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

 

적음 스님이 우리고장에 나타난 것은 수십 년 전이다. 어느 절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인사동에서 왔다는 것이 여느 스님과 다른 점이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으므로 소문으로만 그런 스님이 있구나 여겼기에 그는 나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가 썼다는 ‘저문 날의 목판화’라는 산문집을 몇 쪽 일별한 적은 있다. 일별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나의 관심 밖에 있었기 때문이며 들리는 풍문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책의 표지는 저물녘 산사로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흑백으로 처리되어 운치가 있었다. 당시 스님들의 글이 대중의 관심을 끌던 때여서 적음의 책도 여성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백화점에서 저자 사인회를 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스님이 절에서 수행은 하지 않고 세속에서, 그것도 대도시도 아닌 이런 변방에서 저자 사인회를 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어떤 땡초가 또 혹세무민을 하고 있군,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후로 강호뻐꾸기들이 자주 모이는, 정운이 하는 ‘문’이라는 막걸리 집에서 가끔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승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우리가 나눈 대화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거나 서사가 뚜렷한 말이 아니라 대화랄 것이 없었다. 그는 별것 아닌 말이나 행동에도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때는 스스로 말해놓고 스스로 푸하핫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사람이란 반갑든 반갑지 않든 만남이 잦아지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언제부터인지 그와 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저 가스나, 이쁘네. 미스코리아다. 미코, 푸하핫”

  그는 긴 문장으로 말하는 법이 거의 없다. 느낌을 나타내는 감탄사나 단문 형식으로 말한다. 말을 한다기보다 그냥 즉흥적 느낌을 나타낸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당시에 이미 미스코리아를 줄여서 미코라 했으니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의 창시자라 해도 별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기의 법명 적음을 설명할 때는 제법 긴 문장이 된다.

  “고요할 적() 소리 음()이다. 영어로 하면 Sound of silence. 푸하하핫!

 

  그 즈음 적음이 내가 한때 문학소녀로 알았던 금희와 함께 산다는 풍문이 들렸다. 금희는 비록 가방끈은 길지 않았지만 재능 있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어떤 여성잡지에 수기를 써서 당선된 적이 있는 풍부한 감성을 지닌 여자였다. 이후로 객지를 떠돌다가 이 변방 백화점에서 양품점을 하고 있었다. 금희는 나를 대단한 글쟁이인 양 대했지만 나는 그게 늘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중에 적음과 금희에 대한 풍문이 들리니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적음이 승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 뒤에 금희와 적음이 헤어졌다는 풍문이 돌았다. 금희가 백화점에서 일을 해서 몇 푼 모은 것을 적음이 모두 써버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헤어진 뒤로도 적음은 스토커처럼 금희를 찾았고 금희는 그를 피하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했다. 금희가 도망가면 귀신같이 찾아오고 다시 도망가면 찾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금희가 몹쓸 병을 얻어 서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느 날 금희와 친하게 지내던 바울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금희가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금희를  보내는 화장장으로 차를 몰았다. 내가 바울라에게 물었다.

 

  “적음도 아는가?

  “금희가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

  차 안에서 바울라에게 들은 이야기는 온통 적음에 대한 험담뿐이었다. 금희가 자기의 죽음을 적음에게만은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만 변방에서 가깝게 지내던 몇몇 문우들과 함께 영전에 막걸리 한잔 부어달라는 게 그녀의 유언이라 했다.

 

  금희는 생전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고 했다. 적음과 함께 살 때도 돈만 달라고 할 줄 알았지 병원에 한 번 같이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아픈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상을 차리라고 하고 밤새 술만 마셨다고 했다. 서울 병원에 입원해서 생사를 다툴 때도 병원에 친구들을 몰고 와서 병실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과연 적음다운 일었다 싶었다. 고단했던 생을 끝낸 금희의 몸이 불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그녀의 영전에 막걸리 잔을 부어 올리고 함께 건배를 함으로써 그녀와 영원한 작별을 했다. 화장장 곁 공터는 볕에 뜨겁게 달아 있었다. 우리는 신산했던 그녀의 생애를 생각하며 하늘 가 뭉게구름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매미가 따갑게 울었다.

 

  그 무렵 적음은 이 변방 시골마을에 비어 있는 농가 한 채를 빌려 독거하고 있었다. 농가 기둥에는 일소굴(一笑窟)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방안에는 조그만 불상을 모셨다. 말하자면 일소굴은 그의 절이었다. 적음이 신도 겸 주지인 셈이다. 일소굴에 근거를 두고 살면서 가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서 술 마시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생활 패턴이었다. 말하자면 일소굴에 거하는 것은 수행이었고 지인을 만나는 일은 탁발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가 왔다. 만나자는 것이다. 곡차 탁발을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퇴근 후에 약속 장소에 가니 이미 술상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인제 왔어?

