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안 먹으면


   정 양


   아침저녁 한 움큼씩

   약을 먹는다 약 먹는 걸

   더러 잊는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은 벌컥 화를 내면서

   그게 목숨 걸린 일이란다

   꼬박꼬박 챙기며 깜박 잊으며

   약에 걸린 목숨이 하릴없이 늙는다

   약 먹는 일 말고도

   꾸역꾸역 마지못해 하고 사는 게

   깜박 잊고 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보다



   ***

   한 움큼씩의 약을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 약 먹는 걸 잊을까봐 봉지에 날짜를 적어놓았다. 약 먹는 걸 잊을까봐 어떤 이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사선을 긋는다고도 하는데, 약을 먹고 동그라미를 치거나 사선 긋는 걸 깜박 잊는 경우도 있어 아예 약봉지에 날짜를 적어놓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 습관이 제대로 밴 다음부터는 날짜 적는 걸 그만 두었는데 가끔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가  또  헷갈려서 쓰레기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날이 생기기도 한다.  하여튼 약 먹는 것 보다 약 먹는 걸 안 잊으려고 더 애쓰는 꼴이 되어서 가끔은 씁쓰레하다. 약이 문제인지 망각이 문제인지......

   애초에 품었던 의사에게 의지해서 목숨을 연장하며 늙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헛 것이 될 게 뻔했다. . 타고나기를 약하게 타고난 장기가 여럿인 걸 뻔히 알면서도 의사에게 의지하지 않고 곱게 늙으리라 생각하다니, 정말 택도 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늙음의 문턱도 못 넘고 고꾸라져 의사에게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진료 받고, 1년에 한 번 쯤은 검사도 받고, 약 처방 받아 매일매일 꼭꼭 먹으면서 이제는 애초의 생각은 무뎌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라졌다.

   그래도 남은 생각은 조금은 있어 꿈꾸는 것이 존엄사이다. 과도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게 하는 것이 그것. 삶이 존엄하다면 죽음도 존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