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숙녀

 

 

  자상하다란 말이 있다. 세상의 아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거기에 밖에서 모범적인 사회인이고 집에서 가정적이면 최상의 남편이라 할만하다. 그는 주위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시청 공무원이다. 많지는 않지만 일정한 수입이 있어 안정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거기에 그의 아내는 요조숙녀였다. 우리사회의 가장 이상적이고 전통적인 아내상이 요조숙녀이니까 그 집은 누가 봐도 ‘홈 스위트 홈’이었다.

 

  그는 매사에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옷차림은 언제나 단정했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업무도 깔끔하게 처리했기에 누구에게나 신뢰받는 사람이었다. 퇴근 할 때는 손에 아이들 먹을거리나 아내에게 줄 선물이 들려 있었다. 그래서 직장 상사들은 부하 직원을 나무랄 때 아무개만큼만 하라고 했다. 이 도시의 아내들도 남편과 말다툼이 나면 아무개 반만 하라고 하곤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만이 가진 행동특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다른 사람보다 두 시간은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요조숙녀이기 때문에 남편에게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따뜻한 아침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지만 그가 굳이 마다하기에 그것만은 포기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에 다니는 남편을 둔 아내들과 만나 수다를 떨다가 요조숙녀는 자기 남편이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한다는 행동특성을 발설하고 말았다.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모두 한 마디씩 이야기 하는데 자기만 입을 다물고 있기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딱히 할 말도 없기에 한 말이었다. 그 뒤로 가끔 그녀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자기 남편에게 물어보니 요조숙녀의 남편이 다른 사람과 출근 시간이 거의 같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혼자서 부엌일을 할 때나 빨래를 할 때 그녀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그녀가 무엇을 잘못 알고 한 말일까? 이 사람이 정말 시청으로 출근할까? 아무리 잊으려 해도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출근하는 남편의 뒤를 밟아볼까? 아니야, 그건 남편을 못 믿는다는 뜻이잖아? 요조숙녀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어. 어림없는 일이야. 그래 잊어버리자. 그녀가 무언가 잘못 말한 것일 거야. 그리고 많은 나날이 흘러갔다.

 

  남편 출근 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청소며 빨래를 끝내면 오후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그녀는 대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여가를 즐긴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남편이 퇴근하기까지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일을 끝내고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셨다. 음악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커피의 향도 음미할 수 없었다. 그런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요조숙녀는 드디어 큰 결단을 내렸다. 남편의 뒤를 밟기로 한 것이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뒤를 밟았다. 남편의 가는 길이 시청 쪽이 아니었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요조숙녀인 걸 잊어버렸다. 남편이 도착한 곳은 산동네 어느 집이었다. 그녀는 그 집 대문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남편이 다시 대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남편 뒤에는 앳된 여자가 수줍게 인사를 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정신을 수습하여 그 집에 들어가서야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편은 젊은 여자와 딴살림을 차린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평소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으면 이토록 참담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살림을 뽀갤 수도 그녀의 머리채를 잡을 힘도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녀는 요조숙녀였다. 요조숙녀가 시정의 잡다한 사람과 같이 비루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밥도 하지 않았다. 빨래도 청소도 하지 않았다. 그냥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남편이 어디가 아픈가 물었다. 며칠이 지난 뒤 요조숙녀는 그녀가 본 것을 말했다. 남편은 벼룩처럼 꿇어앉았다.

  “내가 잘못했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빌었다. 남편은 참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밥도 청소도 스스로 하며 아내를 정성으로 돌봤다. 퇴근할 때는 꽃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와 요조숙녀를 달랬다. 아내는 오히려 남편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오고 가정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폭풍이 지난 바다가 더 잔잔한 것처럼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회복되었다. 요조숙녀도 다시 요조숙녀의 품행을 회복하였다. 마음에 남은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지만 요조숙녀의 근본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 집에 풍파가 지나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아내도 남편도 자랑할 처지가 못 되었기에 겉으로는 그 집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았다.

 

  그런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날 건장한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다. 남편은 그를 자기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를 끓여 가져다주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해서 요조숙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남자는 남편 단골 술집 여자의 서방이었다. 남편이 술집 여자와 정분이 나서 둘이 제주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서방은 남편에게 거액을 요구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콩밥을 먹이고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남편은 꿇어앉아서 빌고 있었다.

