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패전국의 군인으로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자결함으로써 천황폐하께 사죄를 올리라’는 중위의 말을 듣고 화자는 죽음의 순간을 체험한다. 갑자기 머릿속을 관통해버린 망치 소리 쾅, 쾅, 쾅. 소리를 듣는 순간 화자는 결박당했던 주술에서 풀려나듯 군국주의의 환영에서 벗어난다. 그 체험 이후 화자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서 흥분이나 감격, 성취감을 느끼려는 순간마다 그 소리를 듣는다. 소리가 들리면 눈앞의 풍경이 확 바뀌어 순백의 스크린만 남아 뚫어지게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바보가 된다. 절정의 순간을 겪지 못하는 허무하고 황폐한 의식. 소리의 빈도는 점점 심해져간다. 종내는 허무함마저도 산산이 부셔버려 그는 몸을 거의 움직일 수도 없게 된다. 쾅, 쾅, 쾅, 군국주의 환영을 벗겨주었던 그 소리는 결국 화자의 영혼을 결박하여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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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쾅, 쾅

 

 

 

배계(拜啓)

한 가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곤란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올해 26세입니다. 태어난 곳은 아오모리 시 데라쵸입니다. 아마 아시겠지만 데라쵸의 청화사 옆에 도모야라는 작은 꽃집이 있습니다. 저는 그 꽃집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오모리에 있는 중학교를 나와 요코하마의 어떤 군수공장 사무원이 되어 3년간 근무하다가 군대에 들어가 4년 동안 생활하고 ‘무조건 항복(패전)’과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집은 불타고 아버지와 형과 형수 세 사람이 그 불탄 자리에 어설프게 오두막을 지은 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그 불탄 자리에 지은 옹색한 오두막에 얹혀살기에는 아버지나 형님 부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와 형과 의논한 다음 이 A라는, 아오모리 시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해안의 삼등 우체국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체국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정이고, 국장은 어머니의 오라버니인 외삼촌이 맡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근무한 지도 이럭저럭 일 년 이상이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자신이 한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로 괴롭습니다.

내가 당신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요코하마의 군수공장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문체>라는 잡지에 실린 당신의 짧은 소설을 읽고 나서부터는 당신의 작품을 찾아 읽는 버릇이 생겼고, 이것저것 읽는 동안에 당신이 내 중학교 선배이며 또한 당신은 중학교 시절에 아오모리의 데라쵸에 있는 도요다 씨의 집에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포목점 도요다 씨라면 우리 집과 같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저도 잘 알고 잇습니다. 선대의 다자이몽 씨는 살이 찐 체구였기 때문에 다자이몽이라는 이름과도 잘 어울렸는데 당대의 다자이몽 씨는 몸매가 날씬한데다가 멋쟁이라서 하자이몽이라고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이번 공습으로 도요다 씨도 집이 모두 불타고 게다가 광까지 타서 주저앉았다고 하니 참 안됐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 도요다 씨의 집에 계셨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당대의 다자이몽 씨에게 부탁하여 소개장을 써달라고 하여 당신을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워낙 소심한 성격인지라 그저 생각으로만 그칠 뿐 실행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군대에 들어가 치바 현의 해안 방위라는 소임을 맡고 종전될 때까지 허구 헌 날 그저 구덩이 파는 일만 했는데 그래도 가끔 반나절이라도 휴가가 생기면 마을로 나가 당신의 작품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펜을 들어본 적이 몇 번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배계(拜啓)’라 쓰고 다음부터는 뭐라고 써야 좋을지, 특별한 용건은 없었고, 게다가 당신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전혀 모르는 생판 남남이라 펜을 든 채로 혼자서 당혹스럽기만 했습니다. 이윽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했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A우체국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아오모리까지 나간 김에 서점에 들러 당신 작품을 찾아 읽다가 당신도 이재민이 되어 고향인 가네키쵸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의 고향 집으로 불쑥 찾아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배계’라고만 쓰고 막막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용건이 있는 편지이므로. 더구나 화급한 용건입니다.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정말로 곤란합니다. 더구나 이것은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도 있을 것 같으니 그런 우리를 위해 가르쳐 주십시오. 요코하마의 공장에 있을 때도, 또한 군대에 있을 때도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간절했지만 이제야 겨우 당신에게 띄우게 된 이 첫 번째 편지가 이처럼 즐거움이 적은 내용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쇼와 20년(1945) 8월 15일 정오에 우리는 병영 앞 광장에 정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천황 폐하가 몸소 하시는 방송이라는, 거의 잡음으로 뭉개져 무엇 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라디오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젊은 중위가 뚜벅뚜벅 단상으로 올라가더니,

“들어서 알겠나.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상의 일이다, 우리 군인은 어디까지나 항전을 계속하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자결함으로써 천황께 사죄를 올린다. 나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으니까 제군도 그럴 각오를 하고 있으라, 알겠나? 좋아. 해산.”

