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곡사 폐경스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친구들 모두 고향을 떠났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다. 나는 굽은 나무였다. 학교를 마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다. 순수한 촌놈이다. 친구들은 인사말로 고향을 지켜 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실은 고향에 왔을 때 만나서 고향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뜻일 터이다. 맏아들이니 부모님 곁에 있는 것이 도리이기도 하지만 변변치 못해서 중뿔나게 출세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하겠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친구가 경찰서장이 되어 돌아왔다. 평소 우리 경찰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던 터에 친구가 경찰이 되어 돌아온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흡족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대개 경찰서 청사에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매우 친절한 문장이 붙어 있다. 그 글과는 달리 경찰서는 그리 친절한 곳이 못 된다는 느낌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낮이나 밤이나 불시에 어느 길목을 막고 검문하는 경찰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대마다 나는 재수 없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바라케이트를 치고 지나는 차마다 음주측정을 한다. 무조건 기계를 들이대며 불어라고 강요한다. 이건 분명히 불심검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단속 행위는 모든 운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 살려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데 운전하다가 목을 창밖으로 길게 빼고 기계에 입을 대고 불어야 한다. 그래서 불쾌하고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재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음주운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굳이 이렇게 불심검문을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음주운전으로 의심되는 차량은 이런 방법 말고도 얼마든지 가려낼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수고로운 방법 보다는 그들에게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지금도 그렇다. 민주화되기 전에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딸을 태우고 역에 가는 길에 경찰이 길을 막고 불라고 했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또 바쁘니 불지 않겠다고 했다. 젊은 경찰이 나의 차를 길가로 세우게 하더니 왜 안 불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술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부십시오. 불어야 합니다. 막무가내였다. 이건 불심검문이니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라 했다.

“그건 살인 사건 때 하는 건대요.”

이 친구는 미란다 원칙이 뭔지 모르는구나. 딸이 타야할 차 시간이 임박해서 나는 확 불고 역으로 향했다. 미란다 원칙은 범죄자로 의심되는 시민을 불심검문할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미리 고지하는 것이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을 때 경찰의 수사 기록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미란다 원칙이다. 우리 경찰도 이것을 채택하고 있다. 그 젊은 경찰은 미란다 원칙의 취지나 적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써서 지역 매체에 기고했다. 제목이 ‘불어라 선비여!’였다. 이 고장이 내건 구호가 ‘선비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이걸 본 서장이 노발대발해서 부하 직원에게 시켜서 지역의 다른 매체에 나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쓰게 했단다. 읽어보았다. 말도 되지 않는 횡설수설이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무시했다. 경찰에서 나의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는 소문이 간간히 들리기도 했다.


우리 경찰은 아직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가령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한 민주화와 관련된 시위가 있으면 아무리 평화적 시위를 해도 도로교통법을 적용해서 잡아간다. 공권력의 횡포다. 이 땅에서는 관제 데모를 제외한 어떤 시위도 그 앞에 불법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형식적으로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이 아니고 순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경찰서장이 되어 돌아온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아직 고향에 남아 있다는 걸 누구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밥을 같이 먹었다. 사복을 입고 나온 그의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머리 꼭대기는 털이 거의 제거되어 스님에 방불했다. 나 또한 홍안 소년은 간곳없고 백발만 무성하였다. 내가 아는 나의 동기생 가운데는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 초, 중, 고, 대학 동기 모두 그러하다. 그들은 나를 종북이라 불렀다. 민주화는 나이 순이라는 생각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민주화 정도는 나이순이다. 우리 또래의 대부분이 이른바 수구꼴통이기 때문이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나는 경찰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화재에 올렸다. 그러자 그는 뜻밖에도 깜짝 놀랄 대사를 읊는 것이 아닌가.

“법이 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경찰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 시민들 편하게 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고 경찰이 필요한 거 아닌가?”

그러면서 그는 법 집행에도 유도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 유도리라는 말이 수상해서 쓰지 않는 말인데 그가 유도리라고 하니까 유도리가 매우 훌륭한 말로 들렸다.

“유도리? 국어선생이 쓰기엔 거슥하지만 자네가 쓰니 좋게 들리는 군. 아암, 유도리가 있어야지.”

우리는 금세 의기투합했다. 친구가 말했다.

“나는 순사, 자네는 박사니, 우리 사 자 돌림끼리 친하게 지내세.”

나는 경찰이 자기 자신을 순사라고 부르는 걸 처음 들었다. 가끔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마찰이 있을 때 ‘넌 경찰이 아니고 순사야.’이렇게 욕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뭐? 순사? 이러면서 몹시 약 올라 하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스스로를 순사라 하는 걸 보면 어떤 경지인지 알만했다. 친구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한 번 만남으로 완전히 해소되었다.


우리는 퇴근 후 대폿집에서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고향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 그는 직업의 특성상 여러 지역을 다니며 근무했다. 마침 절 가까운 파출소에 근무할 때 스님들을 자주 만난 일이 그의 경찰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참선도 하고, 경전 공부도 하고 달마도 그리기도 하며 마음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과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와 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적대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전교조, 시민연대 등 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권력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좁은 도시에서 차마 대놓고 공격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 지역 유명 인사들은 내 욕을 바가지로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추운 겨울 대중 집회에서 내가 연설을 하거나 저항시를 낭송할 때 그는 사복 차림으로 뒷자리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집회가 끝난 뒤 만나서 나는 물었다.

“집회 때 보이던데 나 잡으러 왔지?”

