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해방 

-고창근의 누드모델을 읽다-

 

나는 집중력과 끈기가 부족해 길고 지루한 책을 읽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고창근의 소설 누드모델은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마도 그의 파격적인 상상력 때문이리라

 

 

소설을 이끌어가는 남자는 시골출신 엘리트다. 일류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모 은행 본점에 근무하며 강남에 산다. 그는 가정에 충실하며 남편과 아비로서의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덕분에 가족은 만족한 삶을 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참다운 자신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던 중, 근무지를 고향이 가까운 작은 도시로 옮겨간 남자는. 거기서 고교시절 함께 미술 활동을 했으며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 옛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는 그에게 누드모델을 서 줄 것을 부탁한다. 가정과 직장에 충실 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은 몸, 배가 나오고 처진 바로 남자의 몸 같은 자연 그대로의 몸을 가진 모델을 원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거절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다. 옷을 몽땅 벗고 사람들 앞에 서자 쑥스럽기도 했지만 점점 희열을 느꼈다.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화실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속이 텅 빈 여자, 외모는 귀부인 같지만 정신이 허깨비 같은 여자를 본다. 여자는 늘 말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자의 작업실로 찾아 와 스스로 옷을 벗고 모델을 서고 남자는 여자의 누드를 그리기만 한다. 그러기를 몇 번, 여자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교수남편의 바람으로 상대여자의 남편이 여자와의 동침을 원했는데 가정이 파탄 나는 게 두려운 여자는 그 남자의 제의에 응하고 호텔로 나가는데 그 남자는 당신 남편에게 고통을 주기위해서다, 하면서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몸이 젖었다는 걸 알고 오열한다. 즉 정신과 다르게 몸이 일탈을 꿈꾼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된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누드를 그리며 몸의 요구에 충실한다. 물론 파격적인 성관계도 맺는다. 규범 따위는 필요가 없어졌다. 둘 만의 새로운 세상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교감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누드모델을 읽으면서 당황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고창근 작가가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먼저 집필한 그의 소설 소도’ ‘아버지의 알리바이는 사회 문제를 파헤치면서도 올해의 좋은 책에 선정 될 정도로 모범적이고 단정했다. 그래서 좀 어려운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소설 누드모델은 파격적이다. 내 생각에 19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수골통이 가득 찬 이 작은 도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소설 속의 누드화 재현 또는 소설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주재가 된 몸의 해방, 고창근 작가가 직접 그린 누드화 전시회도 출판식과 함께 개최했다. 남녀 몸의 은밀한 곳까지 거침없이 사실 그대로 드러냈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선정적인 벌거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유다. 인습, 사회적 억압, 인간의 몸도 상품화 시키는 상업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무엇보다 자신으로 부터의 자유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제 여자는 떠났다. 현실에서의 두 사람의 합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신세계에서 두 사람은 늘 함께 한다. 나는 나흘  동안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를 생각했다. 둘이 함께 했던 그토록 찬란했던 날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추억의 힘으로 여생을 굳세게 살아가리라. 자신을 짓눌렀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나로 살아가리라. 나도 나에게 파이팅,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