그렇게 말하고 그 젊은 중위는 단에서 내려와 안경을 벗고 걸어가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엄숙함이란 그런 느낌을 말하는 걸까요.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주위가 갑자기 희미하게 어두워지고 어디서랄 것도 없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그리하여 내 몸이 저절로 땅바닥으로 쑥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죽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방에 보이는 숲이 기분 나쁘게, 조용히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보이더니, 그 꼭대기에서 한 무리의 새가, 마치 깨를 한줌 집어다 뿌린 듯이 소리도 없이 날아올랐습니다.

아, 그때였습니다. 등 뒤의 병영 쪽에서 누군가 쇠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가 희미하게 쾅, 쾅, 쾅,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이었습니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는 게 이런 때의 느낌을 말하는 걸까요? 비장함도 엄숙함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결박당했던 주술에서 풀려나듯 생경스럽고 머쓱한 기분으로 여름 한낮의 모래벌판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감개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배낭에 물건들을 쑤셔 넣고 아무 생각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온 희미한 망치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게 나에게 군국주의의 환영을 벗겨내 줘서 이제 다시 그 비장한 듯한, 엄숙한 듯한 악몽에 취하는 따위의 일은 절대로 없을 듯했는데, 하지만 그 작은 소리는 나의 뇌수의 과녁을 관통해 버렸는지,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나는 실로 이상스럽고도 불길한 간질병을 가진 남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흉악한 발작 따위를 일으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어떤 사물에 대해 감격하거나 흥분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랄 것도 없이 희미하게 쾅, 쾅, 쾅, 하고 예의 그 망치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멈칫해지고 눈앞의 그 풍경이 확 바뀌어 영상이 뚝 끊어지고 나머지는 그저 순백의 스크린만이 남아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바보 같은 기분이 되는 겁니다.

