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준이 형이 소백산 자락에 집을 짓고 산 것도 수십 년이 넘었다. 서울에 노모와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그는 스스로 산사람이 되었다. 여느 산사람이 그러하듯 그는 수염을 기르고 꽁지머리를 하고 무채색의 옷을 입는다. 외딴 집에 오래 살다 보니 피부색도 모습도 산을 닮아서 그가 산인지 산이 그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가끔 형의 오두막을 방문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른바 강호 뻐꾸기라 부르는 우리 친구들이 그의 주된 손님이다. 형의 집에 갈 때는 라면 박스나 막걸리 박스를 가지고 간다. 그러면 그는 고춧가루가 거의 없는 짠지를 작게 잘라 접시에 담아서 내온다. 그의 마당에는 몇 명이 앉아서 쉴 만한 너럭바위가 있어 우리는 바위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우리가 막걸리를 가지고 가는 이유는 형이 막걸리밖에는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형, 왜 막걸리만 마시지?

  “소, 소주 마시던 친구들 다 죽었어.

  이게 준이 형의 대답이다. 그러면서 형은 죽은 이의 이름을 몇 나열했다. 모두 내가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그는 말을 더듬는다. 노래할 때만 제외하고 말을 할 때는 항상 더듬는다. 막걸리도 꿀꺽꿀꺽 마시는 법이 없다. 우리 친구 동여가 빚은 조그만 막사발에 한 잔을 부으면 거의 열 차례에 걸쳐서 잘라 마신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막걸리 한 병을 한나절에 걸쳐서 마신 적이 있다고 했다. 취하지 않고 그냥 술의 향을 즐긴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그도 처음부터 산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서울을 떠나 소백산에 혼자 살면서 말을 잊어버렸다 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구경을 할 수 없고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말없이 오래 살다 보니 말을 잊었다 했다. 그러다가 강호 뻐꾸기들이 그의 집을 찾으면서부터 말을 하려니 말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어찌어찌 해서 실어증은 치유가 되었지만 말의 첫마디를 더듬는 증상은 상처가 나은 뒤에 남은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벽에는 훈장처럼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육군 소위 임관증서다. 대개 ROTC 장교로 임관되면 중위로 제대를 하는데 그는 소위로 제대를 했다. 왜 소위냐고 물으면 그는

  “음, , 음”

한 다음에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말았다.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말보다 음,음을 자주하는 편이다. 언젠가 그의 노모가 서울에서 내려와 함께 닭을 잡아먹을 때였다. 그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아주 조금씩 천천히 먹는다. 닭고기 한 쪽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조금 베어 먹고는 또 음,, 한다. 먹는 양보다 음,음이 더 많았다. 그의 모친이 말했다.

  “얘는 뭐 먹을 때 꼭 죽는 소리를 해.

  호모사피엔스가 호모사피엔스인 까닭은 호모로퀜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각을 하는 동물인 까닭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인데 언어는 호모사피엔스만이 사용할 줄 안다. 그런데 준이 형은 그 호모사피엔스만의 특권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고 오만인지 모른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신호에 의해서다. 가령 위험하다, 배가 고프다, 짝짓기 하자 등의 의사를 감탄사인 울음소리 하나로 표현한다. 감탄사에는 문법체계가 없다. 그래서 동물의 소리를 말이라 하지 않고 그냥 소리라 한다. 새의 소리를 새소리라 하고 개의 소리를 개소리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순수한 언어는 감탄사다. 복잡한 문법체계가 없기에 뜻이 복잡하지 않다. 혹세무민하거나 누구를 속일 때의 말은 문법체계가 복잡하고 길다. 감탄사만으로는 혹세무민을 할 수도 사기를 칠 수도 없다. 감탄사는 순수하고 순결한 언어다. 형의 음, 음도 속세의 잡다한 것을 초월한 순수한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도인으로 분류해도 좋을 것이다. 대체로 형의 과묵함이 이와 같았다.

