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출이

 

어느 고장이든 그 고장 하면 떠오르는 명물이 있다. 이 고장 사람이라면 덕출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전 시대에는 어느 고장이든 반드시 덜 떨어진 사람이 한 사람쯤 있게 마련이었다. 대구에 금달래, 안동에 무종이가 있었다면 영주에는 덕출이가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개 일정한 장소에 근거지를 정하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살아가며 남루한 행색으로 여러 사람의 눈에 자주 목격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이들에게 반말을 하며 이름을 부른다. 이들의 이름을 모르면 고장 사람이 아니라 할 만큼 그 고장의 명물로 통하며 마스코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어떤 고장에도 그런 명물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살기가 좋아진 탓이겠지만 그때는 2% 부족한 사람들이 고장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연민이랄까 인정이랄까 그런 여백이 있던 시절이었다. 가난했지만 사람의 냄새가 있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덕출이를 호명한다.

 

  지금 덕출이는 없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남아 이 고장에 거리에 안개처럼 떠돌고 있다. 안개처럼 떠돈다는 것은 어느 날 문득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고장에 오래 산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다가 일이 시원찮으면 그를 면박주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아, 그 정도는 덕출이도 한다네.

  친구들끼리 모여 고스톱 화투를 치다가 몇 판이 돌아도 한 번도 이기지 못하거나, 계속 고를 외치다가 바가지를 쓰거나, 3점이 되어야 스톱을 할 수 있음에도 늘 2점에서 그치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사람아, 역 앞에 덕출이도 2점은 한다네.

  놀이터에서 어른들끼리 모여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환담을 하다가 아이 가운데 유난히 어리버리한 아이가 발견되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거 덕출이 아이 아니야?

  덕출이가 낳은 자식이 아니냐는 뜻이다. 지금 덕출이는 없지만 이렇게 덕출이의 추억은 전설로 남아 그 이름은 이 고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덕출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사는지, 가족은 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덕출이의 근거지는 역 주변이다. 지금은 옮겨져서 표지석만 남아 있지만 그때는 역에 가면 언제든지 그를 볼 수 있었다. 영주역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다. 청량리에서 부산으로 이어진 중앙선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강릉과 연결된 영동선과 서쪽으로 김천과 연결된 경북선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남과 북을 잇는 중앙선과 동과 서를 잇는 영동선·경북선이 교차하는 열십자 가운데 영주역이 있었다.

 

  영주역은 여행객들이 기차를 갈아타는 곳이라서 뜨내기손님들이 많은 곳이다. 유동인구가 많으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잡다한 사람도 많게 마련이다. 역 주변에는 허름한 숙소가 즐비하고 손님을 유치하려는 호객꾼들도 많아 역을 빠져나오는 손님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소매를 끌기도 한다.

 

 

  나는 영주에서 30리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자라 학교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만 다녔다. 몸이 약해서 어른들이 멀리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시골학교에 다녔고 그곳에 고등학교가 없으니까 영주에 유학을 와서 다녔다. 대학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변방교육대학에 다녔다. 우리 집 옆에 대학이 있었다면 대학도 거기 갔을 것이다. 변방교육대학에 다닐 때는 영주역에서 기차를 타야만 했다. 토요일 집으로 올 때는 영주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고향집으로 가야 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구두를 처음 신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영주역에 내리니 구두 닦는 소년이 구두를 닦으라고 했다. 마침 구두 닦을 때가 되어 소년의 구두 통 위에 발을 얹었다. 소년은 구두에 약을 바르고 침을 탁탁 뱉으며 성냥을 그어 대며 열심히 닦았다. 얼마냐고 물으니 천 원을 내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금액은 3백 원인데 천 원을 내라니 난감했다. 소년은 태도가 돌변하여 소리쳤다.

  “불 매끼를 올렸잖아!

  나와 소년이 말을 주고받자 건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나는 포위되었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가 나를 보고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어이, 보아하니 대학생 같은데 불 매끼가 뭔지 몰라?

  나는 꼼짝없이 알토란같은 천 원을 주고 겨우 석방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곳을 거쳐 간 객지 사람들은 어떠했을지 불문가지다. 그 시절 영주역을 거쳐 간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답지 못한 추억 한두 가지쯤은 선물 받게 마련이다. 영주역은 어두운 면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다. 역 개찰구를 나와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면 광장 옆에 지게를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지게꾼이 있다. 덕출이도 역 주변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그런 주변인이었다. 그의 주된 직업은 지게꾼이지만 아무 일이나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역 앞에 지게를 세워 놓고 기다리다가 손님이 짐을 운반해 달라면 집까지 운반해 준다.

  “덕출아, 이거 지고 가자.

  손님이 일을 시키면 덕출이가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손님이 젊거나 늙었거나 혹은 양복 입은 신사거나 두루마기 입은 노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이렇게 묻는다.

  “얼마 주는데?

