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꼬치영감

 

  내 친구 고치영의 별명은 꼬치영감이었다. 고추를 이 지방 방언으로 꼬치라 한다. 고추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이름의 발음이 꼬치를 연상시키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초등하교를 졸업하고 헤어진 뒤 만나지 못하다가 최근에 우연히 만났다.

  “너, 꼬치영감이지?

  “너, 색시구나?

  어릴 때 친구를 부랄친구라 한다. 어린 시절 친구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만나면 어린이가 된다. 그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의 어린 시절 별명을 불렀다. 우리는 가끔 만나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기억이 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서로 자기만 기억하는 것들이 더 많다. 그는 그의 별명이 이미 암시한 바대로 고추장사가 되어 있었다. 언어에는 주술성이 있다. 염불을 반복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듯이 어린 시절부터 꼬치영감이라고 여럿이 반복해서 불렀으니 고추장사가 되었으리라.  

 

  꼬치영감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말하자면 농사로 잔뼈가 굻은 것이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살림은 펴지지 않았다. 이곳은 고추 농사가 잘 되는 곳이라 고추 농사를 많이 하는 곳이다. 고추 값이 좋을 때는 제법 돈이 되기도 했지만 이듬해는 너도 나도 고추를 심어 아무리 농사기 잘 되어도 값이 떨어져 소득이 없었다. 그래도 다음 해에는 고추 값이 좋으리라는 희망으로 고추 농사를 짓는다. 고추 농사는 일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한여름에 고추밭에 들어 고추를 따는 일은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든다. 무거운 고추를 운반하고 말리는 일도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날이 맑으면 널었다가 바가 오면 다시 비를 맞지 않게 갈무리 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꼬치영감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고추 농사짓는 사람의 살림은 펴지지 않는데 고추장사는 형편이 나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도 고추장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고추장사는 트럭을 몰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고추를 사서 대도시로 가서 파는 일을 한다. 그래서 빚을 내어 트럭을 한 대 사서 마을로 다니며 고추를 사서 가락동 농산물 사장에 가서 팔았다. 그런데 남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보고야 말았다.

 

  그래서 고추장사로 성공한 늙은 고추장수에게 어떻게 해야 고추장사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를 따라다니며 배우면 된다고 했다. 그는 선배 고추장수의 조수가 되어 1년 동안 공부를 했다. 그가 영감을 따라다니며 배운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추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이었다. 고추도 보는 안목에 따라 100가지가 넘는 품질의 차이가 있다. 농민들로부터 좋은 고추를 싼 값에 사서 고추의 품질에 맞는 제 값을 받고 파는 것이 첫째다. 당시에는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아 농민들은 고추 값이 어떻게 형성되어 유통되는지 알 길이 없다. 고추 시세에 어두운 농민을 속여 싸게 사는 일이다. 둘째는 농민을 속이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마술사가 마술을 부리듯이 고추를 살 때 저울눈을 속이는 마술을 부린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는 것이 고추장사였다.

 

   농민들은 마른 고추를 포대에 담아 창고에 보관한다. 고추 값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고추장사는 그런 농가를 방문해서 어수룩한 농민을 속여 싸게 고추를 사서 대도시 도매상에 판다. 고추장사는 21조다. 농가에 가기 전에 돼지고기 몇 근과 소주 몇 병을 산다. 약속한 농가에 가서 인사를 하고 친밀감을 표한다. 마당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주인에게 소주를 권한다. 소주를 마시면서 고추 거래를 한다. 감언이설로 지금 파는 것이 가장 적절한 시기임을 강조한다. 만약 팔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것처럼 겁을 주기도 한다. 얼근히 취한 주인이 거래를 허락하면 광의 고추포대를 꺼내어 저울로 무게를 단다. 저울은 고추장사가 가지고 간 막대저울이다. 이 때 마술이 들어간다. 막대 저울 고리에 고추 포대를 꾀고 저울 위의 끈에 막대를 걸고 마주서서 어깨에 메고 무게를 단다. 이때 저울 고리에 손을 대거나 고추포대 아래에 발을 대고 약간 들면 보통 몇 근은 적게 달 수 있다. 술에 취한 주인은 이들의 마술을 눈치체지 못한다. 한 포대에 5근 정도 속이는 것은 매우 쉽다.

 

  덜 익은 고추를 말리면 흰색이 섞인 고추가 된다. 이것을 희나리라 한다. 희나리는 정상적인 고추에 비해 반값도 되지 않는다. 이 희나리도 고추장사는 산다. 도회의 도매상들은 이것을 사서 붉은 색으로 물들여 정상 가격을 받고 팔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추 농사를 짓는 농가에는 희나리 한두 포대는 있게 마련이다. 농가에 온 고추장사는 주인에게 묻는다.

