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이 보잘 것 없는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그때 땡전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모든 공중파 방송이 정권에 장악되어 검열을 받은 뒤에야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모든 라디오나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는 시각을 알리는 땡! ! ! 하는 신호음 다음에는 ‘전도깐’ 대통령은‘이라는 뉴스가 시작된다. 모든 뉴스의 첫 꼭지는 대통령의 동정을 알리는 뉴스가 차지했다. 땡 하면 전도깐이라고 이를 우리는 ’땡전 뉴스‘라 불렀다. 나는 땡전 뉴스가 시작되고 그의 까진 머리가 텔레비전에 나타날 때마다  ‘쥐뿔도 아닌 게 톡톡 튀어나오고 지랄이야.’라는 독백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지껄인 ‘쥐뿔’이란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쥐뿔이란 말에 의미를 부여하다가 시대를 풍자하는 시를 한 편 얻었다.

 

  여자와 나는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는 말끝마다, 쥐뿔도 모르면서

  쥐뿔도 아닌 게, 좋긴 뭐 쥐뿔이 좋아, 이랬다

  쥐뿔이 뭐예요?

  우리가 쥐를 잡아서 머리를 만져 봐도

  쥐뿔은 없어

  쥐뿔은 말만 있고 실체는 없어

  쥐뿔은 투명해

  쥐뿔은 빈 집이야

  쥐뿔은 빈 잔이야

  쥐뿔은 이름다워

  나는 쥐뿔을 사랑해

  여자가 말했다, 그렇담

  나도 쥐뿔이 될래요

  흑인 올훼의 주제 음악이

  우리의 이야기 사이로 지난다

  순간 여자의 표정이

  쥐불 같다는 느낌이다

  우리들의 쥐뿔론은 깊어 가는데

  어디선가 티브이 상자 속에서는

  쥐뿔도 아닌 것들이

  톡톡 튀어나온다

                              -졸시 「쥐뿔」 전문

 

  변방에서 발간되는 문예동인지에 이 시가 실렸다. 이 시를 읽은 변방의 친구들로부터 재미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이름 대신에 아예 쥐뿔이고 부르기도 했다. 쥐뿔이 나의 별명이 된 것이다. 내 친구 가운데 그림 그리는 친구는 별명이 광견(狂犬) 또는 미친개다. 미술교사 시절 성격이 괴팍하다고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한동안 말을 줄여서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개가 되고 나는 쥐가 되었다. 서로 만나면

 

  “어이, !

  “어이, !

  이게 우리들의 인사였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아예 의성어로 불렀다. 내가 멍멍! 하고 부르면 그는 찍찍! 하고 대답했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은 나를 쥐뿔 선생이라 불렀다. 나이가 더 들면서 후배들이 부르기에 민망하다며 서각(鼠角) , 또는 서각 선생이라 부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나는 스스로 민주적 인간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부르면 그걸 따르는 것이 순리라 여겼다. 본명보다 서각이 더 익숙하게 되었다.

 

  환갑이 가까워올 무렵 나도 아호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각, 발음도 좋고 또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니까 작위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서각을 나의 아호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나의 아호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옛 사람들의 이름 짓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 짓기는 대개 반어적인 경우가 많았다. 귀한 집 아이일수록 아명을 천하게 지었다. 개똥이, 돼지, 강아지 등이 그렇다. 이름을 천하게 지을수록 실제로는 건강하고 귀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담았다. 선비들의 아호도 학식이 풍부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어리석을 우(), 어리석을 치() 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다분히 옛 사람들의 호는 반어적이었다. 적어도 우리의 전통에 따르면 보잘 것 없는 호일수록 좋은 호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름도 낮게 지을수록 좋다.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의 소망을 담아 좋게 지으면 곤란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가령 건강하고 용감하게 되라고 장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자. 그 아이가 부모의 소망대로 잘 자라주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도 왜소한 아이라면 친구들이 장군아 하고 부를 때 듣는 아이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그 아이가 여아라면 부모의 뜻대로 이쁜이라고 지었다고 하자. 자랄수록 부모의 뜻을 배반하고 특이한 용모가 되었다면 친구들이 이쁜아 하고 부를 때 듣는 이쁜이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낮게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이름을 지었던 옛 사람들의 이름 짓기는 이렇게 슬기로웠다.

