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에게 몸살을 옮다


   박승민



   메밀밭이 있던 눈밭에서 고라니가 운다.

   희미한 비음이 눈보라에 밤새도록 쓸려 온다.


   나는 자는 척 베개에 목을 괴고 누웠지만

   다시 몸을 뒤척여 민물새우처럼 등을 구부려 돌아누워 보지만

   눈바람에 실려오는 울음소리가 달팽이관을 자꾸 건드린다.

   바람소리와 울음소리가 비벼진 두 소리를 떼어내 보느라 눈알을 말똥거린다.


   눈밭에 묻힌 발이 내게 건너오는지 흘러내리는 찬 콧물이 옮겨오는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코가 맹맹하고 팔다리가 자꾸 쑤신다.


   어떤 생각만으로도 몸살은 오는지

   몸살은 몸속의 한기를 내보내서 몸을 살리라는 뜻인데

   나도 모르는 어떤 응달이 아직 살고 있는지 귀를 쫑긋한다.


   아내에게는 고라니에게 몸살을 옮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혼자 약 지으러 간다.



   ***

   한 해에 한 번은 오지게 몸살을 앓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몸살기야 한 해에 여러 번 알게도 모르게도 왔다 가지만, 몸과 마음이 다 지쳐 떨어질 정도의 심한 몸살은 기억으로는 한 해에 딱 한 번 옵니다. 제 이런 몸살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쯤에 주로 옵니다. 해서 언제 오든 그 철이 겨울에서 봄 사이에 있으면 아 올해는 봄이 빨리 오나 보다, 어머나 올해는 봄이 늦네 하고 단정을 짓고는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봄이 왔다고 하기도 하고 봄이 아직 안 왔다고 하기도 합니다. 봄이 오는 것은 제 몸살이 오고 안 오고에 딸려있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 '어떤 생각만으로도  몸살은' 옵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응달이'  내 몸과 마음의 어딘가에 여전 '살고 있는지' '생각만으로도' 어느날 갑자기 온 몸과 마음에 찬 기운이 돌고,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큰 아픔과 슬픔이 오고, 마침내 그리움, 어떤 알 수 없는 그리움까지 찾아오면 제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는 낭떠러지로 밀려가 추락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씻은 듯 말끔하게 일어서서 돌아옵니다. 돌아오면 늘 창 밖에 봄이 와 있습니다. 올해는 아직 몸살을 안 앓았는데 밖은 벌써 봄이니 올봄에는 이런 몸살 없이 봄을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 시의 화자도 심한 그리움을 앓고 있나 봅니다. 화자의 그리움은 이 겨울 지금은 '눈밭'이 된 '메밀밭' 자리에도 있나 봅니다. '고라니' 핑계를 대며 훌쩍거리고 있는 이제는 중년을 넘긴 어떤 사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코가 막혔으니 그 그리움은 이미 도를 넘고 있겠습니다. 대체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애써 추궁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누가 제게 수십 년 간 안고 오는 제 오진 그 그리움이 무언지 묻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철은 넘어서 봄은 여전히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