나는 처음에 이 우체국에 와서, 자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소설도 썼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보내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려고 근무 틈틈이 군대 생활의 추억을 써봤습니다. 그런데 애써 노력하여 백 매 가까이 쓰고 드디어 며칠 내로 완성이다 싶은 가을 저녁이었습니다. 우체국 일도 끝나고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서 오늘 밤에는, 오네긴의 마지막 장과 같은 그런 식으로 화려한 비극의 결말로 끝낼지, 아니면 고골리의 <싸움이야기> 식의 절망적인 파국으로 할지, 등등 마지막 장을 쓰기에 앞서 격렬한 흥분으로 설레면서 목욕탕의 높은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 빛을 올려다보았을 때였습니다. 쾅, 쾅, 쾅, 하고 멀리서 그 망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순간 물결이 잠잠해지고 나는 그저 어둑한 욕조 구석에서 좍좍 소리를 내고 물을 휘저으며 움직이는 한 벌거벗은 남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한심한 생각이 들어 욕조에서 나와 발바닥 때를 밀면서 목욕탕의 다른 손님들이 떠드는 배급 이야기 따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푸슈킨도 고골리도 그것은 마치 외제 칫솔 이름처럼 따분하게 여겨졌습니다. 목욕탕을 나와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와 말없이 저녁을 먹고 내 방으로 와서 책상 위에 있는 백 매 가까운 원고를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바보 같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고 지긋지긋해져서 찢어버릴 기력조차 잃고 매일매일 코푸는 종이로 쓰고 있습니다. 그 이후 나는 오늘까지 소설다운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습니다. 백부의 집에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장서가 있어서 이따금 메이지, 다이쇼 시절의 걸작 소설집 같은 걸 빌려다 읽고 감탄하거나 말거나 하면서 도무지 진지하지 못한 태도로 눈이 오는 날에는 일찍 일어나게 되는, 전혀 ‘정신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세계미술전집 같은 걸 보다가 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프랑스 인상파 그림에는 별로 감탄하지 않고, 요즘은 일본의 겐로크 시대의 오가타 고린과 오가타 겐잔 두 사람의 작업에 눈을 부릅뜨게 되었습니다. 고린의 철쭉 같은 건 세잔느, 모네, 고갱 등 누구의 그림보다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시 나의 이른바 정신생활이 숨을 되찾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가 고린, 겐잔과 같은 명가가 되리라는 따위의 당치 않은 야심을 일으키는 일은 없습니다. 촌구석의 딜레당트,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침부터 밥까지 우체국 창구에 앉아 다른 사람의 돈을 세는 일, 기껏 그 정도겠지만 나 같은 무능 무학한 사람에게는 그런 생활도 반드시 추락하는 생활은 아닐 것이다, 겸양의 왕관이라는 것도 있을지 모른다, 평범한 나날의 업무에 정진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고상한 정신 생활일지도 모른다, 따위로 조금씩 자신의 생활에 긍지를 갖기 시작했고 바로 그 무렵에 화폐 개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촌구석의 삼등 우체국에서도 아니, 작은 우체국일수록 일손이 부족하여 오히려 정신없이 분주하여,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예금 신고 접수며, 구 엔화의 증지 붙이기 따위로 녹초가 되어도 쉴 수가 없었고 특히 나는 백부에 얹혀 사는 처지인지라, 보답할 기회는 이때라는 듯 두 손이 마치 쇠로 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묵지근해서 도무지 네 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는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에 머리맡의 자명종 시계가 울면 동시에 튕겨 일어나 바로 우체국에 나가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청소 같은 건 여직원이 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 엔화 개혁의 소란이 시작된 이후 내 근무 태도에 이상스러운 탄력이 붙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마구 일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하면서 엄청난 가속도를 내며 거의 반광란 상태 같은 죄충우돌을 계속하다가 드디어 교환이라는 소란도 오늘로 끝이다, 하던 그 날 나는 역시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우체국 청소를 미친 듯이 하고 나서 내 담당 창구로 가서 앉았습니다. 때마침 아침 해가 내 얼굴에 곧장 비쳐 들어 나는 수면 부족의 눈을 가늘게 뜨고 그래도 뭔가 지독한 자신만만한 흡족감으로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휴 하고 한숨을 쉬었을 때, 쾅, 쾅, 쾅, 하는 예의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더니 그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삽시에 시시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버렸습니다.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일어나지 않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날은 우체국도 가장 바쁜 날인 모양이었지만 가장 요긴한 일손인 내가 잠자리로 기어들어갔으니 모두가 곤란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종일 몽롱한 상태로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백부에 대한 보답도 이런 내 멋대로의 행동 때문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듯했지만 이미 나는 혼신을 다해 일할 마음은 깡그리 없어지고 그 이튿날에는 아예 늦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멍청하게 내 담당 창구에 앉아 하품이나 해대면서 일은 옆 자리 여직원에게 떠넘겨 버렸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여전히 기력이 없는 나른하고도 기분 나쁜 그러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창구 직원이 되었습니다.

“너 여전히 몸이 좋지 않으냐?”

백부인 국장이 물어도 슬며시 웃기만 하다가,

“나쁘지 않아요. 신경쇠약인지 몰라요.”

하고 대답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숙부는 자신 만만한 얼굴로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머리는 나쁘면서 어려운 책만 읽으니까 그렇게 된다. 나나 너처럼 머리가 나쁜 남자는 되도록 어려운 일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아.”

하고 말해 나도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백부는 전문대를 나온 사람이었지만 눈을 씻고 봐도 도무지 인텔리 같은 분위기라곤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내 문장에는 그리하여 그때부터라는 말이 아주 많지요? 이것도 역시 머리 나쁜 남자의 문장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일까요? 스스로도 매우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저절로 불쑥 나오니 별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사랑을 시작한 겁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웃지 마십시오. 아니 웃으셔도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입니다. 어항의 송사리가 어항 바닥에서 두 치 정도 되는 위치에 떠서 가만히 정지해 있을 뿐인데도, 그러다가 우연히 새끼를 갖듯이, 나도 멍청하게 생활하면서 어느 샌가 어찌어찌 부끄러운 사랑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모든 음악이 너무나 마음에 사무치게 되지요. 그것이 사랑의 열병이 갖는 첫 번째 확실한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짝사랑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가 너무나 좋아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이 해안 부락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은 여관의 종업원입니다. 아직 스무 살 전인 듯합니다. 백부인 우체국장은 술을 좋아하여 어떤 명분으로 부락의 연희가 그 여관 안채에서 열리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반드시 참석하기 때문에 백부와 그 종업원과는 서로 허물이 없는 모양으로, 그녀가 저금이나 보험 따위의 용무로 우체국 창구 너머에 나타나면 백부는 반드시 재미도 없는 진부한 농담을 던져 그녀를 놀리는 겁니다.

“너 요즘 경기가 꽤 좋은 모양이구나. 저금도 꽤 차곡차곡 넣는가 보던데. 놀라운지고. 돈 많은 영감이라도 생겼나?”