  그는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한다. 만나 봐야 술 마시는 것이 일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 같다. 약속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전화를 다시 거는 것이 버릇이다. 조금 기다리다 다시 전화를 건다. 그가 거는 전화 벨 소리에는 조급증이 묻어 있다. 이러한 성미와 같은 리듬이 그의 걸음걸이다. 발걸음의 폭이 좁다보니 자연 급하다. 쪼작쪼작 걷는다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그의 조급함과 걸음의 리듬은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내 마누라가 죽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금희의 죽음을 들은 것 같았다. 이미 장례식에 갔다 온 내게 굉장한 소식을 전하듯 하는 것도, 얼마간 함께 산 여자를 마누라라고 부르는 것도 그 다운 불협화음이라 여겼다. 몇 잔의 술을 마시더니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니는 마누라도 있잖나, 나는 이제 마누라가 없다!

  마치 엄마 잃은 아이 같다. 스님이라는 사람이 마누라라는 말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하는 것은 적음밖에 없을 것이다. 몇 잔의 술을 함께 나눔으로써 마음에도 없는 위로의 말을 한 다음 그를 보냈다. 만났다 헤어질 때 적음이 반드시 하는 의례가 있다.

  “차비 도!

  대중교통이 끊어진 시각에 일소굴까지 가자면 택시를 타야했기에 택시비를 달라는 것이다. 친구들은 처음에는 차비를 주었지만 대부분 가난한 뻐구기를 자처하는 친구들이기에 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 적음은 양말목에 숨겨두었던 비상금을 꺼내어 택시를 타고 간다. 우리는 적음의 양말에 비상금이 있는 것을 안다. 나는 적음에게 만 원 짜리 한 장을 주었다.

 

  “이거로는 모자라.

  “만 원밖에 없어. 만 원어치만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가.

  “알았어.

  나머지는 걸어가라고 말했지만 그가 걸어가지 않을 것도 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왠지 그가 예의 그 쪼작쪼작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라 애잔하기도 했다.

 

  강호뻐꾸기들이 추렴을 해서 모일 때 적음은 초청 순위 1번이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적음에 연락해서 만나는 뻐꾸기는 드물다. 대화도 거의 통하지 않고 뭔가 리듬이 맞지 않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음은 뻐꾸기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전화를 하곤 한다. 그가 전화를 거는 대상은 술값과 차비를 청하기 쉬운 만만한 이름이다. 나는 그 만만한 친구 중에 하나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변방의 용어로 호구로 뽑힌 것이다. 그래도 뽑혔다는 게 어디인가. 자주 만나면서 그의 입에서 간간히 나오는 말을 통해 그의 이력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주로 질문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적음은 질문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말을 할 때가 있다. 서로가 아무 할 말이 없을 때다.

  “내 입이 왜 이런지 아나?

  그의 입 모양은 특이하다. 아랫입술이 유난히 두텁고 앞으로 나와 있다. 옆에서 보면 그 내민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왜 그런데?

  “이가 빠져 그렇다.

  그러면서 이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앞니는 아랫니는 그대로 있는데 윗니가 거의 없다. 윗입술이 뒤로 밀리니 아랫입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승복은 입지 않았지만 머리는 중의 머리다. 거기에다 아랫입술을 내민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근엄한 고승의 풍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내가 그와 만난 자리에 심하게 기침을 하니까 적음이 말했다.

  “나는 평생 감기도 걸리지 않고 병이 없다.

  “대단하네.

  “내가 어릴 때 염병을 앓았다. 그 뒤로는 병을 모른다.

 

  그는 경남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조실부모 했기에 나이도 정확히 몇 살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문단의 나의 선배들과 대학 동기이니 나보다 한두 살 위일 것으로 추축된다. 양친이 돌아가시고 누나와 둘만 남았는데 누이는 친척집에 맡겨지고 적음은 절에 맡겨져 동자승이 되었다. 어느 날 신열이 몹시 나는 병에 걸렸다. 그때는 염병이라 하고 요즘은 장티푸스라고 하는 무서운 병이다. 그때는 치료약이 없을 때라 열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염이 되기 때문에 인적이 없는 곳에 버려두었다가 다행히 죽지 않으면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했다.

 

  그를 거두어들인 은사 스님이 적음을 인적 없는 곳에 격리시켰는데 다행히 죽지 않아서 다시 절로 돌아왔다. 적음의 소식을 들었는지 유일한 혈육인 누나가 절에 와서 뼈만 남은 동생을 보고 슬피 울었다. 병원에 한 번 데려가지 않은 은사 스님에게 원망의 말을 쏟으며 울었다. 적음은 지금 감기가 걸리지 않고 잔병이 없는 것이 염병을 앓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적음은 참다운 스님의 길을 걸었다. 경전도 열심히 익히고 참선도 성실히 수행했다. 초등학교도 들기 전에 동자승이 되었으니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그의 총명함과 성실함을 보고 절에서 대학에 보내 주었다. 승복을 입은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은 절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옷만 먹물 옷을 입었지 생활은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졸업한 후에 그는 절로 들어가지 않은 듯하다. 이른바 땡초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자가 절집의 엄한 계율에 얽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소굴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같이 국어를 가르쳐 섭생을 도모하는 배려선생이 함께 방문하자고 했다. 만나면 피곤하게 하는 그를 만나주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의 외로움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였을 것이다. 마을에 이르러 그의 거처를 물어 찾아갔다. 듣던 대로 기둥에 일소굴((一笑窟)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었다. 몇 번 불러도 기척이 없었다. 한참 뒤에 그가 문을 밀고 불콰한 얼굴을 내밀었다. 용두질이라도 하고 난 얼굴이다.

