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할배를 말릴 수 없다

 

가끔 오르는 집 근처 야산이 있다. 등산도 아니고 산책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걷기 코스다. 산을 한 바퀴 돌아서 집에 오면 한 시간쯤 걸린다. 요즘 유행가조로 말하면 산책하기 딱 좋은 산이다. 집 가까이 이런 산이 있어 주어서 고맙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사각형 아파트에 갇혀 살다가 가끔 천천히 오르며 내리며 볼 것도 보고 들을 것도 들으며 바람도 쐰다.

 

아파트에 살면 날씨와 계절을 잊기 쉽다. 밖에 비가 오는지 혹은 추운지 더운지 알지 못한다. 다행히 산에 오를 수 있어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을 보고 계절의 바뀜을 알 수 있다. 사람도 원래 자연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갈라놓는다. 그러니까 산은 내게 있어서 자연과 반자연을 소통하게 하는 통로인 셈이다.  

 

언제인가부터 이 야산에 손바닥만한 산밭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소일거리로 평평한 곳을 일구어 만든 밭뙈기들이다. 이렇게 생긴 밭은 대개 기대 이상으로 작물들이 탐스럽게 자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가 그것이다. 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내가 보는 산밭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산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밭에 온다.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하게 가꾸어진 밭에서 고구마, 고추, 들깨, 땅콩, 배추, , 상추 등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좋은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서 그 밭을 가꾸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하기에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이 유모차로 물을 실어 나르고 거름을 실어 나르고 흙에 몸을 가까이하고 작물을 가꾸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정성이 저 손바닥만한 밭에서 씨앗에 싹을 틔우게 하고 잎과 줄기가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한다. 그 과정이 성스러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서로 모른 척 하가가 쉽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림새가 다르듯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밭에 가는 길이나 산책길이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거나 같은 지점에서 쉴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게 되어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내는 노인이 있다. 허리 굽은 왜소한 노인이었다. 자신의 몸도 힘겹게 추스르는 노인이 어떻게 푸름이 가득한 밭을 가꾸어 내는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가 일구어 내는 밭을 통해서 그의 성실한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를 대하는 태도가 나도 모르게 공손해졌다. 나도 중늙이는 되니까 노인에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416일 시민연대에서 주관하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 다녀왔다. 거리에서 하는 밤 행사였다. 추모시를 낭송해 달라는 주최 측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전에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이 효순이 추모제에도 추모시를 낭송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시민들이 차린 분향소에서 추모시를 낭송한 적이 있다. 시를 쓰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임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작년 오늘 수학여행 간다고 집 나서더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구나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잊지 않고 있다

다시 개나리가 피고

우리들 가슴에도 노란 개나리 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지겹다고 한다

세월호 이야기 그만하자고 한다

세월호 이제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정권은 ‘세월호 진상조사특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한사코 한사코 덮으려고 한다

잊으라고 한다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아이가 수학여행 떠나서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영문도 모른다면

당신은 잊을 수 있는가?

 

왜 세월호가 가라앉았는지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지

왜 가라앉는 배를 보고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왜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야 했는지

왜 그들은 잊으라고 하는지

왜 한사코 덮으려고 하는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304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운전자 한 사람이 잘못한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잘못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수학여행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

이 땅의 누구도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울지 마라,

왜 너희들이 돌아오지 못하는지 밝혀지는 그날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잊지 않겠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울지 마라, 우리가 잊지 않겠다

             -권서각 시 「울지 마라, 우리가 잊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쌓여서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산밭을 일구는 노인 같은 분들만 있으면 이런 비참한 사건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 전이었다. 산을 오르다가 밭둑에 앉아서 쉬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다짜고짜 한숨을 섞어 말을 했다. 그간 정이 들어 미덥기 때문에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속상해 못살시더.

그가 가꾼 밭에서 푸른 싹들이 봄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머가 그키 속이 상하이껴?

 

어제 갑자기 밭 임자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기가 이 땅을 사서 측량해 보니 노인이 가꾸는 밭뙈기도 자기가 산 땅에 포함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제 자기의 땅이니까 당장 농사를 걷어치우라는 것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자라고 있는 것들을, 자식 같은 것들을  어찌할 수 없으니 거둘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애원을 했단다. 당장 그 땅에 무엇을 할 것도 아니면서 그는 막무가내로 당장 농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인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데 있니껴? 그놈은 노무혀이보다 더 나쁜 놈이래요.

나는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그 무엇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노인의 작물 기르는 정성이 너무나 경건해서 잠시 이 지역의 정치적 성향이 수구꼴통 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기에 더 통증이 심했다. 못 말리는 할배다.  

 

201611.

대통령이 최아무개라는 여인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박그네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은 사실 국정원이 개입한 부정선거였다. 권력과 법은 부정 선거를 덮고 말았다. 이를 밝히려던 검찰총장을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폭로로 물러나게 하고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려던 검사는 좌천되었다.

