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쾌활한 봄날

 

오랜 세월 인사동에서 예술적 편력을 하던 동여가 고향마을에 내려왔다. 꽁지머리에 수염을 기른 풍모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예술가다. 모자와 옷은 손수 바느질한 자국이 자연스럽고 메고 다나는 가방도 손수 만든 독특한 것이다. 그가 고향집을 찾은 것은 해가 저물면 새가 둥지를 찾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천성이 게으른 그로서는 바쁜 서울 생활에 어지간히 지치기도 했을 터이다.  

 

그의 고향집은 오래 되어 퇴락했으나 배산임수의 제법 규모를 갖춘 기와집이었다. 집의 규모로 미루어 생각하건데 그의 어린 시절은 넉넉하고 유복했을 것이다. 우리 국민 대개가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시절 한양에 유학을 보낼 형편이면 귀하게 자랐다고 짐작함이 적실할 것이다. 그는 교양을 갖춘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비어 있던 고가에 둥지를 틀고 도자기 가마를 지어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의 도자기는 그만의 소박함과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우리고장에서 처음으로 도자기 가마가 생기자 이른바 강호버꾸기라 불리는 수염 기르고 모자 쓴 친구들이 동여의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호 뻐꾸기라 함은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에 종사하며 일정한 수입 없이 간간히 벌어서 근근이 사는 우리 친구들의 총칭이다. 그의 도자기는 인근에 뻐꾸기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도자기를 가까이한다는 것은 고상한 취미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미적 안목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동여는 도공은 부지런하다는 통념을 깨는 도공이었다. 그는 주로 막사발을 만드는데 사발의 모양도 대충 만들고 표면의 그림도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여 그의 막사발은 천진함이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동여의 도자기는 그의 게으름이 반영되어 오히려 그만의 미적 성취를 이룬 셈이다.  

 

동여는 우리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도자기 굽는 일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술 마시고 놀다가 생각나면 한 가마 굽는 식이다. 보다 못하여 사군자 그리는 금강이 도자기 굽는 화목으로 쓰라고 못쓰게 된 철로 받침목을 한 트럭 구해서 동여에게 주었다. 얼마가 지난 뒤에 동여의 집에 가 보니 그 나무들이 간곳이 없었다. 어디에 썼느냐고 물으니 방이 추워 군불 떼는 데 다 썼다고 했다. 그리고 옆 건물이 거의 허물어지고 있었다. 산에 뗄 나무를 하러 가기 싫어 사용하지 않는 집의 서까래와 기둥을 뜯어서 군불을 땠다는 것이다. 게으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이었다.

 

  뒷산에 진달래 만발하고 따스한 바람이 부는 어느 찬란한 봄날 그의 마당에서 화전놀이가 벌어졌다. 수염 기르고 모자 쓴 뻐꾸기들이 아침부터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씨는 알맞게 포근하고 햇살은 밝고 따스했다. 여자들은 뒷산의 진달래 꽃잎을 따서 화전을 붙이고 우리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뒷산에서 꺾은 싸리나무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왕소금을 뿌려 구웠다. 막걸리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음악 하는 후배 정운이 스님을 한 사람 데리고 왔다. 법명을 도호라 했다. 정운은 도호에게 나를 소개했다.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라 하니 도호는 바랑에서 자기가 쓴 시집이라며 시집을 한 권 꺼내 사인을 해서 주었다. 날씨도 좋고 술도 좋고 안주도 좋고 사람도 좋았다. 좋아서 한 잔 두 잔 마신 낮술이 도를 넘고 말았다. 도호도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나는 취흥이 도도하면 개똥철학을 설하는 버릇이 있다. 취하면 말이 술술 풀리며 내 말에 내가 취하기도 했다. 도호도 나의 개똥철학이 싫지 않았는지 나를 자주 불렀다. 나보다 조금은 나이가 적음에도

 

  “형아!”하기도 하고

  “서각아!” 하기도 했다.

  둘이서 말을 주고받다가 가까워지자 도호는 내 말이라면 무슨 말이라도 들을 기세였다.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갔다. 나는 중과 친구가 되기는 처음이라 장난기가 발동했다.

  “중아, 염불 한 번 해 봐라.

  도호는 목청을 가다듬고 반야심경을 구성지게 염송했다. 목소리도 좋고 가락도 속기를 떠난 청아한 가락이었다. 나는 그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도호야, 노래도 한 마디 해 봐라.

  도호는 서슴지 않고 “어머님의 손을 자압고 돌아아 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하고 유행가를 염불하듯 불렀다. 이를 지켜보던 눈이 있었다. 음악 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이 좋아 카페를 운영하며 손님이 많으면 스스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 친구였다. 정운은 평소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형, , 나이가 나보다 많다고 아무에게 형이라고 하지 않아. 형한테만 형이라 해.

 

  평소 정운과 나는 매우 가깝게 지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운은 도호 스님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도호는 비록 술은 마시지만 하안거나 동안거 때에는 반드시 선방에 들어가서 참선에 몰두하는 스님이라는 것이다. 안거가 끝나면 선방에서 여비를 넉넉하게 준다고 했다. 도호는 그 돈으로 택시를 타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보고 싶었던 사람에게 찾아가서 몽땅 술을 마시거나 하는 용도로 하루 만에 다 써버린다고 했다. 돈을 모르는 참 스님이라는 것이다.

 

  그런 도호를 내가 데리고 놀고 있으니 정운이 몹시 빈정이 상했던 것이다.

  “서각이!

  평소 형이라 하더니 갑자기 노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시바,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방어할 사이도 없이 정운의 주먹이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정운을 공격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정운과 싸웠다. 마당에서 격투가 벌어진 것이다. 모든 뻐꾸기들이 관중이 되고 우리는 격투기 선수가 되었다. 정운은 싸움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나는 싸움이나 운동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운동을 했다면 교직원노동조합 운동에서 구호를 외치며 팔을 들어 본 적은 있다. 그러니 말이 싸움이지 그 동작들이 매우 희극적이었을 것이다. 구경 가운데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좋다고 하는데 바보들의 싸움은 더욱 장관이었을 것이다. 이 이벤트를 지켜보는 관객의 반응도 가지가지였다. 말리는 사람, 말리는 척 하는 사람, 재미있게 보는 사람, 놀라서 멍해진 사람 등 가지가지였다. 착하디착한 동여는 온몸을 벌벌 떨며 외쳤다.

  “아이구, 큰일 났네. 이 마을이 생긴 이래로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이구 큰일 났네.

  싸우면서도 동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호 스님은 두 손으로 합장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는 정운과 격투기를 하면서도 동여와 도호의 소리를 들으며 내심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술판에서의 싸움은 덜 취한 자가 이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정운은 유명한 아무개 작가와 다정하게 대마초를 나누어 피우다가 잡혀 들어갔다 나온 후였다. 거기다 술이 취했으니 기운이 없었다. 내가 정운을 마당가의 연못에 처박음으로써 싸움은 끝이 났다. 스스로 돌아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학교의 선생을 하고 있을 때라 쪽팔려서 몸 둘 곳이 없었다. 후배의 차를 타고 도망하듯 자리를 떠났다.  

 

  이튿날 잠에서 깨니 몸과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실타래가 엉킨 것 같고 모래가 서걱거리는 것 같았다. 정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운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정운아, 내가 미안하다.

  “형, 제가 잘못했어요.

  생각하면 그때는 젊었었다. 해마다 진달래는 피고 지고 뒷산 뻐꾸기는 유정하게 울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참으로 명랑 쾌활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