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일


   박성우



   한때 나는,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버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

   '밤새 편지와 씨름하다가 / 퀭한 눈으로 이 아침 다리 끌며 / 밖으로 나서면 / 오늘도 나는 / 편지가 되어 / 당신 앞에 서 있고 / 어김없이 당신은 나를 배달하시려고 / 기다리고 계십니다 / 언제나 고마운 우편배달부마냥' - 졸시 '편지2 - 우편배달부이신 당신'

   20대 후반에 여의도우체국 우편발착부서에서 24시간 교대근무를 할 때 쓴 시입니다. 현실의 우체국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 그리 낭만적인 공간은 아닙니다. 저 역시 우체국에 입사해서 근무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낭만적인 부분은 꽤나 남아 있어서 이런 낭만을 보탠 시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우체국장 시인, 시인 우체국장. 2000년도에 등단을 하고, 2001년도에 처음 우체국장으로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포항에서 열린 영호남작가대회에 참석했더랬는데 이렇게 제 소개가 되었습니다. 우체국장이라는 직함이 시인들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그 때 알았습니다. 반응은 뜨거웠고, 내 젊은 시절 엄청 좋아했던 민 영 시인님은 젊을 때 꿈이 우체국장이었다면서 다가와 포옹까지 하셨습니다. 이 후에도 이런저런 자리에서 우체국장 시인으로 소개를 받고는 했고, 이게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저 자신도 제 소개를 이렇게 합니다. 중간에 잠깐씩 총괄우체국의 실,계장을 맡아 근무하기는 했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이 곳 저 곳을 옮겨 거의 쭉 우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계속 우체국장 시인입니다.  

   하지만 2003년에 첫 시집을 낸 이후로 저는 우체국에 관한 시를 더 이상 쓰지는 않습니다. 낭만적인 공간으로서의 우체국은 저 아닌 많은 다른 우체국 시인들이 쓰고 있거나 쓸 것이고, 또한 많은 시인들도 쓰고 있으니, 저는 여느 회사와 다르지 않는 기업 공간으로서의 우체국의 현실에 관한 시를 쓰자 하고 몇 편을 쓰서 첫 시집에 수록한 이후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반응이 별로였던 점도 있었지만 우체국을 시인의 공간으로 남아 있게 두자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우체국을 현실의 공간이 아닌 몽상의 공간으로 남겨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체국(우체국장)과 관련된 시를 보면 반갑습니다. 이 반가움은 무조건에 가깝습니다. 그 시적 공간이 현실의 공간이든 몽상의 공간이든 관계없이 다 반갑습니다. 별정우체국은 사설우체국입니다. 하지만 사기업체는 아닙니다. 별정국장의 땅과 건물을 무상임차하여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우체국이니 성격은 공기업입니다. 별정우체국(별정우체국장)을 소재로 쓴  시편들 중에는 유명세를 탄 시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는 별정우체국장은 아닙니다. 공무원입니다. 시인의 별정우체국에 대한 꿈은 몽상에 가깝습니다. 아니 단정적으로 몽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꿈으로 이루려고 하지 않고 몽상의 세계에 두고 끝낸 것이 시인으로서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런 꿈을 몽상이 아닌 현실의 꿈으로 꿔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몽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자주 일어나는 시대이니 역행처럼 보이는 이런 현실을 몽상에서 현실로 다시 불러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