  “희나리 몇 포대 있니껴?

  “두 포대 있을걸.

  그러면 고추장사는 “보시더.”하고 광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재빠른 동작으로 마술을 부린다. 희나리 포대의 고추를 꺼내어 정상 고추 포대를 풀고 그 위에 희나리 몇 줌을 넣어둔다. 그리고 광을 나오며

  “희나리가 세 포대시더.

한다. 막상 저울에 달아 살 때는 정상 고추가 희나리로 둔갑을 한다. 정품을 희나리 값으로 샀으니 남는 장사다.

 

  고추장사가 저울을 속인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그래서 어떤 농가에서는 고추장사가 오기 전에 미리 자기네 저울로 고추를 달아 둔다. 만약 고추장사가 단 근대와 일치하지 않으면 따져서 바로잡기 위해서다. 고추장사는 언제나 농민보다 한 수 위다. 저울 속이는 연습을 마술사가 마술 연습하는 것처럼 꾸준히 연습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때문에 농민은 도저히 고추장사를 이길 수 없다. 고추장사가 단 것을 아무리 다시 달아도 먼저 단 것과 일치하게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부단한 수련으로 마술을 터득한 꼬치영감이었지만 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 날은 지혜로운 며느리가 있는 집에서 오히려 95근 고추를 100근 값을 주고 산 적도 있다. 그날도 주인에게 술을 먹이고 고추를 다는데 고추포대 아래로 발을 넣어 약간 들었다. 부엌에서 밥을 짓던 며느리가 이걸 봤다.

  “근대가 이상하이더. 나도 좀 보시더.

  며느리가 나와서 저울 가까이 다가왔다. 며느리는 눈은 저울눈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앞치마를 고추포대 위에 덮고 그 아래 손을 넣어 고추포대를 지그시 눌렀다. 며느리 얼굴은 보았지만 며느리가 손으로 눌렀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똑똑한 며느리에게 완전히 당했다.

 

  한 번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마을에서는 괘나 똑똑하다고 소문난 농부였다. 고추 농사도 대량으로 지어 고추를 말리는 벌크라는 건조기도 있는 집이었다. 그도 고추장사가 오기 전에 미리 고추 무게를 달아서 적어 놓았다. 그런데 고추장사가 와서 무게를 다니 또 근대가 줄어들었다. 농부는 다시 달아보자고 했다. 이번에는 자기도 같이 달았다. 결과는 전과 같았다. 아무리 달아도 고추장사가 단 무게와 일치하니까 농부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분명히 고추장사가 속인 건 분명한데 어떻게 속였는지 알 수가 없으니 농부는 미칠 지경이었다. 한참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농부가 말했다.

  “건조기 속에 고추가 더 있니더. 들어가 보소.

  꼬치영감은 건조기 문을 열고 속으로 들어갔다. 이때 농부가 건조기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건조기 전원을 올리고 돌려버렸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꼬치영감은 건조기 속에서 죽는 소리를 냈다. 한참 뒤에 주인이 시동을 멈추고 꺼내 주었다. 결국 속여서 싸게 사기는 했지만 그 대가가 너무 참혹했다.

  “요새도 꼬치 장사 하는가?

  “하지.

  “요새도 마술 부리는가?

  꼬치영감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옛날이야기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지금도 고추 장사를 하지만 마술은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새는 고추 값 정보를 수집하여 쌀 때 사서 창고에 보관했다가 값이 오르면 파는 데 정보수집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신 하나 있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농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고추를 살 수 있으니 농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가에 가면 농민들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내 고추 사 가서 마이 남았제?

  그러면 꼬치영감은 늘 이렇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예, 꼬치가 좋아서 마이 남았니더. 고맙니더.

  그 이유는 자기 고추 사가지고 가서 밑졌다고 하면 누가 자기에게 다시 팔겠느냐는 것이다. 밑져도 남아도 늘 ‘마이 남았니더.’ 한다는 것이다. 꼬치영감의 상도가 높은 경지에 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술잔을 마주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꼬치영감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리도 이제 환갑을 넘은 나이니까 별명을 부르지 말자는 것이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꼬치영감이라는 소리를 가장 듣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어조는 간절했다.

  “니, 인제부터 꼬치영감이라 하지 말그래이.

  아무리 봐도 그는 치영이가 아니라 꼬치영감이었다. 고추장사를 오래 해서 그런지 얼굴마져 고추 빛으로 불그레하다. 그의 갑자기 진지해진 태도가 재미있어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의 자지러지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 꼬치영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