  손님이 얼마 준다고 하면 더 달라는 말은 없다. 얼마를 준다고 하든지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집까지 짐을 날라다 주었을 때 준다고 했던 그 액수와 실제 액수가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3천원을 준다고 하고 막상 일이 끝나고 2천 원을 주면 덕출이는 더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짐을 다시 지고 역으로 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약속이 중요했던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을 때 덕출이는 남의 집 화장실을 푸는 일도 했다.

  “덕출아, 우리집 화장실 퍼 다고.

  “얼마 주는데?

  3천원 줄게.

  그날 덕출이는 한나절 화장실을 펐다.

  “돈 줘.

 

  일이 끝나고 덕출이가 하는 말이다. 덕출이의 성미를 잘 알지 못하는 주인이 위인이 어리버리하니까 2천 원을 내밀었다. 덕출이는 그 돈을 받지 않고 쓰다달다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디에 버렸던 똥을 다시 지고 와서 그 집 화장실에 채웠다.

 

  그런 일이 알려지자 이 고장 사람으로 덕출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돈을 깎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심부름 값을 적게 주기는 한다. 시장 사람들 사이에 덕출이의 소문은 정직함의 대명사로 둔갑하기도 했다. 시장 상인들은 신용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덕출이의 그런 행동은 소문에 소문을 타고 신용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덕출이는 밥을 굶는 일은 없었다. 덕출이가 시장을 지나면 상인들이 하는 인사가 있다.

  “덕출아, 밥 먹고 가라.

  배가 고프면 밥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면 들은 척도 않고 지나간다. 덕출이는 과묵하고 말이 적다. 남의 말을 하는 법도 없고 들은 말을 남에게 전하는 법도 없다. 덕출이가 있는 곳에서 어떤 말을 해도 그 말이 소문이 될 우려가 없다. 과묵하기가 집에서 기르는 개와 견줄 만했다. 덕출이의 그런 점이 오히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꼬마 아이들도 덕출이가 지나면

  “어? 덕출이다아.

  “덕출아!.

하고 부른다. 다른 어른을 그렇게 불렀다가는 혼쭐이 나겠지만 덕출이는 그렇지 않으니 아이들은 안심하고 부를 수 있었다. 덕출이는 모른 척 하고 그냥 지나간다. 적당한 놀이나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은 심심하면 덕출이를 따라다니며 놀려대기도 했다.

  “덕출이 바보!

  “덕출이는 고자라네.

하며 무료한 시간을 죽이곤 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이들이 모르는 이야기다. 덕출이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도 이 고장에 안개처럼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왕자표 통고무신과 같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은 당나귀에 비길 만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없다고도 했다.

 

  사실 덕출이의 물건을 아무도 본 사실이 없는 것처럼 덕출이에 대한 소문도 덕출이가 없는 현재는 누구도 확인할 수가 없다. 아직도 나이든 사람들은 지금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덕출이 물건에 대하여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덕출이에 대해서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그런 사람에게 묻는다.

  “자네가 봤는가?

  “보지는 못했지만 들었네.

  “누구에게 들었는가?

  “사람들이 다 아는데 자네만 모르는구먼.

  덕출이의 이야기에 대해 직접 보았거나 겪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덕출이 이야기를 직접 겪은 것처럼 말한다. 모두들 가난하고 각박함으로 팽팽한 시절, 덕출이의 어수룩함과 빈곳은 시민들의 안식처였다. 덕출이에 대한 사랑이 믿음으로 이어지고 그 맹목적 믿음이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고장에서 흰장갑이 주먹으로 전설이 되었다면 덕출이는 모자람으로써 전설이 된 사람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한담을 하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자네, 덕출이 알지?

  “음, 알고말고.

  “덕출이가 정말 난 놈일세.

  “그게 무슨 말인가?

  친구는 마치 어제 일처럼 덕출이 이야기를 했다.

  “어리버리한 게 당수 팔단이라고, 덕출이가 당수 팔단이지. 역 근처에 노숙하는 여자들은 전부 덕출이 여자야. 여자들이 임신을 하면 시에서 처리해야 되잖아. 시에서 골머리를 알았지. 아이를 낳게 하고 시설에 보내기도 하고 입양시키기도 하고... 그것도 한두 번이라야지.

  “정말인가?

  “그래서 시장이 보건소장 보고 덕출이 부랄을 까라고 했지. 그 뒤로는 노숙하는 여자들이 임신하는 일이 없었지.

  “자네가 봤는가?

  “꼭 봐야 아는가?

  “그걸 어떻게 믿어?

  “예끼 이 사람아. 온 시내 사람 다 아는데 자네만 모르는구먼.

  덕출이도 시장도 보건소장도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물어 볼 곳이 없다. 물어본다고 해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덕출이가 이 고장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었지만 덕출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남아서 안개처럼 이 고장을 떠돌고 있다. 그리고 덕출이의 전설도 만들어지고 있다. 덕출(德出)은 그 이름과 같이 모자람으로 이 세상에 나와 힘겹게 사는 시민들에게 덕을 베풀고 위안을 주었으니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이 세상에 그 이름이 헛되이 나는 법이 없음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