 

  낮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는 쥐뿔이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쥐뿔은 말만 있고 실체가 없으니 이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이름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70년대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당시로서는 화려한 문단 등단을 하였지만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도 쓰지 못하고 변방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 갔다. 작품은 비록 신통치 못할지라도 이름이락도 폼 나게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예 필명을 권서각으로 바꾸기로 했다. 사실 환갑이 되어 필명을 바꾼다는 것은 모험이다. 그러나 나는 무명에 가까웠으므로 필명을 바꾸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는 여겼다. 무명 시인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 환갑잔치를 해 드리던 생각이 났다. 시골 아버지가 사시는 집에서 아버지 환갑잔치를 했다. 소를 한 마리 잡고 돼지도 잡고 마을 농악대도 동원되는 그야말로 옛날식 잔치였다. 그때 아버지는 갓을 쓰시고 병풍을 뒤에 두르고 앉아 절을 받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때 아버지만큼 늙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갑은 환갑이었으므로 나는 스스로 환갑 행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나름대로 환갑까지 산 자신이 대견하고 내 이웃과 친구들이 고마웠다.

 

 

  무섬마을에 공간을 빌리고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지인들을 초대했다. 이날을 기념해서 나의 산문집 『그르이 우에니껴?』 출판기념회도 겸하기로 했다. 이 책의 필명을 아예 권서각으로 했다. 무대 뒤에는 ‘서각이 육갑하네’라는 펼침막을 달고 친구들이 우정으로 그림을 전시하고 음악을 연주했다. 일일이 초대하지 않고 SNS에 올리기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주어서 놀랐다. 음악하는 정운이 수고가 많았다.

 

  이로써 서각은 나의 아호이자 필명으로 공식화 된 것이다. 서각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쥐뿔도 없는 놈이다(不有鼠角漢)

  쥐뿔도 모르는 놈(未知鼠角漢)

  쥐뿔도 아닌 놈(非是鼠角)

 

  환갑 이후에 발표되는 모든 나의 글에는 권서각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르이 우에니껴?’ 권서각 지음, 이렇게 새겨진 표지를 보니 보기에도 좋았다. 이렇게 하고 나니 나는 아무런 권위도 없는 쥐뿔도 모르는 글쟁이가 되었다. 쥐뿔도 모르는 놈이 무슨 말을 하지 못하며 무슨 글은 쓰지 못하랴. <권서각의 시와 함께>라는 신문연재 코너도 쓰고 문예지에 <권서각과 함께하는 현대시 산책>이라는 꼭지도 쓰게 되었다. 환갑이 되도록 시집 두 권밖에 내지 못한 과작이었다. 나의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꾼 이후 발표에 주저함이 없어졌다. 쥐뿔도 아닌 사람이니까 두려워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었다. 나의 문학 인생에서 작품 창작은 비록 미약하나 이름만은 창대하게 지었으니 그게 어디인가.  

 

  서각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울 대기업에 다니다가 젊은 나이에 잘린 친구가 있었다. 이일 저일 하다가 모두 여의치 않아 답답할 때면 이 변방으로 내려와 나와 술자리를 자주하는 친구다. 나의 서각이라는 이름을 듣고 자기도 호가 있어야겠다며 개도 뿔이 없으니 ‘견각’이라 하면 어떻겠는고 했다. 착하기만 하고 벌이는 신통찮은 친구였다. 문득 지난 시절 감빵에 들락거리던 친구들이 즐겨 쓰던 말이 생각났다. 돈이 많은 수인을 범털, 돈이 없는 수인을 개털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자네는 돈이 없으니 개털이 잖나? 견모(犬毛)로 하게.

  친구도 매우 흡족해 했다.

 

  대학에서 한문학 교수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멀리 있어서 나와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 편이다. 이 친구에게는 혼술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도 한 번 마시면 사흘 계속 마신다. 마시고 술이 취하면 심야건 낮이건 가리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긴 통화를 한다. 전화를 하면서 나와 함께 있다고 겨기는 모양이다. 심야에 잠을 깨워 남의 잠을 설치게 하는 이 친구에게 나는 별명을 지어준 적이 있다. 벽초의 우리말의 보고라 하는 ‘임꺽정’에 나오는 ‘지랄쟁이’라는 말을 그의 별명으로 붙여주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자기 호를 구각(狗角)이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은 안내견, 반려견 등에 쓰이니 귀한 존재이니 감히 견을 쓸 수 없고 구는 황구처럼 잡아먹어도 되는 개이니 자기는 구각이 더 좋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사는 변방에 서각, 견모, 구각이 함께 모인 적이 있다. 견모와 구각은 서로 모르는 사이여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다정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후로 견모와 구각은 저희들끼리도 안부를 묻곤 한다. 나는 이 친구들을 서각 문중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고장 철탄산 아래 미타사에 경우 대사가 주지로 계신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생긴 불교대학을 1회로 졸업하신 분이다. 세수가 80보다 90에 가까운 분이지만 서각과 망년지교를 맺고 지내신다. 불경의 해박하심이 가히 대사라 부름이 옳을 것이다. 대사께서 서각의 아호를 매양 칭찬하시더니 하루는 미타사로 불렀다. 곡차를 준비하시고 조우하는 자라에서 잘 표구된 액자를 하나 주시었다. 서각이라는 이름에 대해 노래를 지으시고 표구까지 해서 하사하시는 것이었다. 그 노래에 진서로 하였으되 아래와 같았다.