 

  준이 형이 일사후퇴 때 빅토리아호를 타고 남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영화 ‘국제시장’이 나오고 나서였다. 국제시장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가 말했다.

  “내, 내가 비, 빅토리아를 타고 왔잖아.

  준이 형은 원산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빅토리아호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서울에 살다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형의 모친은 원산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외아들인 형의 교육에 남다른 열성을 보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북에 두고 왔기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상황에서 대학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미루어 형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형이 소백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후 형의 가족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들려서 며칠간 함께 지내기도 했다. 우리 뻐꾸기들이 형의 집에 들르는 횟수보다 가족들이 방문하는 횟수가 적으니 형은 가족을 떠나 혼자 사는 산사람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우연히 형의 산막에 들리면 형의 모친이 와 계실 때가 있다. 그런데 모친은 아들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우리와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아들에 대한 흉보기다. 그놈의 버리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염려 때문이다.

 

  그런 모친이 90이 넘어 드디어 형의 산막으로 합류하였다. 이 모자간의 관계를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과제임이 틀림없었다. 형의 주변에는 형처럼 엄마와 사는 사람들이 몇 있다. 철공소 하는 철이, 노래방 하는 기남이, 굴삭기 운전하는 삭기가 그들이다. 그들은 이 그룹을 자칭 엄마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으로 ‘엄사모’라 불렀다. 엄사모 남자들의 특징은 그들의 어머니가 모두 극성스럽다는 것이다. 그 극성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그 극성스러움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사랑의 방법이 모두 지나친 간섭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평범하게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의 하는 일이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또한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이 딜레마로 인해 엄사모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유대를 맺고 있다.

 

  이들 어머니들도 서로 잘 아는 사이다. 교회나 경로당에서 만나면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흉보기로 긴 수다의 시간을 갖는다. 엄사모 멤버들도 모이면 어머니에게서 어떻게 당했는가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고 그 형태가 너무나 흡사함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엄사모의 어머니들은 같은 연세의 어머니들보다 기력이 좋으시고 대체로 장수하신다. 이들은 나름대로 어머니들이 더 오래 살아 계시게 할 비장의 방도가 있다. 그 방법도 공통점이 있다.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쉬이 눈을 감지 못하게 하여 어머니의 장수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긴장해야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엄사모다운 발상이다.

 

 

  우리가 형의 집을 찾을 때는 바쁜 일상, 복잡한 세사에 심신이 지쳤을 때가 많다. 준이 형이 자리 잡은 곳은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졌을 뿐 아니라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이것만으로도 세속에서 벗어난 정취를 느낄 수 있지만 그보다 형이 도인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도량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형의 집을 찾는 것은 녹녹치 않은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그윽한 심산의 정취를 만날 수 있고 자연을 닮은 형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불가에 떠도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준이 형이다. 사람이 오는 기척이 나면 텃밭을 매던 호미를 던지고 부엌으로 가서 예의 고춧가루 적게 묻은 짠지 보시기와 술잔을 들고 나온다. 더운 날에는 개울가에, 덥거나 춥지 않으면 마당의 너럭바위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형이 음, 음 하면 나도 따라서 음,음한다. 가끔 형이 어?, 하면 아, 하고 대답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으면 형 스스로 아? 했다가 어 한다. 자문자답이다. 냇가에 호젓이 앉아 형과 함께하는 시간만은 세속의 잡다함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시간이다.

 

  우리 친구들은 어떤 핑계를 만들어 준이 형 집에 모여 이른바 파티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파티라고 해야 염소 한 마리 잡고 막걸리 몇 말 받아 놓고 마시며 노래하며 노는 것이지만 굳이 파타라고 부르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 야회복을 갖추어 입고 실내악 연주에 맞추어 춤추며 즐기는 사교 모임 못지않은 우리 나름의 소중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파티에 쓰이는 희생은 주로 형이 기른 염소다. 누가 어떤 명분을 내걸고 염소 한 마리를 잡겠다고 하면 다른 뻐꾸기들이 염소를 요리하고 막걸리를 준비하여 음식을 마련한다.

