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가 아침 산책을 하게 된 것은 정년퇴직을 한 뒤부터다.

  사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아침에 출근하여 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규격화 된 생활을 그는 힘겨워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개성이라는 것이 있을진대 그는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라 여겼다. 그렇지만 그를 둘러싼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무렵은 모두가 가난했다. 농촌 마을 가난한 선비 집안의 여러 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의 개성대로 자유롭게 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은 그를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했다. 정년퇴직을 한 후에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 직장에 나가는 그의 아내 대신에 아침 밥상을 차려서 아침을 먹은 후에 아내는 출근하고 그는 가벼운 산책을 하기 위해 집 가까이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자나면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천천히 숲길을 걸어서 산책을 한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자유롭게 몽상하기에 적당하다. 조그만 동산의 정상에 올라 벤치에 앉아 쉬다가 내려오면 등에 땀이 촉촉하게 배일 정도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책을 보거나 산책길에서 얻은 생각을 글로 쓰나 하다가 보면 하루가 간다. 저녁이면 가끔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기도 한다. 전화가 오면 나가서 술을 마시고 전화가 없으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한다. 그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간 누리지 못한 자유를 누리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퇴직 후 지인을 만나면 늘 듣는 질문이 있다.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그는 이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그것도 자주 받는 질문이이라서 매번 하루 일과를 설명하기도 힘 드는 일이라 아주 간단한 대답 두 가지를 준비했다.

  “예, 하루 세끼 먹고 지냅니다.

  “예, 앉았다 누웠다 하며 지냅니다.

  이 두 가지 대답을 지루하지 앉게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 그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물음에 불편함을 느끼는 까닭은 물음의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대개 직장생활이 삶의 전부인 양 살아온 사람들은 출근할 곳이 없는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어떤 이는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동차를 운전해서 전국 각지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어떤 이는 문화교실 수강생이 되어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묻는 사람은 그도 그런 일 가운데 한 가지를 한다는 대답을 예상하고 묻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퇴직 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기에 그런 질문이 거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유와 게으름을 얻어서 비로소 틀에 박힌 생활에서 해방된 것이다.

 

  오늘 아침도 그는 아침상을 차리고 아내와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아내가 출근한 뒤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볍지 못했다. 여느 날 같으면 아내가 집을 나서며 현관에서

  “갔다 올게.” 하면

  “잘 다녀 와.” 하고 서로 인사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아무 말 없이 현관을 나서는 것이다. 뭔가 심기가 불편한 것이 분명하다. 가끔 그런 날이 있긴 했다. 아니 젊은 날에는 수도 없이 그랬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그 횟수가 많이 뜸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와 그의 아내는 사실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졌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서로에 대한 것들이 결혼 후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의 아내는 세속적인 욕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그는 세속적인 욕심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그가 승진해서 높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지만 그는 언제나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그런 그가 불안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그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말끝마다 이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친구 남편이 승진할 때마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저주와 경멸이었다.

 

  그는 그런 아내와 헤어지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에 대해 대단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오로지 무능한 시골 선비인 부친으로부터 받은 가정교육의 덕이라 생각했다. 그의 부친은 어린 그가 알아듣든지 말든지 유학의 경전을 외우며 우리말로 해석하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셨다. 동무들과 다투고 들어온 날이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소불욕(己所不欲)을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하셨다. 매우 합당한 말씀이 아니냐. 너가 남이 싫어하는 짓을 했기에 그 아이와 다툰 것이 아니냐? 앞으로는 매사에 조심하도록 하여라, 그런 식이었다. 특히 퇴계 선생 말씀을 많이 하셨다. 특히 집안에 제사가 들 때면 퇴계 선생은 제사가 다가오면 보름 전부터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으셨다. 조상을 섬김이 그와 같이 정성스러우셨다. 가세 빈궁하여 비록 차린 제물은 부족하드라도 슬픔을 다하면 그것이 곧 조상을 섬기는 일이니라.

 

  특히 부친은 퇴계 선생의 경()에 대해 강조하셨다. 경시입도지문(敬是入道之門)이라 하셨으니 경은 곧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라는 말씀이다. 매사에 나 아닌 남을 공경하고 정성을 다해야 군자에 이를 수 있느니라 하셨다. 어린 율곡이 퇴계 선생을 뵙고자 계상을 찾았을 때 늙은 퇴계가 마당에 내려가 맞이하고, 시를 주고받으며 며칠 묵다가 떠날 때에는 문에 나와 전송하였느니라. 그 어른의 경을 실천함이 그와 같았느니라.