“아이다. 순사가 교사를 우째 잡아 가노.”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그와 가까이 지내며 학창시절 우정이 새로 돋는 풀잎과 같았다. 그가 제안했다.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름을 부르지 말고 호를 부르자고 했다. 자기 호는 ‘건곡’이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건곡은 계곡이 말랐다는 뜻이니 차라리 폐경으로 하게.”

“낄낄낄, 예끼 이사람! 나는 세울 건 자 고을 곡 자일세.”

“알고 있어. 그래도 난 폐경이 좋아. 얼마나 홀가분한가. 나는 폐경으로 부르겠네.”

어느 날 폐경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조심스레 내밀었다.

“내가 쓴 글인데 글이 될지 안 될지 한번 봐 주게.”


니가 알면 울매나 알고

니가 있으면 울매나 있노?

그리고 니가 높은면 또 울매나 높으노?

니 주머이에 돈 있으면 내 술 한 잔 받아 주고

내 주머이에 돈 있으면 니 술 한잔 받아 주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초로 같은 우리 인생

서산에 해 넘어가면

이고 갈래? 지고 갈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도 하고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했다. 온전한 창작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짜임도 허술하지 않았다. 나는 걸작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로 폐경은 술이 거나하면 이걸 낭송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폐경은 어느 날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나, 어제 죽을 뻔 했네.”

사연인즉 이러했다. 경찰조직에서 가장 높은 경찰청장이 방문했다. 저녁에 만찬 겸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지역 유지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일등급 한우에다 폭탄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술이 취하자 경찰조직의 특색인 계급도 잠시 유보되었다. 청장이 그에게 노래를 청했다. 노래 대신 시를 읊겠다고 했다. 그리고 예의 ‘니가 있으면’ 을 읊었다. 한손에 술잔을 들고 서서 근엄한 포즈를 취했다. ‘니가 알면’ 할 때 지방대학 총장을 가리켰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내친 김에 계속했다. ‘니가 있으면’ 할 때는 회사 사장을 가리켰다. ‘니가 높으면’ 할 때는 청장을 가리켰다. 순간 청장 안색이 바뀌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도 취했으므로 끝까지 읊었다. 끝나자 청장도 너털웃음을 웃으며 다시 분위기가 회복되었다.


폐경이 처음 이곳에 부임해 왔을 때 나의 부친께 굳이 인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기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 부친이 계시는 고을에 부임해 왔는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 하며 경찰 한 명을 대동하고 내 고향집에 계시는 아버지께 인사를 다녀왔다. 그 뒤에 만났을 때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말도 말게. 죽는 줄 알았네.”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다. 아버지는 시골마을에서 유일하게 한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공맹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조석으로 외며 실천하려 하시는 이 시대의 보기 드문 분이시다. 게다가 눈치마저 없으셔서 당신이 좋으시면 남도 좋아하는 줄 아신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말씀을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농사일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 좀 다녔음직한 사람을 만나면 몇 시간이고 공맹 강의를 하신다. 아버지는 암기력까지 좋은 분이어서 논어의 원문을 미리 외시고 자상한 풀이를 하시며 얼마나 좋은 말씀이냐고 하시며 끝없는 강의를 하시는 분이다. 이 고을에 부임해 온 면장이나 지서장 친구들이 이미 모두 격은 바이기에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폐경은 담배와 술을 들고 아버지 계시는 내 고향집을 방문했다. 아버지는 폐경과 대동한 경찰을 사랑방에 들게 한 다음 예의 그 공맹 강의를 시작하셨다. 둘은 꿇어앉아서 서당 학생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은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라 의미를 새기며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대동한 경찰은 몸을 꼬며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도 어른 앞이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날 폐경은 몇 시간 동안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하고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폐경은 그래도 절간에서 설법을 듣던 공력이 있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으나 같이 간 젊은 경찰은 너무 안쓰러워 중도에 나가게 했다고 했다. 

 

얼마 뒤 폐경은 정년퇴직을 했다. 그는 내 고향 마을 가까이 산밭을 마련하고 조그만 오두막을 지었다. 좁은 골짜기라 집 한 채와 밭 한 뙈기 있는 골짜기 전체가 폐경의 차지였다. 그의 작은 왕국이라 할 만하다. 작년에 사과와 자두를 처음으로 수확해서 팔았는데 농약 값과 비료 값보다 적게 받았다고 했다. 그의 농사 목표는 본전이다. 친구가 찾아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논다. 나는 가끔 그의 집에 가서 막걸리 사발을 나누곤 했다.


마당에는 나무에 의지해 지은 작은 원두막이 있다. 그 곁에는 말봉이라는 개가 있다. 그 원두막은 나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다 마신 막걸리 병은 아무데나 던져도 된다. 담배꽁초도 마구 버려도 된다. 왜냐하면 폐경이 자기가 주우면 된다고 마구 버리라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 삼아 줍겠다고 했다.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며 허튼 소리를 하며 때로 말봉이에게 실없는 소리도 하며 방자하게 논다. 술병을 마구 던지며 밤배꽁초를 마구 던지며 허튼 소리를 하며 논다. 팔도강산에서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다.


폐경은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없으면 방에 들어 달마도를 그린다. 폐경의 두상은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보다 없는 부분의 면적이 넓다. 스님 같다. 나는 그의 오두막을 건곡사라 하고 그를 폐경 스님이라 명명하였다. 그도 과히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뒤에 찾아가니 오두막 마당가에 조잡한 돌탑이 하나 서 있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막걸리 병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건곡사 삼층석탑이다. 건곡사에만 있는 톡특한 양식의 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