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내일


   김 혜 순


  

   전화기를 들고서 여기에 있지 않아

   이어폰을 꽂고서 여기에 있지 않아


   죽은 소녀는 장난감 전화기를 들고

   엄마 바꿔주세요 노래 불러줄게요


   밥 먹으면서 이 식탁에 있지 않아

   구더기들이 포식할 내 후손들의 복부에


   지금은 안되지만, 일요일 밤에는 괜찮아요

   일요일 밤이 오면 토요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까요


   여기에 있으면서 여기에 있지 않아

   거기에 있으면서 거기에 있지 않아


   얼굴에 문신을 새기면 어떨까요

   문신을 새기면 여기에 있을까요


   거기를 주세요

   도착 후에 도착을


   외로운 아이는 전화기도 없는 아이는

   하늘만큼 먹구름만큼 커다란 죽은 소녀의 얼굴은


   돛단배들이 옷 속을 간질일 때처럼

   마이크에 대고 사랑을 고백할 때처럼


   안개처럼 연기처럼 내일 거기를

   여기는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에요


   햇살은 강물에 떠내려가는 쓰레기더미를 간질이고

   네 몸에서 나와 도망가던 내일이 흘깃 너를 돌아보고


   거기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거기

   엄마는 돈 벌어서 내일 와요 매일 매일 내일 와요


   지하철 가득 전화기를 거울처럼 든 사람들의 얼굴은

   아침에 증발한 이슬방울들처럼 이미 거기에


   전화벨 소리 울리는 거기에

   보슬비 오는 아스팔트 바닥을 펄떡거리는 열대어처럼 혓바닥은 이미 거기에



   ***

  김혜순 시인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에 실린 아홉번째 시다. (억울한) 죽음의 이야기만으로 가득 채워진,  말하는 죽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죽음이 쓰는 자서전.   '매일 매일 오늘' '여기에' 머무르면서 '매일 매일 내일' '거기에'만 바라보며 공중부양하는 삶의 끝은 죽음이겠다. 끝만 죽음이 아니라 시작도 죽음이겠다. '매일 매일 죽음' 이겠다. 결코 삶은 오지 않겠다. 오는 '매일 매일 내일'은 결국 '매일 매일 오늘'이라는 것 알면서도 말하는 입술도 죽음이겠다. 목소리도 죽음이겠다. 기다리는 눈동자도 죽음이겠다. 모두 죽음이겠다. 이런 '매일 매일'은 처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