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토끼 일곱마리는


   고영민



   청보리밭을 보면

   나는 왜 흰 토끼 일곱마리가 떠오를까


   우리 밭의 보리싹을

   누가 뭉텅뭉텅 낫으로 베어가고


   아버지가 그 집을 찾아가

   어린 토끼를 한마리씩 우리에서 꺼내

   귀때기를 잡고

   마당 한가운데 힘껏

   내동댕이치는데


   토끼가 먹었으니 토끼를 죽여야지!


   어린 토끼는 땅을 맞고

   바르르 떨다가 죽고

   죽고

   죽고

   또 죽고


   어스름 녘 일곱마리 토끼가 죽어 있는

   그 집 마당

   그 집 식구들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끌며 큰 소리로

   집에 가자!

   토끼가 먹었으니 토끼를 죽인겨!


   싹둑 베어진 청보리밭을 지날 때쯤

   뒤돌아보았던

   그 집 마당의 작고 어린

   흰 토끼 일곱마리는



   ***

   잔혹동화다. 원칙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 힘을 동반한 권위는 폭력에 불과하다. 흔하디 흔한 막장드라마다. 읽고 난 뒤 한참 동안 내 속에서 치미는 이것은 고운 말은 아닐 것이나, 바른 말이기는 할 것이다. 곱다고 어디 다 바르더냐. 가장된 폭력이 주장하는 원칙은 빌미에 불과하다. 시에서 표현되는 그로테스크는 과거의 행위에 불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보다 더한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끔찍하게도 선명하게 마주 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