 

  그가 살던 마을에 그 또래의 군자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가 있었다. 일제의 영향을 받아 여자 아이 이름은 대개 끝 글자가 ‘자’자가 많았다. 숙자, 미자, 옥자, 영자, 명자 등이 그런 이름이다. 날이 저물어도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른들은 아이를 찾으러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군자 어머니는 동산에 올라 온 동네가 들리도록 군자를 불렀다. 군자야, 군자야 하는 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그의 부친은 그 소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그가 들으라고 한 말씀 설교를 하셨다. 배워먹지 못한 것 같으니라고! 공맹 같은 성인을 군자라 하거늘 어디 불경스럽게 군자야, 군자야 하는고!

 

  어린 그에게는 그런 부친의 말이 오로지 잔소리로만 들렸다. 그리고 왜 나는 다른 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부모 밑에 태어나지 않았던가 하고 고민하고 갈등했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몸에도 유학을 실천하는 태도가 내면화되어가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를 애어른이라 놀렸다. 같은 또래 동무들이 참외서리를 하자거나 닭서리를 하자고 하면 그는 그런 일에 가담할 수가 없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오히려 여학생들에 인가가 많았다. 그 시절 대개의 남자들은 유치한 마초이즘이 남자다움이라고 여길 때였다. 거친 말씨와 행동이 여성들에게 호감을 살 거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시대였다. 대개 남자들이 무뢰배처럼 행동하는 가운데 그는 매우 다른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말이 없었고 해사한 얼굴에 늘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게 대했으며 친절했다. 우수가 어려 있다는 것은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학생들은 그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것으로 오해했다. 예의바른 것은 어려서부터 들은 유학적 세례 때문이었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 벤치에 앉아서 연못의 물무늬를 바라보는 그에게 말을 거는 여학생이 있었다. 가난하고 내면은 어두운 그에게 그 여학생은 환한 빛의 존재로 다가왔다. 아마 자기와 달리 밝은 얼굴을 가진 여학생이 그에게는 베아트리체와 같은 구원의 여성상이었을 것이다. 그 여학생이 지금의 그의 아내다.

 

  그녀도 그를 오해했고 그도 그녀를 오해했다. 결혼 후 그 오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벗겨졌다. 사랑에 눈이 먼 젊은 남녀는 그런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같은 집에 살면서 서로의 비밀한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결혼생활은 서로에 대한 신비를 모두 걷어내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비가 벗겨지면 둘 사이에는 결혼관계라는 앙상한 관계만 겨울나무 가지처럼 남게 된다. 어떤 슬기로운 이가 말한, 결혼은 금이 간 항아리를 함께 들고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가는 길이라 했던 말이 그에게 사무치도록 다가오기도 했다.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는 부친에게서 들어서 내면화 되었던 유교적 교훈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의 무능함을 질타하고 그와 결혼한 것을 후회할 때마다 그는 맹자가 곰발바닥 요리보다 좋아했다는 의()를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이혼하자고 해도 그는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다. 결혼식에서 그가 특별히 모신 그의 지도교수이신 주례선생님께서 혼인 서약을 받을 때 하늘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는가라고 물을 때 그는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예라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것을 어기는 것이 불의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도 아내의 공격에 대해 나름 논리적으로 대응했지만 부부싸움에서 논리란 언제나 무용한 것이었다. 가령 당신은 나에게 버릇처럼 이혼이라는 말을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여자와 헤어질 수 없노라고 말하면 아내는 당장 아이구, 공자 났네,라고 비아냥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 관계를 해소하가 위해 그는 나름대로 고심하고 노력했으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프로이트와 칼 융과 자끄 라깡을 공부해 보았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몇 년을 시달린 끝에 그가 잡은 화두는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들은 퇴계 선생의 경()이었다. 아내를 공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 갑자기 존댓말을 할 수도 없고 어버이 섬기듯 할 수도 없었다. 공경한다는 것은 상대를 높이거나 자기를 낮추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기를 낮추는 것을 선택했다. 어떻게 낮출 것인가. 아내가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질 때 그는 방바닥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던진 물건이 위로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 자기는 무사했다. 아내는 화를 풀어서 좋고 자기는 다치지 않아서 좋았다. 그는 이 묘안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매사에 대처했다. 아내가 하는 모든 요구를 긍정적으로 들어준다. 아내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가정 일의 모든 결정권은 아내에게 있다. 그는 봉급을 타서 아내에게 바치고 몇 푼의 교통비와 담배 값을 받으며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실 때도 가장 값이 싼 선술집 같은 곳에서만 마셨다. 그의 술집 순례에 시중드는 여자가 있는 집은 철저히 제외되었다. 쓸 돈이 없어서 그리 되었지만 그것이 그의 취향으로 굳어져 버렸다. 어쩌다 다른 사람의 초대로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가 여자를 싫어하고 허름한 대폿집에서 막걸리 마시는 것을 최고의 낭만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알았다.

