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화상

 

   안상학

 

 

   혹한의 집에 들어 전기난로를 쬔다

   간밤 내 정강이를 지진 주범에게 손을 내밀다니

   그래, 사실, 너는 잘못이 없다

   따뜻함에 취해 술에 취해 잠에 취해

   너무 오래 너를 가까이한 내 죄를 손 비빈다

 

   네 덕분에 외과 의사에게서 한 수 배웠다

   화상이란 치료하기에 따라서

   잘하면 있던 병도 고칠 수 있고

   잘못하면 없던 병도 얻을 수 있다 했다

   따뜻한 것에게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의 손을 보면서

   나는 마음의 상처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따뜻한 너를 너무 오래 가까이해서

   천천히 익어버린 정강이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나는 내 마음에도 무엇을 오래 가까이해서 생긴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을 알았다

   잘 아물어서 더 빛나는 것들과

   덧나서 오래 진물이 흐르는 것들의 잔해

 

   전기난로를 적당히 다가 끼고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히 언 손을 내밀며 생각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내가 잘못했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다 늦은 마음의 상처들을 불러내고

   따뜻하기만 했던 상처의 주인들도 모셔다가

   중재를 시켜주고도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기난로를 아주 가까이는 마주하지 않으면서

   뜨뜻미지근하게 쳐다보기만은 하면서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하면서 손을 쬔다

 

 

   ***

   상처는 어디에서나 온다. 안에서도 오고 밖에서도 온다. 위에서도 오고 아래에서도 온다. 멀리하는 이에게서도 오고 친한 이에게서도 온다. 천천히 오기도 하고 순식간에 오기도 한다. 책에서도 오고 신문에서도 온다. 소리에서도 오고 소음에서도 온다.

   상처가 무서워서, 상처를 입을까 무서워서, 어떤 신문은 멀리한다. 어떤 텔레비전 채널은 멀리한다. 어떤 책은 멀리한다. 어떤 사람은 멀리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의 무리는 멀리한다. 피할 수 있다면 당연히 피하고, 피할 수 없을 때는 될수록 모른 체 한다. 오래 대해도 또 오래 모른 체 하면 대부분의 경우 신기하게도 모르는 것이 되기도 한다.

   멀리 하고 피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주로 내 약한 심장을 이유로 대지만 이것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중도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알았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이고 피하는 것이다. 이건 변명일 수 있지만 삶의 진리다. 살기 위한 진리다.

   어떤 이는 상처를 덧내지 않고 아물린다. 애초에 상처를 안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주 보니 세상에 상처를 안 받는 이는 없다. 하니 사람에 따라 상처를 덧내지 않고 잘 아물리는 사람이 있고, 상처 아물리기를 잘 못해서 결국 덧나게 만들어 병으로 키우는 이도 있다.  덧나게 만든다?  만드는 주체에 대해서는 곰곰 더 생각해봐야겠다. 키우는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상처를 입힌 자인지, 입은 자인지.

   스스로 상처 입지 않도록 늘 잘 다스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날아오는 공 받아 툭 쳐올리듯이 쳐올리고 말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떤 상처는 가능했다.  그래도 입은 상처라면 언제 한 번 상처의 주인들을 모셔다가 중재를 시키면 덧나고 있던 상처 쯤이야 충분하게 금방 아물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한 방에 무너졌다. 피할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멀리하고 어쩌고 가늠할 시간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상처가 있었다. 손 한 번 잡고 툭 툭 털면 아물리는 상처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왔지만 와서는 쉬 가지 않는 상처였다. 이런 상처는 파고 도려내어 다시는 덧나지 않도록 꼭꼭 메워야 한다. 더 꼭꼭 잘 메웠다고 두 번 세 번 생각하도록 메워야 한다.

  그래도 이런 상처는 결코 다 아물릴 수 없다. 결코 다 아물릴 수 없기에 더 조심스럽게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다 아물릴 수는 없어도 더 덧나게는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광장에 모인 자들은 모두 상처 입은 자들이다. 지금 광장에 모인 이들에게 함께 눈길을 주고 있는 자들도 모두 상처 입은 자들이다.  따뜻함이든 술이든 잠이든 모두 무엇엔가 취해 있다가 문득 상처 입었음을 깨달은 자들이다. 잘하면 있던 병을 고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없던 병까지 더해 더 덧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들이다. 상처는 우리의 상처다. 우리 모두의 상처다. 우리는 모두 이 상처를 아물려야 한다.

   함께.

   손을 합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