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19

 

-황동규

 

 

 

아 번역하고 싶다,

이 늦가을

저 허옇게 깔린 갈대 위로

환히 타고 있는 단풍숲의 색깔을.

 

생각을 줄줄이 끄집어내

매듭진 줄 들고 꺼내

그 위에 얹어

그냥 태워!

 

 

 

-황동규 시집『풍장』(문학과지성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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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십여 년 전 황동규 시에 처음 매료되었을 때 만난 시가 바로「풍장」이라는 연작시였다. 풍장(風葬)은 시신을 묻거나(埋葬) 태우거나(火葬) 하지 않고 그냥 산속 나뭇가지 위에다 햇빛과 비바람에 자연 탈골(奪骨)되는 특이한 장례 방식의 하나다. 우리나라 서남쪽 섬 지방에서 간혹 행해지는 것이라는데, 시인은 이걸 딱 한 번 본적이 있다고 했다. 시인은「풍장」연작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이고 문제적인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자 치열한 시적 투쟁을 감행해 왔다. 그 사유의 결과물은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70편으로 구성된 연작 시집『풍장』으로 완결된다. 위 시는 늦가을 불타는 단풍을 풍장(風葬) 이미지와 연결하고 있다. 시의 마지막 행인 “그냥 태워!”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가? 또 다른 시「풍장 36」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내 마지막 기쁨은/시(詩)의 액설레이터 밟고 또 밟아/시계(視界) 좁아질 만큼 내리밟아/한 무리 환한 참단풍에 눈이 열려/벨트 맨 채 한계령 절벽 너머로/환한 다이빙./몸과 허공 0밀리 간격의 만남.” 아, 짧은 가을이 다 가고 있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가을빛 아래서 여태 나는 제대로 된 시 한 편 못 쓰고 뭐하고 있는 가. 숙살지기(肅殺之氣)에 마지막 안간힘으로 맞장 뜨며 제 삶의 빛깔을 다하고 있는 산야(山野)의 들풀과 나뭇잎에게로 걸어가 삶의 아름다운 노래를 배워야겠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