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갈쳈불라

 

지금은 머슴이란 말이 비유적인 표현으로만 쓰이는 말이다. 가령 청문회에 나온 재벌총수에게 국회의원이 질의 할 때 재벌총수가 머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비리 사실에 대해 총수의 부하에게서 들은 말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자 총수는 대뜸

“주인이 알지 머슴이 어찌 압니까?”

하고 대답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후에도 주인 혼자서 농사를 감당할 수 없는 집에는 머슴을 두었다. 상머슴은 일 년 새경이 쌀 열 두 가마니였다. 쌀이 물가의 기준이 되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적은 연봉은 아니었다.

 

상머슴 대길이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이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글 읽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글자만 보면 골머리가 아팠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 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대신에 농사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머슴은 주인이 말하기 전에 농사의 절기를 알아 때에 맞는 일을 미리 준비하고 할 줄 알아야 한다. 낮에는 들일을 하고 밤에는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 일을 해야 하고, 겨울에는 산에 올라 땔나무를 해야 하니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대길이는 머슴의 임무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천금을 준다고 해도 그만큼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길이가 그나마 힘든 머슴살이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머슴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특전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철 철따라 주인집에서 새 옷을 지어준다. 여름에는 시원한 베로 지은 고의적삼이요, 겨울에는 솜을 포근히 두어 지은 솜바지저고리를 입을 수 있다. 끼니마다 받는 밥상은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반 이상 섞인 고봉밥에 비린 생선 한토막이 빠지지 않는 독상이었다. 주인 집 식구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 밥상이었다. 농번기가 끝날 무렵이면 얼마의 노자를 주어 고향에 다녀오게도 했다.

 

머슴은 당당하게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주인이 하인 부르듯이 이름을 부르니까 웬만한 사람은 너도나도 대길이, 대길이, 하고 불렀다. 그래서 대길이는 다른 사람들과 말 나누는 시간 보다 소하고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사람보다 소하고 가까이 지내다 보니 사람보다 오히려 소하고 대화가 잘 통하게 되었다. 여름철 소가 한참 힘들 때는 소가 말했다.

“대길아, 힘들다.”

그러면 대길이는 쇠죽을 끊일 때 콩을 한 바가지 넣어서 끓인다. 구수한 쇠죽 냄새가 처마 밑에 퍼지면 소도 기분이 좋고 대길이도 흐뭇하다. 소꼴을 베다가 뱀을 보면 잡아 두었다가 소꼴과 섞어 작두로 썰어 소에게 준다. 이른바 대길이표 보양식이다. 뱀은 장날 약장사에게 가면 이름이 배암으로 바뀌고 자양강장제가 되기도 한다. 대길이가 보양식을 주면 소도 모처럼 고단백 식사로 영양보충을 하고 힘을 낸다. 여물 먹는 소를 보고 대길이가 묻는다.

“맛있지?”

소가 입을 약간 벌리고 히죽이 웃는다. 대길이는 소가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여자가 웃는 모습보다 좋다. 그래서 설 무렵 아이들이 설빔으로 색동옷을 입을 때 소의 코뚜레에 색동옷을 짓고 남은 헝겊으로 알록달록 장식을 해준다. 그러면 대길이는 소가 인사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대길아, 고맙다.”

 

다시 농사철이 되었다. 논에 물을 알맞게 대 놓았다가 논이 알맞게 말랑말랑해졌을 때 소에 쟁기를 메워 논을 갈았다. 농사일 가운데 소에게나 대길이에게나 가장 힘든 일이 논을 가는 일이다. 한 번 시작하면 며칠 계속 소는 끌고 대길이는 쟁기를 들고 논을 갈아야 한다. 이때가 소와 대길이의 갈등이 가장 심할 때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고 할지라도 계속 함께 살다보면 부부싸움이라는 걸 하게 되는 것처럼 대길이와 소도 가끔은 싸운다.

“이랴! 가자!”

소가 갑자기 멈춰 서서 꼼짝을 않는다.

“왜 이래?”

대길이가 물었다.

“힘 든다. 더는 못 끌겠다.”

“아직 며칠을 더 갈아야 될지 모르는데 벌써 이래면 어쩌노?”

“저 쪽 정자 좀 봐라.”