  아예 대통령의 능력과는 거리가 먼 독재자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된 것이다. 현대사에 대해 웬만한 상식이라도 가진 이들은 그녀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녀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 하나를 뽑았는데 뚜껑을 여니 실질적인 대통령 권력을 행사한 것은 최아무개 여인이 있었다. 시민들은 슈퍼에서 상품 한 개를 샀는데 원하지 않는 상품이 하나 더 들어 있었다고 풍자했다. 이른바 1+1이라는 상품이다. 외국 신문 만평에 대통령 머릿속에 최아무개가 들어 있는 그림이 실렸다. 청와대에서 비아그라를 산 것이 밝혀지자 파란 집에 파란 약이란 조롱이 외신을 타고 세계에 펴졌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에 그해 11월에서 12월까지 서울 광화문에는 토요일 밤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차 촛불 집회에는 252만이라는 촛불이 밝혀졌다. 정치적 성향을 초월한 촛불 문화제가 계속되었다. 기미년 3.1혁명 이후 가장 장엄한 민중혁명이었다. 출판사는 촛불 혁명이란 시 모음집을 펴낸다고 시 한 편을 써 달라고 했다. 고려시대 경기체가를 패러디한 시 한 편을 썼다.

 

기미년 31일 정오

삼천만 우리 겨레 하나 되어

대한독립 만세 부르는

경 긔 어떠합니까?

 

을유년 815

집집마다 숨겨 두었던 태극기 들고 나와

거리마다 만세 부르는 흰옷 입은 사람들

경 긔 어떠합니까?

 

1960419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에 나와

독재정권 물러가라 외치는 꽃다운 학생들의 함성, 행렬

경 긔 어떠합니까?

 

친일에 뿌리박은 독재정권, 군사정권

그 부도덕한 권력에 온몸으로 맞서던

19876, 1980518일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며 끌려가던 피 묻은 세월

경 긔 얼마나 고락에 겨운 나날이었습니까?

 

그래도 부도덕의 주류는 흐름을 멈추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이들,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을

, 돼지라 부르며, 종북이라 부르는

경 긔 얼마나 족같습니까?

 

꽃다운 우리 아이들 304명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는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부도덕한 권력의

그 민낯이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아으

경 긔 얼마나 끔찍합니까?

 

201611월 첫눈 오는 날

광화문을 밝힌 180만 촛불의 장엄함이여

지역마다 켜진 촛불 52, 합하여 232

임 시인과 소설가 경자 누님과

잠시 뒷골목에 스며들어 술 마시는, 변방에서 올라온

위 날조차 몇 분입니까?

  - 권서각 시 「광화문 별곡」

 

촛불민심에 밀린 국회에서는 압도적이 표 차이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이 때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였다. 광화문 거리에는 하야송이 울려퍼지고 휴대폰 배터리도 4%면 하산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다. 촛불 혁명의 승리였다. 그래도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 문화제는 이어졌다. 서울에 가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지역별로 촛불 모임을 이어갔다. 지역 촛불 문화제를 할 때면 반드시 할배 한 사람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행사장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소리를 지른다.

  “뭐 하는 짓이여? 대통령이 뭔 잘못을 했어?

 

  이 와중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모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사모라든가 어버이 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주도하는 집회였다. 이른바 맞불 집회라 했다. 많게는 몇 만 명이 모이기도 한다. 그들은 촛불은 들지 않는다. 대개 낮에 모여서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다가 돌아간다. 모임이 끝나고 참가자들에게 5만원이 든 봉투를 나누어주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들은 대부분 내 또래의 할배들이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아직도 박그네가 탄핵되어 망연자실하다. 단체 채팅 방에는 내 친구들이 올린 괴문서가 난무한다. 김재동, 문제인 등이 종북이라는 내용, 우리가 곧 월남처럼 적화통일 된다는 내용,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북의 지령을 받은 종북이라는 내용 등이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초등학교 동기회와 고등학교 동기회회가 같은 날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옛 친구들 만나는 설렘으로 동기들 모임에 적극 참가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99%가 수구꼴통인 동기회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동기회에는 서울 회의에 간다는 사유를 말하고 광화문에 갔다.

 

  광화문 촛불 혁명의 현장은 참으로 감동 그 자체였다. 어느 국회의원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에 엘이디 촛불이 등장했다. 그날 첫눈이 내리고 진눈개비가 내렸기에 난 엘이디 촛불을 마련했다. 전단지, 스티커 등은 개인이 수천 만 원을 들여 제작해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촛불집회 무대 시설, 음향기기 등 경비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마련했다 한다. 가장 규모가 큰 촛불집회 때는 경비가 19천이 들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안내판을 들고 화장실을 안내하기도 하고 쓰레기 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모으기도 했다. 어묵 등 음식물을 제공하는 이들도 있었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장엄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신은 이 감동적 평화 시위를 세계에 알렸다. 나는 기미년 삼일 혁명을 떠올리며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꼈다.

 

  동기회에 가지 않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다녀온 얼마 후에 길에서 초등학교 동기를 만났다. 이미 그들은 내가 광화문에 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사가 끝난 뒤 친구가 물었다.

  “자내도 5만 원 받았는가?

  나는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밤새 설명해도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못 말리는 대한민국 할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