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흔(躊躇痕) /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을 뒤집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 보단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인은 울음소리의 기원을 추적한다. 수백 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시인은 추적의 결과를 타이핑한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울음소리와 바람소리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고, 그 위에 주저흔 (Hesitation makks, 자살하기 직전 머뭇거린 흔적)"의 이미지가 다시 포개진다.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순 없어도 이해가 되지 않은 건 아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지만 결국 시인이 귀속되는 건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어미다. 문법을 어기고 맞춤법을 무시하는 시적 전략이 드러나지만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삶을 향한 어떠한 절실함이다. 깊은 사색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와 같은 표현은 입안을 달콤하게 감돈다.('중앙일보')에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이 죽으려 한 적이 있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그를 바람으로 떠돌게 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는 차라리 죽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김삿갓처럼...             

                               --김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