 

소가 머리를 들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날 주인집에 손님으로 온 윤 초시 영감과 주인이 정자에 앉아 글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 초시는 대길이도 아는 사람이었다. 정말 과거에 급제해서 초시인지 먼 조상이 초시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모두 윤 초시라 부르니 그런 줄 안다. 그런데 대길이는 이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 아는 것을 너무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날은 무르익은 봄날인데 꽃향기는 숨이 막힐 지경인데 누구는 정자에 앉아 신선놀음을 하고 누구는 죽어라 일만한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끊어 올랐다. 끌지 않겠다는 소를 채찍질하며 마침 정자 아래를 지날 때였다. 소가 또 시원스럽게 가지 않고 꼬장을 부렸다. 대길이의 소리도 곱지 않았다. 아무리 착한 농부라도 소를 부릴 때는 비속어를 쓰게 마련이다. 평소에 점잔은 신사도 운전대를 잡으면 입이 험악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랴아, 가자. 이누무 소 새끼야!”

소가 말했다.

“욕 좀 고마 해라. 내가 니보고 사람 새끼라면 좋겠나?”

“소 새끼를 소 새끼라 하지 개 새끼라 하나?”

“대길아, 이제 더는 못 끌겠다. 이제 니가 끌어라, 내가 뒤에서 부릴게.”

그러면서 소는 정말 대길이와 자리를 바꾸려고 뒤로 돌아섰다. 대길이는 다시 소 뒤로 가려했다. 그러자니 대길이와 소는 뺑뺑이를 돌게 되었다. 대길이 항복을 했다.

“잘못했다. 고마 해라!”

“니나 나나 같이 힘든 처지에 왜 성질을 부리고 지랄이야!”

생각하니 소의 말이 영판 그른 것은 아니었다. 내 팔자나 소 팔자나 그리 좋은 것은 못되는구나. 대길이는 천천히 쟁기를 끄는 소를 소 타래기로 채찍질 하며 나직이 말했다.

“이랴, 낄낄, 언놈은 팔자가 좋아 글만 읽고, 언놈은 하루 종일 씨바, 논만 가는구나.”

 

정자에 앉은 윤 초시가 이 말을 들었다.

“대길아, 니 머라켔노?”

“그냥 소한테 하는 소릿시더.”

“내 다 들었다. 니 맘 내가 안다. 내가 논 갈게. 니가 대신 여기 올라와서 글 읽어라!”

대길은 소를 논에 세워 두고 윤 초시 명으로 하는 수 없이 정자에 올랐다.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이 없었다. 윤 초시는 대학을 펴놓고 대길이에게 말했다. 니가 이걸 읽고 내가 논을 갈기로 하자. 자, 읽어라 했다. 글 싫어하여 천자문도 모르는 대길이가 ‘대학(大學)’을 알 리 만무했다. 윤 초시는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이 머로?”

하고 물었다.

“…….”

윤 초시의 담뱃대가 대길이 머리에 딱 소리를 내었다. 대길이가 대답을 못 할 때마다 담뱃대로 대길이 머리통을 골프 치듯 했다. 또 한 구절 가르치고 묻고 모르면 때리고를 반복했다. 대길이 머리에서 혹부리가 나려고 했다.

“됐니더, 고마 하소. 논 갈게요.”

 

하는 수 없이 대길이는 논에 들어 쟁기를 잡았다. 윤 초시에 당한 것이 억울했다. 화가 나서 일을 하니 더 힘이 들었다. 오늘따라 수렁이 더 깊어 깊이 빠진 발을 빼내기 힘겨웠다. 거머리도 달라붙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소가 또 멈춰 섰다.

“이랴! 가자! 이누무 소!”

소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소까지 대길이 마음을 몰라주었다.

“대길아, 더 못 갈겠다. 이제부터 니가 끌어라!”

오늘따라 소까지 부아를 돋우었다. 저도 나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인데 마냥 소에게 욕만 할 수 없었다. 대길이는 쟁기를 잡고 한참을 서 있더니 소에게 말했다.

“이랴! 이누무 소, 고마 대학을 갈쳈불라!”

‘갈쳈불라’는 ‘가르칠까 보다’의 지역 말이다. 소도 대길이가 대학 배우다가 당하는 걸 보았기에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나갔다. 중천의 해가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