 

  남편은 지금까지 모은 재산을 돈으로 바꾸어 그 남자에게 바치고 콩밥을 먹는 것과 공무원에서 쫓겨나는 일은 면했다. 그러나 요조숙녀는 다시 병이 났다. 남편은 아내에게도 다시 벼룩처럼 꿇어앉아 빌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의 일상은 회복되었다. 퇴근하면 아내에게 선물 공세를 하고 외식을 하자고도 하고 영화를 보자고도 했다. 아내는 마지못해 남편을 따랐다. 속으로는 괘씸한 남편이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요조숙녀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겉으로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출장 가서 자고 오는 일이 잦아졌다. 의심이 가지만 출장 여부를 남편의 직장에 확인할 수가 없었다. 꾀를 내었다. 출장이라고 하는 날 민원인인 것처럼 남편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남편을 찾았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남편을 바꿔주겠다는 것이다. 출장이 아닌 것이 확실해졌다. 출장에서 돌아왔다는 남편의 옷과 소지품을 검사했다. 여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와이셔츠에 립스틱 자국도 있었다. 남편은 다시 꿇어앉아 빌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맹세했다.

 

  요조숙녀는 이 기막힌 사연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요조숙녀의 집안은 이른바 뼈대 있는 집안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여자의 도리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여필종부니 삼종지도니 출가외인이니 하는 이야기다. 여자는 한 번 출가하면 시가 사람이니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 함이다. 그녀 또한 그것을 옳게 여기고 여자의 도리를 가하려 했다. 출가한 여인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친정 가문에 누가 되고 불효라 굳게 믿었다. 속으로는 죽을 것 같았지만 내색할 수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여자의 길이라 여겼다.

 

  남편은 모범적인 사람이고 자상한 편이었다. 누구에게나 한 가지 흉은 있는 법이다. 그 한 가지 흉이라는 것이 남의 여자를 탐내는 것이었다. 그는 일이 불거질 때마다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했다. 그 맹세가 작심삼일이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그 뒤로도 남편의 외도는 끝없이 되풀이 되었다. 속은 숯덩이가 되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맹세하면 용서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세월이 흘러 남편도 요조숙녀도 늙은이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행복한 가정인 이 집에 이런 아픔이 있었던 것을 아는 이는 이들 부부뿐이었다.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구석구석 아픔이 있다는 말은 이 집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남편은 정년퇴직을 하고 요조숙녀도 할머니가 되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부부는 복노인처럼 여행을 다니거나 자식 집을 전전하며 편안한 노후를 맞았다. 어느덧 남편의 나이도 80이 되었다. 요조숙녀와 남편이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은 지도 오래 되었다. 아내는 생각했다. 평생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리며 살았다. 이제 그럴 염려가 없으니 지금이 가장 편하고 평화로운 때라고.

 

  어느 의사가 말하기를 남자는 늙으면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고 여자가 늙으면 남성호르몬이 증가한다고 했다. 옳은 말인 것 같았다. 남편은 색시처럼 얌전해지고 자기는 목소리도 남성에 가까워지고 행동도 남성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남편은 매사에 고분고분하고 더 자상해졌다. 혼인한 이후 남편 바람피울 염려 없는 가장 편안한 나날을 누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편이 여행을 간다며 다녀온 다음이었다. 남편 옷을 수습하다가 주머니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였다. 파르스름한 알약이었다. 요조숙녀도 어디서 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 약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무슨 약인가 물었다.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비아그라입니다.

  요조숙녀는 분기가 탱천했다. 된장찌개 뚝배기가 끓는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았다. 요조숙녀는 남편에게 비아그라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안색이 변하며 바닥에 꿇어앉는 게 아닌가? 많이 보아 온 동작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는 동작이다. 이 인간이 죽을 때까지 제 버릇 버리지 못했구나. 요조숙녀는 더욱 분기탱천했다. 된장 뚝배기를 집어 던지며 남성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야 이 개자식아!

  뚝배기는 아파트 창문을 깨고 날아갔다. 순간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다. 평생 입에 담지 않은 욕을 했으니 요조숙녀로서의 임무가 끝났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제로 이혼 수속을 밟아 위자료를 받아내어 자유로운 할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