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구역에서 자다(宿平邱) / 정약용

 

 

 

 

종 최가야 너와 서로 작별한 지 십 년인데 / 奴崔與汝別十年
오늘밤에 내가 와 네 집에서 자는구나 / 今宵我來汝家眠


너는 지금 넓고도 환하게 집을 짓고 / 汝今築室乃弘敞
술단지며 가재도구 모두가 화려하네 / 甁罌桁卓皆華鮮


밭에다는 채소 심고 논에는 벼를 심고 / 沙田種菜水種稻
첩 시켜 술을 팔고 자식은 배를 타며 / 敎妾當壚兒騎船


매질하는 상전 없고 빚진 것도 하나 없이 / 上無笞罵下無債
일생을 강호에서 호탕하게 산다마는 / 一生浩蕩江湖邊


벼슬깨나 했다는 나 내놓을 게 무엇일까 / 我雖簪笏將何補
나이 사십 다 되도록 번거롭고 고생이요 / 行年四十猶煩苦


천 권 책을 읽고서도 배고프긴 일반이며 / 讀書千卷不救飢
고을살이 삼 년에 한 치의 땅도 없어 / 佩符三歲無寸土


흘겨보는 눈들만 세상에 가득하므로 / 白眼U25251_16.GIF盱滿世間
초췌한 얼굴 붉히며 늘 문 닫고 앉았다오 / 朱顔憔悴常閉戶


자로 재고 저울로 달아 너와 만약 다툰다면 / 度絜衡秤與汝爭
일백 번 싸운대도 네 이기고 내 지리라 / 我眞百輸汝百贏


가을 되면 순갱노회* 고향 찾아 돌아가서 / 秋風會借蓴鱸興
너와 함께 분을 풀고 수치도 씻어보리 / 雪耻酬憤與汝幷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3권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 순갱노회(蓴羹鱸膾) : 진(晉)나라의 장한(張翰)이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었음.《晉書 卷九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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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벼슬아치 된 자의 가난과 고뇌를 읊은 다산의 이 시는 오늘날 공직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시를 읽는다면, 그 어느 부모가 판검사 등 높은 관직을 얻으라고 자녀를 닥달 할 수 있겠는가. 다산 자신이 공복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부귀와 공명과는 거리가 먼 공직자 말이다. 아울러 강호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호탕하게 사는 최씨는 그 신분이 종이었지만 신분의 존비에 개의치 않는 다복한 생활인인 것이다. 실학자인 다산은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삶인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임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