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과의 입맞춤


   김형술



   거래는 끝났다.


   목에 걸린 얼굴을 풀어 서류가방 속에 숨긴다

   카메라, 꽃다발, 목걸이, 선글라스

   목에 걸어 마땅한 것들을 찾아

   호주머니를 헤집는 손은 온통 피투성이

   날카롭게 금이 간

   거울로 뒤덮인 세상에 갇힌다


   사람들

   붉은 혀를 가진 거울들

   열세 개의 눈을 가진 벽 앞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얼굴을 본다

   나,

   사분오열하는 불편한 물체


   모든 거래는 제 얼굴을 거는 것

   아니 얼굴 없는 몸, 가슴 없는 손의

   뒷거래로 얼굴을 숨기는 일


   뜨겁고 탐욕스런 손발

   노래를 잃은 산문의 입술

   영혼을 잘라버리는 위험한 흉기로

   거래는 언제나 시작되고


   날마다 새로운 얼굴을 목에 걸어야 하는

   얼굴 없는 목숨

   처음부터 얼굴이 없었던 종족인

   수천 번 수만 번 허기진 내 그리움은


   주검과의 조우

   딱딱하게 굳어 악취마저 풍기지 않는

   가면과의 차가운 입맞춤


   신분증, 안경, USB, 넥타이

   거래는 끝나지 않는다

   내 얼굴은 늘 가슴께에 매달려 있다



   ***

   시를 읽는 행위는 만남의 행위입니다. 가끔 잊고는 하지만 어떤 상황 앞에서 종종 잊었던 이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합니다. 이 시는 상주에서 포항 오는 버스 안에서 만났습니다. 상주에서 오늘까지 열고 있는 이 문학웹진의 고창근 편집인의 전시장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전날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열고 있는 제 고향친구의 전시장에 들렀었지요. 제 친구의 전시 주제는 '색으로 떠나는 여행', 고창근 작가의 전시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로 대상과 주제 모두 달랐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본 것은 온통 뭉갠 풍경이었고, 상주에서 본 건 온통 뭉갠 얼굴이었으니, '뭉갬'이라는 표현 방법으로 보면 공통적인 것도 있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뭉갰다고 해서 대상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친구의 그림 속에서는 애초에 보여주고자 했던 풍경이, 고창근 작가의 그림 속에서는 역시 보여주고자 했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야경을 그린 친구의 그림 속에서는 친구의 고향 산과 바다, 친구가 잠시 머물렀던 외국의 어느 도시, 아마 스케치 여행을 떠나서 만났지 싶은 항구의 풍경들이 희미한 빛과 어둠 속에서 보였습니다. 고창근 작가가 선택한 거울캔버스(미러지, 거울)는 그림 속의 얼굴과 보는 이의 얼굴을 겹쳐서 보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보여준 표정들이 너무 많고 강해서 미처 내 얼굴을 같이 담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친구의 기억 속의 풍경은 내 기억과 많이 겹쳐 있었으나, 고창근 작가가 그린 얼굴 표정은 내 얼굴 표정과는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집을 펼쳤는데 이 시를 만났습니다. '가면과의 입맞춤'  아, 했습니다. 전시장에서 보았던 그 많은 표정과 표정의 얼굴들을 내가 미처 못 느끼고 지나갔을 뿐이지 내게도 저렇게 많은 표정과 표정의 얼굴들이 있거나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습니다. 숨긴 얼굴들과 숨겨야 했던 얼굴들. 잊은 얼굴들과 잊어야 했던 얼굴들. 그리고, 또 그리고 ......  나 역시 '얼굴'에 대한 시를 썼던 적이 있었구나 했습니다. 아래는 제가 쓴 얼굴에 대한 시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미 내 얼굴 잊은 지 오래 그대는 그대 얼굴 잊지 않았는가 숲의 얼굴 보리라 물 되어 강 아래로 흐르기도 하고 구름 되어 비로 내리기도 하고 돌 되어 이리저리 구르기도 하고 새 되어 나무와 나무 건너뛰며 노래 부르기도 해 돌아서면 밤새 내 목덜미 훔치던 숲의 부드럽고 거친 숨소리 연신 내 허리 휘감던 숲의 손길 단내 풍기며 누르던 알싸한 숲의 입술에 취해 온 몸으로 피워 올렸던 내 꽃밭의 꽃잎 수도 없이 뚝 뚝 떨어뜨리며 아아 드디어 보겠네 고개 들면 숲은 그저 얼굴 없는 짐승일 뿐 애초부터 숲은 얼굴 없는 짐승이었던가 하여 다시 나는 찾으리라 하지만 찾을 수 없어 혹여 잠 속에서 찾을까 깊은 잠에 들지만 잠 속에서도 보이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면 비에 씻긴 햇살에 찰랑대는 잎새처럼 늘 말갛게 방긋거리며 거리로 나서지만 나는 이미 내 얼굴 잊은 지 오래 거리로 함께 나선 그대는 아직 기억하시는가 혹여 그대는 잠 속에서나마 그대 얼굴 보시는가 - 졸시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