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 그 신은 너에게 침묵으로 답하리라, 릴케

 

   박양균(1924~1990)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망한 이 황무한 전장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 송이 뉘의 위촉으로 피어났기에 상냥함을 발돋움하여 하늘과 맞섬이뇨.

 

   그 무지한 포성과 폭음과 고함과 마지막 살육의 피에 젖어 그렇게 육중한 지축이 흔들리었거늘 너는 오히려 정밀 속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랐기에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푸르른 천심에의 길 위에서 한 점 웃음으로 지우려는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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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1952년에 발간된 박양균 시인의 첫 시집 <두고 온 지표>에 수록된 시입니다.  시를 반복해서 읽는데 문득 촛불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시'라고 분류되어질 50년대의 시를 읽으면서 자꾸만 지금 전국에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이 떠오른 것은 이 시에서 깊은 슬픔과 함께 어떤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