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바보

 

 

  시골 고등학교는 늘 학생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대도시는 평준화가 되어 중학생이 이른바 뺑뺑이라 불리는 추첨을 통해 학군별로 배정되기 때문에 학생 부족에 대한 걱정이 없다. 시골엔 사정이 그렇지 못하여 시험을 통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같은 재단에 중학교를 두지 못한 고등학교는 늘 학생이 부족한 편이다. 더구나 시골 인구는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였다.

 

  군사독재 시절 이른바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마을 청소를 하거나 초가지붕을 스레트나 시멘트로 만든 기와로 바꾸거나 마을 앞의 다리를 놓거나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산업화 된 모습을 선망하던 통치자의 눈에 초가지붕은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졌기에 초가지붕을 없애는 것을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아침이면 마을 스피커에서는 새마을 노래가 단잠을 깨우고 마을 사람들은 새마을 마크가 달린 새마을 모자를 썼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마을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손으로 가꾸세. 지금도 그 가사가 기억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많이도 들을 모양이다.

 

   면사무소에서는 마을마다 시멘트 몇 포대씩 나누어주고 마을에 모습을 바꾸라고 했다. 일제 때 신작로나 철로를 만들 때 주민들을 노임 없이 동원했던 부역과 같은 방식이었다. 정권은 이것을 세계적인 시례라고 선전하고 한국의 경제성장은 새마을 운동 때문이라고 선전했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 해서 농촌이 잘 살게 되었으면 농촌 인구가 불어나고 학교의 미달 사태도 없어야 할 것인데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이농현상이 일어나고 농촌엔 늙은이와 개만 남았다. 학생 수가 부족하니 학업성취도가 부족한 아이도 고등학교 입학이 가능했다.

 

  계필이는 2% 부족한 학생이었다.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계필이가 책상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계필이가 어디 아픈가보다 하고 물었으나 계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이 그 연유를 말해 주었다. 창식이 하고 다투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식이에게 맞았다는 것이다. 창식이도 얼마쯤 부족한 아이였다.

  “계필아, 바보 같은 애한테 맞고 그러니?

  순간 계필이는 머리를 들고 똑똑히 말했다.

  “나는 더 바본데요?

  순간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때부터 계필이는 그 이름 대신에 더 바보로 불리었다. 그 계필이가 고등학생인데도 한글을 온전히 몰랐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자기 공부를 자기가 한다. 사실 공부는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가에 따라 성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에 따라 성취도가 갈린다. 잘 하는 학생은 그냥 두어도 잘 하게 마련이다. 계필이까지 합격하는 학교니까 아주 바닥인 학생만 다니는 학교 같지만 얼마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매스컴에 가장 이름이 빈번히 오르내린 우아무개라는 사람도 알고 보면 계필이와 고등학교 동문이다. 명문 국립대를 졸업하고 최연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이른바 엘리트 법관으로 그의 라인을 만들어 국정농단에 일조한 사람이다.

 

  그래서 교사는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그렇지 못한 아이에게 더 관심이 간다. 계필이는 저대로 두면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국어교사가 된 죄로 계필이 한글수업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평균 수업 시수가 일주일에 25시간가량 되고 방과 후 보충수업과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을 합하면 그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될 지경이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대입 입시학원과 다름이 없다. 많은 시간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이상한 풍토가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빈 시간이면 계필이와 마주 앉아 한글 수업을 했다. 목표는 졸업할 때까지 한글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계필이 집으로 편지를 쓰고 계필이로 하여금 그 편지에 대한 답을 나에게 하게 하였다. 그래서 우표를 한 묶음 사 주기도 했다. 가령 “오늘은 저녁 밥상엔 무엇이 있었나요?"라고 물으면 밥상위에 있던 것들의 이름을 써 보내게 하였다. 이런 식으로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 만나서 함께 책을 읽기도 하며 우리의 만남은 다른 학생에 비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은 흔히 불량 학생이라 불리는 아들이 있게 마련이다.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몰래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학교에서 금하는 일을 몰래 저지르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학생 사회도 군대 문화가 들어와서 한 학년만 높아도 높임말을 써야 하고 상급생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계필이도 학년이 올라가서 상급생이 되었다. 계필이 친구들은 걸핏하면 선생님 눈을 피해 하급생들을 불러다가 트집을 잡아 벌을 주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 그런데 하급생을 때릴 때 아이들은 그 악역을 계필이에게 맡기곤 했다. 사실 계필이 혼자 있을 때는 하급생들도 계필이를 상급생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필이 친구들이 게필이를 호위하는 가운데는 계필이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하급생들이 계필이에게 당한 수효가 이루 셀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 변방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만 있으면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뭉치기를 잘 했다. 정치적으로는 영남 출신의 정치인에게 무조건의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이 지역에서는 주류정당에 속하는 사람이면 나무토막을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말이 진리처럼 떠다니곤 했다. 귀농한 사람이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동류의식 때문이다. 도시에 살다가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을 짓고 낮에 개를 데리고 마을길을 다니는 풍경은 마을 사람들의 삶과는 다른 모습이다. 자기들은 아침 일찍부터 들에 나가 뙤약볕에서 일하는데 개를 데리고 마을길을 산책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부아를 돋우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이미 남이 되는 것이다. 마을사람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마을에 살 수가 없어서 집을 내놓게 되고 집을 팔려고 해도 해도 살 사람이 없다. 큰돈을 들여 지은 집이 폐가가 되기 일쑤다. 계필이 동급생들도 계필이가 조금 부족하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또래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계필이로 하여금 하급생들에게 벌을 주게 하는 것도 계필이의 기를 살리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계필이는 조금 부족하기는 해도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계필이가 하급생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은 동기들은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필이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졸업의 날이 가까워오지만 계필이는 아직도 한글을 온전히 익히지 못했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글씨가 조금 틀리기는 해도 편지로 대강의 의사소통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편지를 쓰기가 성가시니까 내게 전화를 하려고 나의 전화번호를 물었는데 전화법호를 ‘전호번호’라고 쓴 것이다. 틀린 글씨지만 글씨체는 예쁜 편이었다. 또박또박 천천히 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성정이 유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계필이의 편지를 받는 즐거움으로 계필이가 졸업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교정에서 우연히 계필이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요즘 잘 지내니?

