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뜨겁다


   채호기



   하늘의 별은 뜨겁다. 밤은 차갑다. 벌거벗은 네 등은 차갑다. 내 손은 뜨겁다. 비가 오고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수증기. 내 손가락들이 수증기에 갇힌다. 물렁물렁해진 진흙에 발이 빠지듯 네 등을 산책하는 손가락들이 빠져든다. 네 등에 손톱 끝으로 고랑을 내며 글씨를 쓴다. 씨앗을 뿌린다.


   흙이 글자를 끌어당긴다. 네 등에 묻힌 글자에서 싹이 돋고, 들꽃들이 피어났다. 밤은 뜨겁다. 꽃은 뜨겁다. 꽃의 향기는 시가 되어 손가락 끝에 만져진다. 네 등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영원히 새겨졌다. 별은 뜨겁다. 손가락도 뜨겁다.



   ***

   한 해가 몇 일 남지 않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고 연말이면 늘 회고하지만, 올해야말로 돌이켜보니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 중 어떤 다사다난은 여전히 계속되어 새해까지 쭉 이어질 모양이지만, 이쯤에서 올해의 다사다난은 마무리를 합시다. 오늘의 해는 어제의 해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이니까요.

   새해에는 뜨거운 별의 기운을 받아 뜨거워진 손으로 차가운 밤과 네 등을 뜨겁게 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새해 인사를 드리니 뜨거운 들꽃들이 벌써 피는 것 같습니다. 건강, 건필, 다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