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득이

 

어린 시절 우리는 거의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불결했다. 요즘은 시골 아이와 서울 아이를 구별하기 어렵지만 내가 어릴 때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흰색과 검은 색의 대비가 또렷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는 도드라지게 마련이었다. 모두가 까만데 한 아이만 흰색이면 놀림감이 되기 마련이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 고기, 하며 가락을 붙여서 이유 없이 놀렸다. 시골에서는 깨끗한 게 오히려 흉이 되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얼굴이 까맣고 손에도 떼가 까맣게 묻어 있었다. 그 가운데도 점득이는 유난이 불결해서 별명이 굴뚝족제비였다. 솔가지로 군불을 땐 굴뚝에 들어갔다 나온 족제비처럼 까맣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지금부터 그 점득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린 아이들은 방바닥에 똥을 누기도 하고 마당에 앉아 똥을 누기도 했다. 골목길을 가다가 보면 울타리 너머로 아이가 마당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똥 누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이가 똥을 누면 어른들은 개를 불렀다.

“워리, 워리!”

시골의 개 이름은 모두가 ‘워리’였다. 때로 ‘도꾸’도 있고 ‘메리’도 있었지만 그런 개는 이상하게 생긴 개들이고 못 먹는 개였다. 흔히 집집마다 있는 누런 개는 모두 ‘워리’였다. ‘도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이름이다. 아마 영어의 Dog의 일본어식 발음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도꾸’의 뜻이 ‘개’이니까 개에게 개라는 이름을 붙인 꼴이다. 마치 사람을 보고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과 다르지 않다.

 

흔히 똥개라고 부르는 개의 본명이 모두 ‘워리’였다. 워리는 부르면 금방 나타나서 아이가 눈 똥을 맛있게 핥아 먹고 기분이 좋으면 부드러운 혀를 내밀어 아이의 엉덩이까지 깨끗하게 해 주는 참으로 고마운 개였다. 그런데 똥개는 여름 복날까지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개는 아이들의 노란 똥을 보고 입맛을 다시지만, 어른들은 워리를 보면 입맛을 다신다. 그러다가 복날이 되면 개울로 데리고 간다. 갈 때는 개와 같이 가지만 돌아올 때는 개는 보이지 않고 어른들만 돌아온다.

 

그런데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개가 점득이 고추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점득이네는 가난해서 개밥을 충분히 주지 못했기 때문에 개가 점득이가 눈 똥을 먹다가 양이 차지 않아서 점득이 고추까지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득이는 고추가 없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반만 남았다고도 했다.

 

우리는 모두 점득이 고추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점득이에게 고추를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개울에 가서 물놀이를 한다. 마을 앞으로 개울이 흘렀는데 작은 개울이었지만 물이 제법 깊은 곳이 있었다. 시간만 나면 발가벗고 물어 들어가 개헤엄도 치고 가재도 잡으며 놀았다. 개헤엄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두 발로 번갈아 물장구를 치며 손으로는 물을 끌어당기는 원초적 형태의 수영법이다. 그 모습이 마치 물에 빠진 개와 같기 때문에 개헤엄이다. 몇 년 전 올림픽 수영경기 자유형에 출전한 아프리카 선수가 개헤엄을 쳐서 진정한 자유형의 원형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인을 즐겁게 한 일이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그 선수의 모습이 어린 시절 우리들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귀에 물이 들어가면 햇볕에 뜨겁게 단 돌을 귀에 대고 불알을 탈랑거리고 뜀을 뛰기도 했다. 그러면 귓속의 물이 빠진다고 했다. 멱 감기가 끝나면 바위에 몸을 누이고 물기를 말리기도 했다. 우리는 점득이의 고추를 보고 싶었지만 점득이는 우리와 함께 물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점득이 고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항목이 점득이는 고추가 있을까 없을까,였다. 점득이는 자연 우리와 어울리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서리라는 것을 자주 하였다. 서리는 아이들이 무리지어 남의 과일이나 농작물을 몰래 훔쳐서 먹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서리에는 닭서리, 콩서리, 밀서리, 참외서리 등이 있다. 고장말로 서리를 ‘싸리’라 하기도 했다. 요새 남의 농작물에 손을 대면 죄가 되지만 그 때는 서리를 하다 들키면 농장 주인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는 것으로 사건이 무마되곤 했다.

 

서리 가운데 밀서리가 가장 흔한 것이었다. 갓 익은 밀의 모가지를 잘라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밀 이삭을 올려 굽는다. 알맞게 익으면 이삭을 손바닥으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지고 노릇하게 익은 밀알이 남는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 밀서리를 한 다음은 아이들 손과 입이 모두 까맣게 되어 누가 서리를 했는지 금방 알려지게 된다. 아이들이 주둥이를 까맣게 해서 다녀도 어른들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다. 가끔 보리서리도 하는데 보리는 쌀보리와 겉보리가 있다. 보리서리를 할 때는 쌀보리로 해야 한다. 겉보리는 불에 구워도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먹을 수 없다.

 

점득이가 굴뚝족제비 외에 또 다른 별명을 얻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와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점득이는 늘 혼자 다니는 일이 많았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혼자서 남의 밭의 보리를 꺾어 보리서리를 했다는 것이다. 보리가 익어 갈 무렵 밭주인이 나타나 먹지도 못하고 도망을 쳤다. 도망치는 것을 이웃마을 아이들이 보았다. 점득이가 보리서리 했던 자리에 가보니 쌀보리가 아니고 겉보리였다. 그 마을 아이들이 우리에게 점득이의 보리서리 미수 사건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한 아이들은 뭐 장난칠 거리가 없나 하고 목말라 있던 차에 점득이 소식은 보기 드문 이야기 거리였다. 우리는 다 같이 점득이의 보리서리 미수 사건을 겉으로는 슬퍼하며 속으로는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그를 부를 때 굴뚝족제비 대신에 ‘겉보리 싸리 해 놓고 못 먹고 간 놈’이란 긴 이름으로 불렀다.

