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
배창환
분명 산짐승이었다
이른 새벽 포도(鋪道)에 종잇장처럼 납작 얼어붙은 몸뚱이에서, 헤드라이트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게 보였다. 눈알이었다. 아니, 간밤에 내린 서리가 둥글게 뭉쳐진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별뫼산 내려오는 밤길에 반짝이는 물체를 보았다
그것이 산토끼였는지, 오소리였는지, 청설모였는지 알 수 없지만
작은 구슬 눈으로 헤드라이트 불빛 빤히 쳐다보다가, 내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차바퀴가 둥근 몸뚱이에 닿을 만큼 가까워져서야 어슬렁어슬렁 길가 작은 가시덤불 어둠으로 사라졌었다
그가 내게서 보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둠이 그의 집이었다
지금 누룽지처럼 언 땅바닥에 눌어붙어 반짝이는 저것은, 어쩌면 그가 덮고 다니던 빛나는 털이었는지, 털을 받쳐 주던 살이었는지, 살이 뭉개고 다니던 붉은 흙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렇게 큰 길에 대자(大字)로 누워서
알몸 부드럽게 감싸던 어둠 한 겹씩 벗어 놓고 돌아가는
그런 제 모습 끝내 응시하려고
잘 닦은 눈알 하나쯤, 허리춤 깊숙이 감춰두었는지도 모른다
***
'끝내 응시'하는 눈알을 생각한 적이 있다. 본 적이 있다. 생각한 적이 있는 생각 속의 눈알은 생각만으로도 여전 섬찟한 풍경으로 남아 있는데, 본 적이 있는 눈알은 생각보다는 부드러웠다. 우수에 차 있었다고 해야 하려나,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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