 

  그가 실천한 경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정년퇴직이 될 때까지 큰 풍파 없이 살았다. 아내의 공격빈도도 확연하게 줄었다. 그는 요즘 아침 산책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가끔 아내가 화를 내거나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는 날이면 산책길이 가볍지 않을 때도 있다. 마치 집안에 온통 무거운 먹구름이 드리운 느낌일 때가 있다. 오늘 아침도 인사도 없이 출근하는 아내로 인하여 집안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산책길로 향하는 발걸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자 서늘한 아침 공기가 가볍게 피부에 닿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길은 좌우에 온통 나무들로 인하여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싱그러운 풀 향기가 가볍게 흩날리고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걸러진 가벼운 햇살이 여린 나뭇잎에 다시 부서져 내렸다. 숲속 나라는 동화 속처럼 고즈넉했다. , 숲속에서 요정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문득 그에게 젊은 날의 어떤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대학에 다닐 때였다.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교외에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창 밖에는 녹음이 무성했고 투명한 햇살이 숲에 내려앉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었다. 비포장 길을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늦추었다. 정류장도 아닌 곳인데 버스가 멈추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숲속에서 젊은 여자가 손을 들고 버스로 다가왔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손을 든 채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이 버스로 다가왔다. 버스 문이 열리고 여자가 버스에 탔다. 그 시절 시골 버스는 어디서나 손만 들면 승객을 태워주기도 했다. 버스는 만원이어서 통로에도 승객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여자는 통로의 승객을 해치고 그와 그의 친구가 앉은 자리까지 왔다. 여자는 통로쪽에 앉은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일어나라고 했다. 친구는 얼떨결에 일어나고 그녀가 그의 곁에 앉았다.

  “이제 가지 마, 알았지?

  그는 당황했지만 이내 그녀의 정신이 온전치 않음을 알았다.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알았어.

  얼마 지나자 차장 아가씨가 차비를 받으러 왔다. 그녀는 차비 달라는 차장의 재촉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지갑을 열어 그녀의 차비를 냈다.

  “미남은 돈도 많구나, 자기 나 버리면 완 돼?

  “응, 알았어.

  승객들의 눈총을 의식하며 그는 되도록 자연스럽게 그녀와 말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보기 드문 미모를 지녔으며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다만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그녀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녀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그를 그 남자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소심한 그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계속 따라올 것만 같았다. 그는 친구에게 눈짓을 하고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내리기로 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꼼짝 말고 여기 앉아 있어. 저 앞쪽에 갔다 올게.

  “응.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는 얼른 앞쪽으로 가서 정류장을 기다렸다. 차가 서자 얼른 차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렸다. 승객들의 따가운 눈이 등에 꽂히는 것 같았다. 골목으로 스몄다. 버스는 떠나고 그녀는 따라오지 않았다. 친구가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버스가 떠나고 오랫동안 그녀를 생각했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무사할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상처받은 어린 영혼이란 생각이 여운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산책길에 느닷없이 수십 년 전의 일이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야트막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이었다. 시청에서 등산객들에게 쉬라고 설치해 둔 벤치를 지날 때였다.

  “아저씨!

  맑고 밝은 여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모두 등산복 차람인 이 산길에 유독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그를 불렀다. 나뭇잎 사이로 내린 햇빛이 그녀의 흰 옷에 꽃가루처럼 부서졌다. 정말 요정이 나타난 걸까. 그는 스스로 할아버지라 여기지만 아저씨란 호칭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간 눈을 들어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누구더라?

  “아저씨. 같이 가요.

  그러면서 그녀는 그와 보폭을 맞추었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심코 그녀와 함께 걸었다. 아직 조금은 싱그러움이 남아 있는 그와 그녀의 동행은 그닥 어색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밝음으로 하여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에서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 그녀도 따라 올랐다. 그들은 나란히 앉았다. 그는 뭔가에 홀린 듯 몽롱했다. 곁에 앉은 이 여자가 수십 년 전 그 여자의 환생인지, 숲속의 요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굳이 그걸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밝음과 향기와 따스함이 그에게 천천히 감염되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고 이제 그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날 그녀를 떨구기 위해 내렸던 것처럼 내리려고 했지만 그의 몸은 움직여지지 앉았다. 버스는 그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