 

참외도 서리의 대상이 되었다. 비슷한 외지만 오이는 서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이는 반찬거리이지 간식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맛이 귀하던 시절 참외는 아이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과일이었다. 참외 농사를 짓는 집이 드문 시절이었기에 줄무늬가 있는 개구리참외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단맛을 잊을 수가 없다.

 

겉보리서리 해 놓고 못 먹고 간 놈이 얼마 뒤에 또 하나의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웃집의 오이를 따먹다가 들켜 먹지도 못하고 혼쭐만 났다는 것이다. 그냥 오이 하나 따 먹는다고 혼내지는 않는데 점득이는 오이 중에서도 씨통을 땄다는 것이다. 농부들은 오이 중에 가장 실한 놈은 따지 않고 누렇게 될 때까지 그냥 두는데 그것을 씨통이라 한다. 누렇게 익은 오이 속에서 씨가 여무는데 그 씨를 받아 두었다가 그것으로 다음 해에 파종을 한다. 그 오이가 외씨통이다. 외씨통은 맛이 없어 먹을 수도 없다. 점득이가 그걸 땄으니 주인이 혼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역말로 오이를 ‘위’라고 하는데 그 후로 점득이는 ‘위씨통 따먹다가 들킨 놈’이라는 긴 이름을 다시 얻게 되었다. 급하게 부를 일이 있을 때는 점득이 대신에 ‘위득’이라 불렀다. 점득이의 이름은 ‘굴뚝족제비’에서 ‘겉보리싸리 해 놓고 못 먹고 간 놈’에서 다시 ‘위 씨통 따 먹다가 들킨 놈’으로 진화하다가 위득이에서 진화를 멈추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리는 모두 20대 청년이 되었다. 마을에 남아 농사짓는 친구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객지로 떠났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모두 고향을 찾는다. 고향 친구들이 만나면 대부분의 대화는 어린 시절 추억담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어느 해 추석 가출 한 뒤에 소식이 없던 위득이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마을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도 자가용을 타지 못하던 시절 긴 별명만 잔뜩 달고 다니던 위득이가 까만 자가용을 타고 나타났으니 친구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까만 양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청년 사업가였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 모두 객지에서 겪은 일, 어린 시절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위득이는 그냥 듣기만 했다. 누가 말을 걸어도 위득이는 그냥 웃기만 했다.

 

나는 장난치기를 즐기지 않았기에 어린 시절 위득이에게 비교적 못된 짓을 하지는 않았다. 점득이란 본명 대신에 위득이라 부른 죄밖에 그에게 빚진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는 위득이와 가깝게 지내는 편이었다. 그날 친구들과의 자리가 파한 다음 위득이는 나와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그와 술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술잔이 몇 차례 오고가자 위득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좋은 차를 타고 와서 니 놀랬제?”

“그래, 돈 마이 벌었나?”

“돈은 무슨…….”

위득이는 한숨을 쉬며 술잔을 쭉 비웠다. 그리고 너한테만 말한다면서, 비밀이라면서 서울에서의 일을 이야기했다.

 

니도 알다시피 내가 배운 게 있나 빽이 있나. 농사지어 봐야 고생만 하고 먹고 살기도 어렵고. 그래 서울로 안 갔나. 술집에 웨이터로 들어갔다. 깨끗한 옷 입고 농사보다 힘도 덜 들고, 굴뚝족제비도 면하고, 술집이니까 아가씨도 많고, 거기서 총각 딱지도 뗐다. 그런데 니도 알다시피 내 고추가 개한테 물렸잖나. 그래서 모양이 좀 특이하다. 한 가시나 하고 잔 일이 있다. 이년이 그걸 소문을 내서 말이다, 날마다 다른 년들이 만나자고 하는 거야. 만나자면 만나주었지, 뭐. 남자가 열 계집 마다하나? 어느 날 여사장이 유혹하는 거야. 그녀와도 만났지.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다른 애들은 내 근처에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 거야. 사실상 그녀와 결혼을 한 꼴이지. 그리고 웨이터에서 부사장이 되었다. 이거 말이야.

“이 이야기는 너만 알고 있어.”

위득이는 위협하듯 말했다.

“그래, 위득아. 니 이야기 난 못 들은 거야.”

 

그렇게 말했지만 들은 건 들은 거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복두장이가 이 비밀을 말하면 죽여 버리겠는 임금님 때문에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해 병이 났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복두장이처럼 병이 날 것만 같다. 혹시 취중에 누구에게 위득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말이야 너만 알고 있어, 하고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었다. 그래도 누구에겐가 말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자꾸만 불안하게 한다. 위득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도 내가 만약 위득이 이야기를 하면 가엾은 위득이를 더 가엾게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개는 과묵하여 남의 말을 전하는 일이 없는데 나는 개보다 못한 놈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다이어트를 한 걸로 알지만 사실은 위득이 때문이다. 아니, 개 때문이다.

 

내 친구 위득이는 개로 인하여 좋은 승용차를 얻었고 나는 개로 인하여 복두장이 병을 얻었다. 내일은 개고기 집에 가서 소주 배불리 먹고 모두 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