  우리가 가지고 간 술과 안주로 마루에 주안상을 보았다.

  “뭐 했어?

  “개 코도, 누나가 추석 차례 상 보라고 장보기를 해왔어.

  “그럼 차례를 올려야지.

  “개 코도, 헛일이야. 장보기 다시 해야 돼.

  “왜?

  요즘 들어 그는 ‘개 코도’라는 발어사를 자주 사용한다. 멀리 있는 누나가 한가위에 차례 지내라고 장보기를 해서 두고 가셨다. 적음은 그걸 안주거리로 모두 없애버렸다고 했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일소굴에서 전화를 걸어도 받는 이도 없으니 포와 고기를 모두 술안주로 하고 과일은 디저트로 소비한 모양이다. 조상에게 바칠 제물을 먹어치웠으니 스스로 조상이 된 것이다.

 

  아침에 적음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 무렵 약속시간보다 미리 와서 전화질을 하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 나가니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늘 하는 버릇이다.

  “무슨 일이야?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다.

  “뭐 잘못한 거 있어?

  “에스 비 씨에서 날 찍어갔다.

  “에스 비 에스겠지?

  “개 코도, 에스 비 씬지, 뭐 죽는 줄 알았다.

  특이하게 사는 사람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사는 인간도 흔하지 않으니 텔레비전에 나올 만도 하다. 날은 추운데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해서 죽을 뻔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자기를 위로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도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가 택시비 만 원을 주고 만 원어치만 타고 가고 나머지는 걸어가라는 대사로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갔겠지만 그의 쪼작쪼작 걷는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매우 오랜만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200자 원고지에 육필로 쓴 원고를 한 보따리 가지고 와서 내게 내밀었다.

 

  “내가 책을 한 권 썼다. 발문 좀 써다오.

  일소굴에서 쓴 산문집 원고였다. 그의 글에 대해 별로 신뢰는 없었지만 나는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일단 원고를 받았다. 지금까지 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나의 맹점이기도 하다. 별로 내키지 않는 글을 읽는 것도 힘겹고 그런 글에 대한 발문을 쓰기는 더 힘겹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하는 성미로 태어났기에 첫 발문을 쓰고 말았다. 이미 한번 써준 이력이 있기에 부탁을 거절하면 그의 상처가 더 크게 마련이다. 누구는 써주고 누구는 써주지 않는 것도 공평하지 못한 처사다. 그 대신 주례사와 같이 찬양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쓰기로 했다. 쓰기는 쓰되 과장된 찬사는 하지 않는 것이 나의 발문쓰기의 기준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키지 않았지만 원고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반 흘림체의 만년필 글씨는 달필이라 할 수 있는 편안한 필체였다. 편안한 글씨체를 따라 읽으며 내 마음도 따라서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적음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선입견이 흔들리는 것을 스스로 감지했다. 내가 알아온 적음은 어린 아이의 투정과 같은 행동을 하는, 그리하여 주위 사라들을 약간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 글에는 투정은 나타나 있지 않고 아이와 같은 마음만이 녹아 있었다. 나는 그의 글과 유사한 문체로 그의 글에 대한 해설을 쓸 수 있었다. 며칠 뒤 원고와 발문을 돌려주었다. 출판을 해 주기로 한 출판사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나오면 대박이 날 것이라며 푸하핫 웃었다.

 

  그 뒤로 적음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 미리 만나자는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그리하여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매정하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런 내가 적음에게 미리 전화를 할 리가 없었다. 그를 잊고 있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적음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적음이 입적한지 몇 주기 지난 다음이다. 그의 장례도 알지 못한 채 그는 가버렸다.

 

  그의 후배 도반이 일소굴에 들려 보니 자는 듯이 누워 있더라고 했다. 검시 결과 1주일 전에 이미 죽은 걸로 밝혀졌다고 했다. 요즘의 용어로는 고독사라 하지만 난 와선해탈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적음은 고요히 누워서 열반에 든 것이다. 그의 가족들이 주검을 거두어 가서 우리 뻐꾸기들은 장례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를 그냥 모내기 아쉬워 정운의 카페에 모였다. 서울과 우리 변방의 뻐꾸기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의 영정에 술잔을 올렸다. 나는 조사를 지어 그의 천진무구했던 이승에서의 삶을 회고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가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먹고 마시고 낄낄댔다. 그의 원고는 끝내 책이 되지 못하고 어느 출판사 서랍에 ‘침묵의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