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

 

   양 진 기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허연 머리의 그가

   절뚝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에 승차하셨다

   낮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좌중을 훑어보며 씨팔, 씨팔

   주먹으로 출입문 창을 탕탕 쳤다

   손을 권총 모양으로 접고서

   앉아있는 가슴들을 겨냥해 또 다시 탕탕

   이새낀지 이석긴지

   빨갱이들 쓸어버려야 한다고

   허공을 향해 주먹질 몇 번

   발길질 하다가 제풀에 나동그라진다

   통로에 세워진 그의 자전거 라디오에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왕왕거리고

   핸들에 꽂힌 태극기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한다

   벌떡 일어난 그는

   정물처럼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호통을 친다

   젊은 것들 정신 차려 대한민국 만세야

   그는 때가 낀 손톱으로 겨드랑이를 벅벅 긁으며

   한 끼 무료급식소가 있는

   청량리역에서 내리셨다

   그가 내리자

   바닥에 깔렸던 눈길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

      2015년 7월 11일 한겨레신문 토요판

      생명, 태산이 복순이 바다 돌아간 날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않고

      돌고래는 떠났다."

 

      시대상황이 반영된 감동이겠지만

      이 문장은 멋지다.

 

      과속과 역주행에 슬그머니 발을 거는

      아름다운 정주행이다.

 

      국기를 걷는 아침

 

      - 졸시 '국기를 걷는 아침' 전문

 

   오랫만에 국경일에 국기를 내걸었다. 국경일만 되면 애국심 고취 운운하면서 국기 게양을 종용하는 아파트 구내 방송이 몇 일에 걸쳐 여러 번 나왔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번번이 국기 걸기를 포기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우리집만의 일이 아니다. 거의 전 아파트가 어느 날 부터인가 갑자기 국경일에 국기를 내다걸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국경일에 아파트 베란다에 내걸린 국기 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위의 시가  쓰여진 것이 2015년 10월이고, 위의 시가 쓰여진 신문기사가 실린 것이 시에 나온대로 2015년 7월이니, 국경일에 우리 아파트 각 가정에서 국기를 내걸지 않게 된 것은 훨씬 그 전으로,  추측하건대 아마 국경일에 도로가는 물론이고 아파트 내의 구내 도로까지 국기로 뒤덮이게 된 이후부터가 아닐까 싶다. 도로가야 국경일에 경축의 의미로 국기를 내거는 것이야 오래된 것이어서 조금 더 강화되긴 했어도 그러려니 했지만, 아파트 구내 도로까지 온통 국기로 뒤덮는 것에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뜩잖았으리라. 하니 어느 날인가부터 약속이나 한 듯 베란다에서 국기가 한꺼번에 사라졌겠지. 이번 긴 연휴 시작 전에도 역시 언제나처럼 국기 게양을 종용하는 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멘트는 역시 언제나와 다름없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오랫만에 국기를 내다걸기로 했다. 국기를 걸려고 꽂아놓은 함에서 꺼내니 먼지가 풀쩍 일었다. 세상에 내걸지는 않았어도 가끔 먼지는 털어줄 걸. 내걸고 난 뒤 혹시나 싶어 내다보았더니 아파트 구내 도로에 걸린 국기는 반으로 줄었지만 몇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국기를 내다건 집은 거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애국심이 어디 인위적으로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든가. 국기를 걸어야 할 아침에 되려 국기를 걷는 아침이라는 시를 쓰고 2년만에 나는 국경일에 홀가분하게 정부에서 종용하는대로 국기를 내걸고 열흘 동안 두었다가 내렸다. 오늘이 한글날로 그 열흘의 마지막 날이다. (2017. 10.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