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사인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

   아마 그랬을 겁니다.  이왕 누운 것 좀 더 누워 있으려다가도, '새끼들 밥 해멕여 / 학교 보내야지' '일어나거라' 하는 외침에 평생 '꽃'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하게 불린 적도 없으면서, 제 잘 난 맛에, 제 잘 난 의무감에, 완벽한 딸, 완벽한 아내, 완벽한 며느리, 완벽한 어머니의 짐을 짐 아닌 '꽃'으로 생각하면서, 안 보는 곳에서 아이고 내 팔자야 투덜거리면서 일어나 '새끼들 밥 해멕여' 보낼라고 미처 다 추스리지도 못한 아픈 몸 끌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그렇게 살아서 가슴에 숱한 멍 들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에 진 멍울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말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보일 수 없었을 겁니다. 차마 보일 수 없었을 겁니다. 멍울 보여서 가슴 아파 할 어머니, 아버지,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그리고 동기(同氣)들, 눈에 밟히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였을 겁니다. 가슴에 진 멍울 누군가에게 넘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겁니다. 혼자 오롯이 지고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갔을 겁니다. 이리하여 가고 난 뒤에야 뒤늦게 우리는 부음을 듣습니다.

   아내의 친동기는 아니지만 아내가 친동기처럼 가깝게 지내던 동기의 부음을 듣고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부음을 듣고 긴가민가 하다가 사실을 확인한 뒤에 갑작스레 울다가 소리치다가 혼잣소리하다가 또 울면서 넋을 놓는 아내를 보아서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미련은 안 남기게 해야지 하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만 하는 애매한 상황에 있는 아내를 구슬려 하룻밤을 다른 동기들과 함께 지내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배웅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아내는 먹는둥마는둥 허겁지겁 과일을 잘라 몇 조각 먹더니  저녁도 거르고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습니다. 나도 밀린 신문을 읽고 티브이를 보는둥마는둥 멍하니 앉았다가 평소보다 많이 이른 시간에 잤습니다.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아내의 곁을 지키기는 했지만 나 역시 심사가 복잡했지요. 그리고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한밤중입니다. 한 세 시간여이긴 해도 자고 나니 그런대로 정신이 이제 온전히 현실로 돌아온 듯하여 시집을 펼쳤다가 이 시를 만났습니다. 김사인의 '꽃'.

   평소 같았으면 '그저 예찬'했을 '명시'로 읽었을 시였지만, 복잡한 심사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여서인지 슬그머니 부아가 일었습니다.  부아가 일어 '모진 비바람에 /   마침내 꽃이 누웠다  //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 들창을 미느니  // 살아야지 // 일어나거라, 꽃아 / 새끼들 밥 해멕여 /  학교 보내야지' 하는 마음 이제 다 놓고 가거라, 꽃아, 이제 가거라, 꽃아 하면서 첫 연을 마지막 연 뒤에 덧붙여 한 번 더  '모진 비바람에 / 마침내 꽃이 누웠다' 하고 읽고, 그래 이제 가거라, 꽃아, 잘 가거라, 꽃아, 고생했다, 꽃아, 한 번 더, 쓰기에 '꽃'이지 '꽃'이 아닌 아내의 동기의 '본 이름'을 부르며,  '꽃' 대접도 않으면서 '꽃'으로 부르는 이들을 향한 부아는 놓아 두고, 보내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런 부아는 시인의 다른 시 '경주 이씨 효열비' '화진'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봄바다' 등에서도 일었던 부아와 거의 같은 부아입니다. '낭만'이 '폭력'이 되기도 하는 지경. 

   안방에서 마른 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내도 벌써 깨어나 일어나지만 않은 채 다시 잠 못들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