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 이전에 겨울이 있었다

 

   황 인 찬

 

 

   차에서 눈을 뜨면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창을 닦으면 살짝 보이고 깜빡 잠들었구나 밖은 국경 너머 눈의 고장인 듯 아닌 듯 무인지경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저 새하얀 눈은 언제 다 내렸을까 겨울도 아닌데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원래 없었지 또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창을 닦으면 또 살짝 보이고 눈은 오지 않는다 지금은 겨울이 아니니까 이제 겨울은 없으니까 예전에는 겨울이 있었다 국경도 있었다 안도 있고 밖도 있고 뛰어노는 애들도 있고 좋았다 그때는 눈도 터널도 나라도 다 있었으니까 그런 겨울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 새하얀 것들은 무엇일까 저걸 뭐라고 부르나 나는 대체 무엇으로 창을 닦은 걸까 또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모두 하얗다 보이지 않는다 눈은 내리지 않는 것이다 겨울은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인 것이다 그렇다면 저 새하얀 것들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누군가가 창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써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출근길, 터널을 벗어나면 요즘은 늘 만나는 것이 먼지눈입니다. 먼 곳에서 먼지눈이 내립니다. 하얗게 내리는 것이 눈 같아서 처음엔 이 봄에 웬 눈, 그러다가 그걸 먼지눈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번번이 또 깜빡 잊고 눈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비가 온 뒤 만나는 아침길은 청명한 느낌이어서 시야가 쨍 하고 맑아 보였었는데, 요즘엔 비가 온 뒤 만나는 아침길도 뿌옇게 시야가 흐립니다.

   일단 시인의 손을 떠난 시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 다시 느낍니다. 시인이 무엇을 상상했든 독자인 제 상상과는 무관합니다. 어쩌다가 같을 때도 있기야 하겠지만요. 이런 식입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수업을 하러 왔다 애들이 아직 오지 않아 큰 일이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아무도 하지 않는 대답이 있다 아무도 앉지 않는 책걸상도 있다' '나는 출석부를 읽는다 / 하얗게 비어 있는 출석부다'(이상 황인찬의 시 '역사 수업' 일부) 시인이 이런 상상을 했든 안 했든 나는 이 시에서 '안산'과 '단원고'와 '2학년생들'을 떠올립니다. 아직 세월호는 추억의 장으로 넘길 수 없는 기억이고 현재라서 어떤 비슷한 이미지만 나와도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하니 시의 주인은 결국 독자가 되는 셈입니다.

   재난시대여서인가요. 시인이 그려내는 정황만으로 나는 또 다른 재난상황을 떠올립니다. 핵폭발 이후의 지구. 먼지, 먼지눈, 재. 내리고 날리고 쌓이고.  핵폭발을 상상하는 것, 핵폭발 이후의 지구를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상상이 아닙니다. 이미 재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한 방편을 상상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