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 遷

 

-박경리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낯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박경리 시집『자유』(솔출판사,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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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토지』전16권이 완간되면서 이를 기념하여 그동안 작가가 틈틈이 써온 시들을 묶어 한 권의 시집을 묶어내게 된다.『자유』(솔출판사,1994)라는 시집이 그것이다. 시집『자유』는 작가가 이미 상재한 바 있는 두 권의 시집『못 떠나는 배』와『도시의 고양이들』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소설가에게 있어 산문이 아닌 운문은 작가의 가장 진솔한 내면의 웅얼거림과도 같은 것이다. 시의 내용은 작가의 삶에서 직접 발원되는 서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작가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머금고 있는 문학의 갈래다. 박경리의 시집『자유』의 맨 앞장에 게재되어 있는 이 시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의 이야기와 연관된 것이다.『史記』'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의하면 전쟁에 패한 그의 친구 이릉(李陵)의 참형에 반대하는 주장을 내세우다 한나라 무제에게 거세형(去勢刑)인 궁형(宮刑)을 당하고서 남은 일생을 모두 바쳐서『사기』를 기술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는 실제로 사마 천의 자서전이며 동시에『史記』 해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경리의 시「司馬 遷」을 사마천의 그 기막힌 삶과 그의 저술 활동에 시인이 보내는 안타까움만으로 읽는다는 것은 온전한 시 해독이 될 수 없다. 시의 전면에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숨어있는 시적 화자는 분명 박경리 시인 자신으로 볼 수 있다. 시의 화자는 엄청난 시공간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껏 자신이 살아 온 일생과 거의 흡사한 삶을 살다간 사마 천의 기막힌 삶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살짝 올려놓는다. 시인이 내뱉는 숨결의 속살, 혹은 표현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는 시인 자신이 지금껏 엄청나게 겪어온 고통스런 삶의 일생 이야기이다. 그러니 이 시는 바로 사랑의 기억도 없이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으며,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한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그렇게 진실을 기록해온 작가 박경리 자신이 직접 되돌아 본 자신의 일생담이기도 하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