤 이는 이런 면을 두고 잡문(雜文)이라고도 한다. 고문(古文)에서는 공적(公的)인 문서에 해당하는 글의 종류 외 개인적인 글은 따로 잡록(雜錄)으로 묶었었다. 잡록이나 잡문은 글의 종류가 여러 가지 섞여있다는 의미지 하찮은 글은 아니었다. 오히려 잡록(雜錄)에 심채(心彩)가 고와 지금에 봐도 아름다운 수필이라 할 수 있는 글들이 많다. 이쯤에서 수필의 시작을 잠깐 적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송나라 홍매의 『용재수필』을 수필(隨筆)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용재수필』은 수필이란 명칭이 문집 제목에 보이는 시작이지 수필이라 할 수 있는 문형(文型)의 시작은 아니다. 수필의 시작을 파헤치다 보면 고문(古文)의 문형 중에서 전부(詮賦)를 만날 수 있다. 유협은 『문심조룡』에서는 전부(詮賦)에 대해 말하기를 1) 전(詮)은 저울에 달다는 의미고, 부(賦)는 운문의 형식으로 사물에 대해 폭넓으면서도 상세하게 서술한 것이 특징이 있으며, 『시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시의 창작 방법 중 하나였던 부(賦)로 쓰인 산문이 점점 문체로 자리 잡은 것이 수필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산문 중에서 문(文)은 작가의 마음이 실린 글이며, 마음이 실리지 않은 것은 필(筆)이라 한다. 어찌 되었든 수필은 언어예술인 문학이다. 작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작가 마음이 곧,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文)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로 문(文)은 ‘유지하다’라는 뜻이 있어 감정이나 품성을 올바르게 지켜 맑은 상태가 된 후에 붓을 잡는 것이며, 그때 붓 가는 대로 쓴 산문이 수필이 될 수 있다. 곧, 수필은 마음의 울림을 좇아 올곧게 유지하여 그 울림을 따라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쓴 문장은 아름답다. 또 누군가에게 약(藥)이 되기도 한다. 약과 같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보여 줄 필요는 없다. 대차게 고집이 세지도, 걱정 넘치는 훈계가 아니어도, 세상을 향해 정치적이 아니어도 된다. 수필에 있어 실험은 무엇인가. 수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에 있다. 수필가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뇌와 번민, 반성, 고찰 이런 것들이 문(文)에 촘촘히 베어 무늬를 만들고, 무늬는 시간이 지나면서 향기를 담아낸다. 곧 수필가는 무늬와 향기를 유지하기 위한 실험을 해야 한다. 그런 작가의 상황을 나는, 선정(禪靜)이라 하고 싶다. 수필가는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참되고 바른 이치를 생각하고, 괴로움을 떠나서 고요한 경지에 이르게 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인 선정(禪靜)2) 을 유지해야 한다. 선정(禪靜)은 특정 종교인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수필가는 선정(禪靜)에 들듯이 글을 써야 하며, 선정에 들기 위한 실험을 해야 한다. 여기서 선정(禪靜)은 쉽게 말하면 설거지다. 작가 자신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번민과 밖에서 솟구쳐 오르게 하는 세상의 온갖 것들을 설거지해야 한다.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될지, 어떤 상태로 닦을 것인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개운한 상태를 유지한 순간 붓을 들어야 한다. 그 순간을 따라 쓴 문장은 아름답다. 간혹 어느 시골농부의, 세상 끝에 서 있는 노동자의, 까막눈 할머니의 삐뚤거리는 글에서 묵직한 울림이 단어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글이 아름다운 수필이 된다. 수필은 굳이 수필가가 아니더라도, 문학이론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다. 내게 수필은 그런 것이다. 자꾸만 ‘수필’이 뭔지 속에서 물어온다. ‘수필’, 그 짧은 단어에 답문이 길어지고 있다. 오전 내내 수필에 관해 끄적거려 보았는데 모르겠다. 몇 줄 써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해는 겨울을 꼿꼿이 바라보고 있다. 언 땅 위를 초록 과자상자 같은 버스가 기어가고 있다. 이 추운 날에도 오늘을 유지하기 위해 저리 다니는가 싶어 대견스럽다. 밖은 풍경을 따라 겨울다웠다. 간밤 술 취해 들어온 남편은 아직까지 자고 있다. 술국 타령이 슬슬 기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심사(心思)가 복잡하다. 내게 오늘은 이렇게 수필되어지고 있다. 채선후: 약력 2013년 『에세이스트』 등단. 수필집 『십오 년 막걸리』, 『문답 대지도론』, 『사춘기자녀와 부모를 위한 대지도론 마음 비행기』, 『머뭄이 없는 가르침』, 『기억의 틀』, 『Waiting For The First Snow』, 『Mind Glider』 champ5263@hanmail.net 1) 유협, 성기옥 역, 『문심조룡』,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46쪽. 2) 원효, 조용길 외 1인 역, 『금강삼매경론 상』, 동국대출판부, 2002, 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