  “아니요.

  “왜? 무슨 일 있어?

  “물가가 올라서요. 과자도 잘 못 사먹어요.

  앞의 말은 어른들의 말이나 뒤의 것은 어린이의 말이다. 그는 얼굴도 고등학생의 얼굴이 아니라 어린이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 지능도 정서도 그는 아직 청소년이라기보다 어린이에 가깝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계필이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경건한 졸업식이 아니라 해방의 날이라 할만하다. 3년 동안 학업에 시달리고 엄격한 교칙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드디어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다. 식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밀가루를 서로에게 뿌리고 계란 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교복을 찢고 벗어던지기도 한다. 한마다로 난장판을 이루는 것이다. 한창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하는 시기에 엄격한 학교생활에 시달리던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할만하기도 했다.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의 병폐가 드러나는 지점이 졸업식 날이다.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말세라고 했다. 교사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단속에만 집중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자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교무실에 들어왔을 때 급하게 찾아온 아이가 있었다.

  “계필이가 다쳤어요!

  계필이가 교문에서 다쳐서 울고 있다는 것이다. 교문에 가 보니 입에 피가 나는 계필이가 아앙~ 초등학생처럼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체구는 고등학생이지만 우는 소리나 표정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다. 보건실에서 우선 응급처치를 하고 그 연유를 물었다. 교문은 들어오면서 오르막으로 경사진 길이었다. 나갈 때는 반대로 내리막이었다. 계필이가 막 교문을 향해 내려가는데 누군가가 계필이 발을 걸어 계필이는 앞으로 꼬꾸라졌다는 것이다. 아마 그간 계필이에게 당한 하급생들이 그렇게 한 모양이다. 계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땅에 얼굴을 박고 얼굴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

 

  파란만장한 계필이의 고등학교 과정도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계필이가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 사회에 적응하기를 마음으로 빌 따름이었다. 대개 졸업생들은 졸업하면 학교나 선생님과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 지긋지긋한 3년이 떠올리기 싫어서일 것이다. 가끔 명문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금의환향의 기분으로 모교를 방문하기도 한다. 졸업 후에도 계필이는 여느 졸업생과 달리 전에 가르쳐 준 나의 전화번호로 가끔 전화를 걸어왔다.  

  “계필아, 무료한 나에게 안부를 물어주니 고맙다.

  “뭘요. 마땅히 선선생님께 전화는 드려야지요.

  계필이는 당분간 시골 부모님 곁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면서 지내는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잊을만하면 계필이는 안부전화를 하곤 했다. 주로 계필이에게 일어났던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내가 묻고 계필이가 대답하는 식의 통화였다. 어떤 때는 황당한 얘기도 했다.

  “별일 없니?

  “한 가지 걱정이 있어요.

  “뭔데?

  “간첩이 3백 명이나 내려왔다는데 왜 안 잡는지 몰라요.

  “누구한테 들었니?

  “마을 어른들 하는 얘기 들었어요.

  아마 못된 정치권에서 페이크 뉴스를 만든 걸 들은 모양이다. 뉴스와 페이크 뉴스를 구별하지 못하는 순진함을 지녔으니 앞으로 그가 살아갈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필이는 통화를 하다가 고교시절에 배운 다른 선생님의 전화를 묻기도 했다. 그가 묻는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온화한 성품을 지닌 분들이었다. 졸업하고 집에 있으니 그나마 그와 잠시라도 말벗이 되어준 사람들이 그리웠으리라. 한동안 계필이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약속한 기차역 앞 다방에 나가니 군복을 입은 계필이가 앉아 있었다. 반갑고 놀라웠다. 계필이가 군대에 가다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곳인 줄 아는지라 계필이가 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요즘 군대가 이렇게 민주화 되었는가? 계필이는 내 앞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뻐끔뻐끔 피우며 연기를 내뿜었다. 물가가 올라 과자를 못 사먹어 걱정이라던 계필이의 기호품이 과자에서 담배로 바뀐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담배는 어른 앞에서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걸 보니 역시 계필이는 순진한 아이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는가 보다 하였다.

  “너 군에서 많이 맞았지?

  “예.

  “지금도 맞니?

  “이제는 안 맞아요.

  “너, 고문관이지?

  “예.

  몸을 살펴보니 상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군에서 고문관이라는 말은 반어법으로 쓰인다. 고문관은 지휘관을 자문하는 높은 지위의 인물이지만 병사들 사이에서 고문관은 아무리해도 적응이 안 되는 병사라서 열외로 취급하여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병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군에서 고문관은 바보의 다른 말이다. 계필이는 이제 힘든 일은 하지 않아도 되니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다.

 

  군대를 제대하고도 계필이는 가끔 전화를 걸어왔다. 제대 이후의 우리들의 화제는 직장 문제와 결혼 문제였다. 부보님과 한 집에 살면서 가까운 농공단지에서 일한다고 했다. 계필이도 30이 가까워졌으니 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물었다.

   “좋아하는 지지바가 있기는 있어요.

  “예쁘니?

  “예.

  ‘있기는’이라는 말에서 안심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지만, 착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믿고 싶고 계필이가 그녀와 잘 되기를 빌고 빌었다. 그리고 조금 부족하드라도 차별 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