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마담 / 송진권


703번 버스 종점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키 큰 사루비아꽃 있지요

이파리는 조금 말라 시들었지만

고운 태가 아직은 남은

붉은 입술 붉은 매니큐어가 안쓰러운

햇빛을 못 받아 키만 크고 마른

사루비아 마담 있지요

홀엔 퀴퀴한 곰팡내

한물 간 뽕짝 질펀한 홀엔

한 두엇 늙은네들 쌍화차를 마시고

마담은 늙은이 옆에 앉아

매니큐어를 지우지요

커피나 얻어 마시며

나를 읽어보시라고

늙은네들에게 손금이나 보이지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세상풍진 다 알아버린

이미 늙어버린 여자

세상에 사내에게

단물 쓴물 다 빨리고

몸에 병도 깊어

더 갈 곳 없어 밀려온 변두리 다방

얼굴마담

몸 주고 정준 것들은 왜 하나 같이

죽거나 통장 들고 전세금 빼내 도망을 갔는지

스물 안팎에 낳은 아이는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고

필터에 묻은 웃음을 눌러 끄며

늙은네들 얘기나 들어주는

사루비아 사루비아꽃

헤픈 웃음이

계단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지요



세상풍진 다 알아 이미 늙어버린 젊은 여자

부초처럼 떠돌다 변두리 다방에서 얼굴마담을 합니다


그녀를 만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인 동네 할아버지들은

그녀를 그냥 가련한 누이동생으로 생각하고 커피를 사주고

손금도 봐 주고, 그녀도 그들을 그냥 고향의 오라버니들로 생각하겠지요


그 변두리 다방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붉게 타오를 때까지 그녀의 안식처가 되기를...-김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