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시

 

그녀는 지금도 국수를 밀고 있다. 간판도 변변하게 없고 유리창에 죽은 남편이 써 준 ‘칼국시’라는 비뚤한 글씨가 간판을 대신한다. 오랜 세월 밀가루 반죽을 하고 홍두깨로 밀고 칼로 썰어 칼국수를 만들다 보니 손마디는 관절염으로 아프고 뒤틀려 있지만 국수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이미 그녀의 칼국시집은 이 도시 명소가 되어 손님이 줄을 잇게 되었고 오는 손님을 문전박대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깨가 결리고 손마디가 아플 때면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가끔 지난날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녀의 고향은 남도였다. 바닷가에서 자란 소녀가 소백산 아래 작은 도시에 와서 칼숙시 장사로 생애를 장식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가끔 바닷가 마을과 그녀의 최종학력의 추억이 있는 초등학교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오빠들은 공부 잘 한다고 중학교에 보내 주었지만 그녀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늘 얼굴은 예쁜데 왜 공부는 그 모양이냐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도 그녀는 공부 못한다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에 무게를 두고 밝게 자랐다. 집에서 어머니 일을 도우며 가난하지만 착하고 곱게 자랐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갔던 오빠가 제대를 했다. 며칠 후 오빠 친구라는 사람이 오빠를 만나러 왔다. 그리 밉지 않게 생긴 왜소한 경상도 청년이었다. 오빠는 그 친구와 사귀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 시절에는 전화도 귀하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펜팔이라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오빠는 군대 생활이 외롭던 터라 주간지 펜팔 난에 난 박유숙이라는 이름을 고르고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곧 답장이 오고 둘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몇 개월 동안 미지의 남녀는 다정한 사연을 주고받았다. 제대 무렵 오빠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박유숙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것이다. 유숙은 자신을 이름 때문에 여자로 오해한 오빠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래서 제대할 때까지 편지를 계속하게 되었다고 했다. 유숙은 그렇게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한바탕 웃고 난 그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유숙 씨가 다시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 오빠는 집에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는 오지 않았다. 그가 가야겠다며 일어섰다. 대문까지 따라 나온 그녀에게 그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라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가 버스 안까지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 곁에 잠시 앉으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뭔가 자연스럽지 못함을 느꼈지만 차가 떠나기 전에 내리리라 생각하고 잠시 앉았다. 곧 버스가 시동을 걸고 문이 닫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리겠다는 나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은 완강했다. 차표도 없는데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차표 두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직행 버스였기에 버스는 서지도 않고 소백산 쪽을 향해 끝이 없을 듯 달렸다. 갑자기 사라진 딸 걱정을 하실 무모님 생각, 난생 처음 낯선 곳을 행해 가는 두려움으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차는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와서야 멈추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다시 시골 마을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농가에 도착했다. 그의 고향 집이었다.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시골 어른들의 인정에 다소 안도하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그녀는 처녀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운명이라 여길 수밖에 아무런 도리가 되었다. 그 당시는 한번 몸을 주면 이미 그의 여자가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또래 여자 아이들 사이에 빤스 한번 잘못 벗으면 신세 망친다는 말은 들어도 버스 한번 잘못 탄 것으로 운명이 결정되다니 참으로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집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고하니 그녀의 부모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소백산 아래 촌사람 박유숙의 아내가 되었다.

 

  박유숙은 다정다감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농사를 지어도 도시로 나와서 장사를 해도 되는 일이 없었다. 고추농사를 대량으로 지어 풍년이 들면 고추 값이 내리고, 수박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이 들면 수박 값이 내렸다. 농산물 유통을 하면 할 때마다 손해를 보았다. 일은 열심히 해도 느는 것은 빚뿐이었다.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는데 형편이 이러하니 난감했다. 벗 한번 잘못 탄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여겼다. 혼자 울기도 많이 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칼국시 장사였다. 마을에서 칼국시 솜씨 좋기로 이름난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솜씨로 칼국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녀의 칼국시는 소도시에서 점차 명소가 되어 갔다. 한 번 왔던 손님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집이었다. 칼국시 맛도 맛이지만 그녀의 고운 용모도 그에 못지않은 기여를 했으리라. 그러나 그녀의 칼국시가 유명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건 그녀의 심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칼국시의 모든 재료를 최상의 것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전 과정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음식의 핵심인 시간에 대한 그녀의 고집이다. 공장에서 사 오지도 않는다. 절대 국수를 미리 만들어 놓지도 않는다. 손님의 주문을 받은 다음에야 홍두깨로 밀어 생면을 바로 삶아 낸다. 그래서 그녀의 칼국시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 조리 과정과 맛이 변함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변함이 없느냐고 물으면 간단하게 대답한다.

  “머리가 돌이래서 그르이더.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니더.

  적지 않은 돈이 모이자 남편은 그걸 종자돈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곧 망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그러한 일이 되풀이 되자 그녀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는 그에게 돈을 대주지 않기로 하고 식당 일만 거들게 했다. 남편이 거들어주니 일도 수월하고 수입도 늘어났다. 그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 같아라, 하고 속으로 빌었다.

 

  그녀의 칼국시 맛을 처음 알아보아 주었고 입소문을 냈던 무명 시인이 있었다. 그는 퇴근 무렵 가끔 들려 칼국시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 반주로 마시는 것을 즐겨했다. 그날 조금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무명 시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녀는 도라지를 까고 있었다. 도라지를 까다가 눈물 어린 눈을 들어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수줍음과 반가움이 함께 어우러진 태도였다. 눈 가에는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무명시인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수줍게 꺼낸 그녀의 말을 통해 어제 있었던 일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칼국시 집에서 함께 일하며 손님들에게 친절한 그녀의 모습을 본 남편이 심술이 났던 것이다. 부부가 함께 하는 음식점에서 늘 있는 일이다. 말다툼 끝에 남편은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고 그녀는 자기보다 몸집이 크지 않은 그녀의 남편에게 곱다시 손찌검을 당했던 것이다. 허우대 멀쩡한 그녀가 왜소한 남편에게 쩔쩔매는 장면을 상상하며 무명 시인은 빙그레 번지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돌아가 ‘도라지 까며 울다’란 시를 한 수 얻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장성하고 그녀의 남편은 병사하고 그녀도 할매가 되었다.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그녀는 칼국시 장사를 놓을 수 없었다. 시대는 바뀌어 티브이에는 이른바 먹방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티브이 채널만 돌리면 먹는 방송이다. 셰프가 어떻고 레시피가 어떻고 맛집이 어떻고 온통 먹는 타령인 시대가 되었다.

 

  티브이 키메라가 전국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집 소개를 한다. 그런 방송엔 반드시 솜씨 좋은 요리사가 소개 되고 리포터는 맛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그러면 맛집 아줌마는 자기 집만의 비법이라며 감추다가 마지못해 소개하기도 한다. 그녀의 칼국시 집도 방송을 타게 되었다. 리포터가 촐싹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칼국수가 이렇게 맛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비법이 무엇인지요?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머리가 돌이래서 그르이더.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니더.

 

  아직도 무명 시인인 그 무명 시인도 티브이 방송을 보았다. 보다가 그녀의 한마디에 무릎을 쳤다. 지금까지 맛집 사람들이 레시피니 비법이니 하고 떠들던 모든 수다들을 한방에 잠재우는 멋진 대사라 여기며 빙그레 웃었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장인정신의 진수를 저렇게 표현하다니? 문득 칼국수 아닌 칼국시가 먹고 싶었다.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