 

  誰識三千尺鼠角  角長萬里衝天驚

  當前獅虎失心動  有眼石人豈玉衡

 

  쥐뿔이 삼천 자인 줄 누가 알리오

  능히 구만리 하늘을 찔러 놀라게 하네

  그 앞에 사자 호랑이도 벌벌 떨도다

  혜안이 없는 자 어찌 쥐뿔을 볼 수 있으리오

 

  남도에 사는 시인이 있다.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좋은 시를 써서 이름이 높은 시인이다. 젊은 시절 나의 당선작을 텍스트로 시작 공부를 한 일이 있다하여 후에 만났지만 나를 ‘행님’이라 부른다. 좋은 시를 많이 쓴 시인이어서 그에게 행님이라 불릴 때마다 심기가 그리 편하지 못했다. 이름을 바꾼 뒤로는 매양 만날 때마다 ‘쥐뿔 행님’이라 불렀다. 쥐뿔이라는 이름을 은근히 부러워하는 기미가 엿보였다.

  어느 가을 평사리 문학행사에 간 적이 있다. 내 곁에 슬그머니 앉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행님, 나도 호를 지었심다.

  “뭔데?

  “약동입니다.

  그는 늘 서각을 능가하는 호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같이 멸치 똥을 바르다가 문득 좋은 호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자기 호를 멸치 똥이라고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멸치 약()에 똥이라는 똥 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동() 아래 마음 심()을 한 글자가 똥 자라는 것이다.

  “그런 글자가 어디 있어?

  “두꺼운 옥편에 있습니다. 그 자 찾는데 고생했심더.

  “약똥이라, 참으로 보잘 것 없구나. 좋구나, 약똥 선생.

  몇 년이 지났다. 밤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똥이었다.

 

  “호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왜? 약똥이 싫은가?

  “이번엔 서각 행님을 능가하지 싶습니다.

  “뭐라고 지었는데?

  우리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있을까 생각하다가 조사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동물도감에 벼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벼룩의 낯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벼룩 낯짝의 크기가 0.001mm이니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벼룩 록() 얼굴 면()을 써서 록면이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졌다. 록면 선생. 그대의 호가 너무나 보잘 것 없구나.

  록면은 자신의 호에 대한 자부심을 피력했다. 염상섭의 호가 횡보라 한다. 늘 술을 마셔서 걸음이 바르지 않고 갈지() 자와 같다고 해서 횡보(橫步)라 했다고 한다. 록면은 한국문단에 3대 아호로 횡보, 서각, 록면을 꼽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난해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변방시 협의회장이라는 긴 이름의 직함을 갖게 되었다. 통일운동 차원에서 봉사하기로 했다. 통일아카데미라는 연속 강좌를 개설하고 저명한 통일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했다. 강사로 초빙한 북한학 전문가 교수 한 분과 뒤풀이 자리에서 통성명을 했다. 이 저명한 교수님은 내가 쥐뿔이라고 하자 자기도 호가 있어야겠다며 즉석에서 스스로 아호를 지었다. 자기는 소견이 좁아 밴댕이소갈딱지 같으니 줄여서 밴소라 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난 뒤 그분의 저서가 택배로 도착했다. 책에는 ‘밴소 드림’이라는 자필 서명이 되어 있었다. 생각하건대 그 책은 내가 읽은 북한 알기 책 가운데 감히 최고의 텍스트라 할 만 했다.

 

  여기까지 쓴지 며칠 지난 뒤였다. 먼 남쪽에서 록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호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시 조사해 보니 록()은 벼룩이 아니라 빈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빈대의 간을 뜻하는 록간(螰肝)으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빈대의 간을 빼먹고 사는 존재이니 록간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벼룩 조()에 얼굴 안()을 써서 조안이라 하라고 권해 보았다. 영어로는 John이니 글로벌 시대에 합당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안 할랍니다. 그냥 록간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그가 다시 호를 바꿀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오늘도 더할 나위 없이 보잘 것 없는 것을 찾아 언어의 바다를 헤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