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줄 알았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가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나 죽는 줄 알았다.”

이 친구는 몸이 부실하기에 혹시 무슨 일로 응급실에 실려 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완전히 빗나간 추측이었다. 나와 허물없이 지내는 그였기에 그는 자초지종을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내다. 흔히 공처가란 말을 쓰는데 사회에 통용되는 공처가에는 조금은 장난스런 뜻이 입혀져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공처가란 말은 액면 그대로다. 우리의 대화 습관에 상대로부터 곤란한 부탁을 받았을 때 ‘생각해 보겠다.’고 하면 대개 긍정적인 대답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어떤 이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면 정말 그때부터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 공처가란 말은 정말 아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부끄럼이 많은 사람이다. 부끄럼이 많은 사람은 대체로 유순한 성격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유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의에는 굽히지 않는 강한 성격도 지니고 있다. 반면에 그의 아내는 흔히 말하는 기가 센 여지다. 남과 다투어 지는 법이 거의 없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서 남남으로 만난 것이 부부이기에 신혼에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도 처음에는 아내에게 맞서기도 했지만 도무지 게임이 되지 않았다.

 

말다툼이 길어지면 때로 가재도구가 화를 입는 일도 있었는데 모든 부서진 것은 아내가 던져서 그렇게 된 것들뿐이었다. 때로 아내에게 대화로 풀어보자고 했지만 늘 아내는 논리를 초월해서 자기만 옳고 그만 옳지 않다고 하기에 대화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가 겨우 생각해낸 꾀라는 것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명언이었다. 그것을 금과옥조로 가슴에 담고 힘겨운 부부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아이들도 태어나고 아이들이 자라고 중년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바뀌어 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근근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졌다. 대개의 세상사는 사회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벗어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통념은 그를 무참히 배반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면 대개의 문제는 해결되게 마련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문제가 더 심화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아프게 깨달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는 밖에서는 포용력이 있고 헌신적이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가 만난 아내의 직장 동료들은 모두 아내를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그에게 말씨도 공손하고 조신한 아내의 역할을 했다. 밝은 표정으로 웃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금슬 좋은 부부로 여겼다. 그러나 일단 집에 오면 찬바람이 인다. 여러 사람들 보는데서 자기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무시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시했는지 물었지만 구체적 증거는 대지 않는다. 그냥 그의 태도가 그랬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늘 전전긍긍의 연속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생각해도 묘한 캐릭터를 지닌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부부싸움도 잦았다. 한 마디 두 마디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서로의 감정이 점점 고조되고 급기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그가 ‘씨바’라고 소리를 높이면 그의 아내는 일체의 집안일을 하지 않고 먹지도 않고 누워서 지낸다. 할 수 없이 그가 밥을 짓거나 미음을 쑤어 차려놓고 먹자고 해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 기간 그는 자기가 한 밥을 홀로 먹고 출근할 수밖에 없다. 퇴근해 보면 아내의 밥그릇은 아침에 차려진 그대로 식어 있다.

그는 늘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늘 ‘재립에 닭 가듯’이라는 속담을 떠올리곤 했다. 재립은 삼 껍질을 벗겨내고 남은 마른 대궁을 가리킨다. 연해서 쉽게 부러지는 성질이 있다. 나뭇가지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닭은 가끔 재립에 오르기도 한다.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재립 위를 걷는 닭의 처지와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의 처지가 흡사했기 때문이다.

 

의사를 하는 제법 넉넉하게 사는 선배가 소백산 속에 농가주택을 하나 마련했다. 그리고 몇 사람의 부부를 초청했다.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부동반 모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만약 피한다면 언젠가 당신은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 왜 말하지 않느냐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불편해서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아닌가? 당신은 남자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하고 공격할 것이 불을 보는 듯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모임을 통해서 다른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부부관계가 호전되리라는 기대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부부모임 초청이 있으면 가급적 참가하려고 했다.

 

부부동반 모임을 할 때 조심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그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농담으로라도 아내를 폄하하는 발언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남의 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안 된다. 다른 남자들보다 초라한 차림을 하면 안 된다. 아내를 위해 준다는 자상함을 드러내야 한다. 이 몇 가지가 지켜지지 않으면 돌아와서 며칠간은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지키기가 그리 쉽지 않다. 같이 어울려 주거니 받거니 대화도 하고 술잔이 오가다 보면 유쾌한 농담이 오갈 때가 있다. 그 때 무심코 뱉은 한 마디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늘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니, 긴장하거나 아니거나 결과는 늘 같았다. 그래도 긴장해야 한다.

 

풍광 좋은 산길을 걸어 선배의 농가에 다다랐다. 집은 국립공원 안에 있어 증축이나 개축을 할 수 없기에 화전민이 살던 그대로의 집을 보수만 한 집이었다. 우리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 밥을 짓고,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즐거운 숲속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하루 나들이가 끝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무사히 이루어졌다. 그에게 있어서 그날 나들이는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졌다.

 

이튿날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어떻게 하면 식탁의 분위기를 좀 더 호전시킬까 생각하다가 어제 있었던 나들이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남자들끼리는 서로 자주 만나는 사이지만 여자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다른 아내들은 모두 평범한 것 같았다. 남자들도 아내에게 긴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만약 그가 다른 남편들처럼 저런 대사를 하면 자기는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속으로 자기의 아내도 저들처럼 평범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만약 그 생각을 밖으로 이야기하면 엄청난 비극이 올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속으로 생각만 해야 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내에 대한 칭찬의 대사를 읊었다.

“당신 다른 부인들보다 훨씬 젊게 보여.”

아내는 다른 아내들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말을 하다가 그 끝에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줄 알아!”

이러는 거였다. 순간 그는 숨이 턱 막혔다.

 

죽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런 까칠한 호박이 어디 있어?’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려고 했다.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이 말을 억누르며 다시 쑤셔 넣느라고 다시 죽을 것만 같았다. 죽을 것 같은 모습을 감추려 안간힘을 다했다. 들키면 또 어떤 말의 칼날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발코니로 천천히 걸어가서 심호흡을 하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엔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