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죽음의 날개만큼은 아니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들에게 날개는 주어져야 한다. 최근 모 후보의 유세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이 참담하다. 충돌, 테러, 피습, 폭행 등의 막말이 과연 이 사건을 전하는 온전한 표현인지 의심스럽고 또 의심스럽다.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라는 문장에서 또 목이 멘다. 처음 이 시를 알게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늘 울컥, 한다. 이 울컥은 자연스럽다. 당연한 반응이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