 

  염소 요리의 총감독은 소설 쓰는 최공이 주로 담당한다. 그는 미식가여서 손질한 염소 고기를 양념에 재우는 일을 담당한다. 고급 포도주와 월계수 잎을 넣어 양념하여 재운 고기는 미슐랭에 오른 요리사의 작품 못지않다. 최공은 이 작업만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수염을 기른, 모자를 쓴, 혹은 꽁지머리를 한 강호뻐꾸기들이 속속 산으로 모인다.

 

  불을 피우고 석쇠에 양념이 잘 된 염소 고기를 올리면 온 계곡에 고기 굽은 향이 퍼지고 뻐꾸기들의 술잔도 바쁘게 오고 간다. 취흥이 오르면 대금 부는 항소가 대금을 꺼내어 대금 산조를 연주하면 소리는 계곡에 메아리가 되어 숲을 어루만진다. 그야말로 숲속의 음악회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평생 기타를 껴안고 살아서 기타와 한 몸이 되어버린 원해는 기타를 꺼내어 들고 클래식부터 시작해서 뽕짝 반주까지를 넘나든다. 원해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전주곡이 간드러지게 넘어간다.  

 

  준이 형은 말은 더듬지만 노래할 때는 결코 더듬지 않는다. 그의 십팔번 래퍼토리는 ‘빛과 그림자’, ‘초우’ 등 패티 김의 노래와 ‘엘리나가 된 순이’라는 아주 오래된 유행가다. 양념 잘 하는 최공도 흥이 오르면 나름대로의 멋을 부린 창법으로 ‘모란 동백’을 부른다. 엄사모 회원 삭기도 흰 바지를 입고 나타나서 교회 합창단에서 갈고 닥은 테너로 ‘오, 솔레 미오’를 열창한다. 이쯤이면 파티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 승기가 학위를 받던 날도 내가 10년 만에 학위를 받던 날도 염소를 희생으로 한 파티가 있었다.

 

 

  자주 열리던 파티가 중단이 된 것은 준이 형이 이웃집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하고부터였다. 산중 생활은 거의 자급자족이기에 많은 생활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집을 수리할 자재를 산다거나 전기료와 전화료를 내거나 할 때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염소 몇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 염소가 단 하나만 있는 이웃집 밭으로 들어가 어린 사과나무의 껍질을 갉아 먹은 것이다. 그 광경을 사과밭 젊은 주인이 사진을 찍어 1억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사실 이웃 과수원은 젓가락만한 나무를 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손가락 크기 정도로 자란 상태였다. 염소 잘못보다 나무를 돌보지 않은 주인의 잘못이 더 큰 상황이었다. 수십 년 산에만 살던 그에게 1억이라는 숫자와 소송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는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과 멀어지기 위해 산에 들어와서 오직 마음 비우는 일어만 열심이었던 형에게 이 일은 처음 겪는 충격이었다. 아무리 도사에 가까운 형이지만 세속의 야박함은 그의 도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난생처음 검찰청에 다녀온 어느 날 형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서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도사가 왜 이렇게 쫄았어?

  “거, 검찰에는 처, 첨이거든.

  젊은 주인의 계산은 형의 염소가 사과밭을 몽땅 훼손했으니 몇 년간 들어간 농자재와 농약 값, 그리고 앞으로 생산될 사과의 양을 계산하면 1억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형을 따르는 벗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여 형을 돕기로 했다. 그래도 형의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선임된 변호사는 나의 지인이었다. 어느 날 밤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그분 왜 그렇게 겁이 많으세요?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불안해 하니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는 분이라니 좀 안심시켜 주세요.

  보지 않아도 형이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알만했다. 사건이 해결되고 나중에 변호사에게 들은 말이다. 법원에서는 재판하지 않고 조정을 권했다. 판사가 원고에게 500만 원 배상하는 안을 내자마자 준이 형은 얼른 예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변호사는 일이백만 원이면 될 것을 형이 얼른 대답하는 바람에 500씩이나 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정이 끝나면 다시는 법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 얼른 대답한 것이다. 대개 형의 겁 많음이 이러했다. 이후로 형과 언쟁이 생길 때면

  “형, 자꾸 그러면 고소할 거야.

이러면 그 때 일이 생각나 겸연쩍게 웃곤 한다.

 

  이 일로 형은 염소 기르기를 포기 했다. 수익사업의 종목이 바뀌었다. 염소 기르기에서 송이 따기로 생업이 바뀐 것이다. 소백산은 예로부터 산나물과 송이버섯이 유명하다. 산나물과 송이버섯은 그 맛과 향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임금께 진상을 했다니 그 이름만큼이나 품질이 좋다. 송이는 한가위 무렵 한 달 가량 난다. 준이 형은 송이를 따면 뻐꾸기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곤 했다. 수입원이 끊어졌으니 파티를 위한 송이 따기가 직업이 된 것이다. 한가위 무렵 한 달 가량 송이를 따서 1년 생활비로 쓴다. 1년에 한 달 정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쉬는 시간이니 오히려 더 잘 된 일이라고 여겼다.

 

 

  송이는 귀물이라서 아무 눈에나 쉬 보이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가 있는 땅에서 나는데 떨어진 솔잎을 들추며 머리를 내민다. 솔잎을 들추어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초보자는 아무리 살펴도 솔잎만 보이고 송이는 보이지 않는다. 초보자는 송이가 있는 곳을 밟고서도 송이를 찾지 못한다. 생김새는 삿갓을 쓴 사람 같기도 하고 성난 남성의 일물 같기도 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일이 서툰 사람을 조롱하여 좆도 모르고 송이 따러 간다고 한다.

 

  송이는 해마다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온도와 습도가 맞아야 송이가 나지 그렇지 못하면 송이 구경도 못하는 해도 있다. 더구나 인공 재배가 불가하기 때문에 그 생산을 하늘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 귀물이다. 준이 형은 좀처럼 시내에 내려오지 않는다. 송이를 따서 주머니에 돈이 생길 때가 형이 하산할 때다.

 

  형의 외출을 우리는 하산이라고 한다. 형의 하산은 그 복장이 요란하다. 주로 친구들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선물로 사 준 것들을 착용하는데 영국산 중절모에 미제 청바지, 이태리제 가죽 자켓 등을 착용한다. 패션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지만 오래 쓰지 않아 옷장에 오래 보관했던 흔적은 지울 수 없다. 거기에 가죽공예가 친구가 손으로 만들어준 가방을 어깨에 걸친다. 가방을 걸쳤다는 것은 돈이 있다는 증거다. 한가위가 지나고 요란한 차림을 한 형이 하산을 했다.

  “올해는 송이 좀 땄수?

  “가, 가방을 보면 몰라? 태어나서 올해 가장 큰돈을 벌었어. 내 크게 한 잔 살 게”

  빛바랜 수염 사이로 흰 이를 드러내며 형은 밝게 웃었다. 보통사람들이 말하는 큰돈과 형의 큰돈은 단위가 다르다. 몇 백만 원도 형에게는 큰돈이다. 짐작컨대 보통사람들의 한 달치 월급 정도 벌었으리라. 형은 돈이 없을 때는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 오직 돈이 있을 때만 돈이라는 단어를 쓴다.

 

  젊어서 들어온 소백산에서 그의 청춘도 빛이 바래어 거의 할배가 되었다. 어느 날 무심히 텔레비전을 켜니 형이 화면에 나왔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리포토가 형의 집을 찾아 산중 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리포터가 송이를 따러 산에 오른 형을 따라 산에 올랐다. 드론이 공중에서 아름다운 계곡을 조망한다. 장면이 바뀌어 산 중턱에 나란히 앉은 형과 리포터를 카메라가 잡는다. 나란히 앉아 쉬면서 리포터가 형에게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형이 대답했다.

  “아, , 아무 생각이 없지 뭐.

  참으로 우문현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