“시시하게.”

그리고 실제로 시시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반 다이크 그림의 여자 얼굴이 아니라 귀공자의 얼굴을 닮은 생김새입니다. 도키다 하나에라는 이름입니다. 저금통장에 그렇게 써 있습니다. 전에는 미야시로 현에 있었던 모양으로 저금통장 주소란에는 이전 주소도 써 있는데 거기에 빨간 선을 그어 지우고 그 옆에 이곳의 새로운 주소를 써 넣었습니다. 여직원들의 소문으로는 아마 미야시로 현 쪽에서 전재(戰災)를 만나 ‘무조건 항복’ 직전에 이 부락으로 밀려들어온 여자이고 그 여관의 여주인과는 먼 친척이라던가 했습니다. 그리고 몸가짐이 좋지 않은 듯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수완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소개(疏開)해 온 사람으로 그 지역 사람들의 평판이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그런 상당한 수완 따위는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나에 씨의 저금도 결코 빈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체국 직원이 이런 일을 공표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지만 아무튼 하나에 씨는 국장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2백 엔이나 3백 엔의 돈을 저금하러 와서 총액이 쑥쑥 늘고 있었습니다. 설마 돈 많은 영감이 생겨서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하나에 씨의 통장에 2백 엔이나 3백 엔의 도장을 누를 때마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갈수록 괴로워졌습니다. 하나에 씨는 결코 수완이 상당한 여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 부락 사람들이 모두 하나에 씨를 겨냥하여 돈이나 던져주고 그렇게 하나에 씨를 망치는 게 아닐까, 필시 그럴 거야,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한밤중에 놀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일조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에 씨는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꼴로 태연하게 돈을 가지고 옵니다. 이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기는커녕 아예 너무나 괴로워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 비지땀이 나오는 것 같아서 하나에 씨가 새침한 얼굴로 내미는, 증지를 붙인 더러운 10엔 지폐를 한 장 두 장 세다가 갑자기 모조리 찢어발기고 싶은 발작에 사로잡힌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에 씨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유명한 소설에 나오는 대사 “죽어도 남의 노리개가 되지 마라!”고, 제 주제도 모르면서. 게다가 나 같은 천박한 시골뜨기는 도저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대사지만 그래도 나는 아주 진지하게 그 한 마디를 해주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어도 남의 노리개가 되지는 마라, 물질이고 뭐고, 돈이 뭐냐고.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전해지는 이심전심은 역시 있는 걸까요. 그건 5월의 중반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나에 씨는 여전히 새침한 얼굴로 우체국 창구 너머로 나타나 부탁합니다, 하면서 돈과 통장을 내게 내밀었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것을 받아들고 비참한 마음으로 더러운 지폐를 하나하나 세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통장에 금액을 기입하고 말없이 하나에 씨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다섯 시쯤, 시간 있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봄바람에 환청을 들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낮고 빠른 어조였습니다.

“시간 있으면 다리 쪽으로 나오세요.”

그렇게 말하고 살며시 웃더니 얼른 다시 새침한 얼굴로 하나에 씨는 사라졌습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두 시가 조금 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5시까지, 한심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지금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필시 뭔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허둥거리다가 갑자기 옆 자리 여직원에게 오늘 날씨 참 좋다 하면서, 구름이 잔뜩 낀 날이건만 큰 소리로 말을 걸고는 상대가 놀라면 괜히 노려보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기도 하고, 마치 백치 같은 태도였을 것입니다. 5시 7, 8분 전에 나는 집을 나왔습니다. 도중에 내 두 손의 손톱이 길게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왠지 울고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리 입구에 하나에 씨가 서 있었습니다. 치마가 지나치게 짧은 것 같았습니다. 긴 맨 다리를 힐끗 보고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바다 쪽으로 가시죠.”

하나에 씨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하나에 씨가 앞서고 대여섯 발자국 간격을 두고 내가 서서히 바다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떨어져서 걷고 있는데도 두 사람의 보조가 어느 샌가 똑같아져서 난감했습니다. 구름 낀 하늘에 바람이 조금 불어 해안에는 모래 먼지가 일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좋겠어요.”

해안 쪽으로 밀려 올라온 커다란 고깃배들 사이로 하나에 씨는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모래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이리 와요. 여기 앉으면 바람막이가 돼서 따뜻해요.”

나는 하나에 씨가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앉아 있는 곳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습니다.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내 저금에 대해서, 그래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나도 이때다 싶어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죠.” 하나에 씨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모래를 움켜쥐고 맨다리에 뿌리면서, “그건 말이죠, 내 돈이 아니에요. 내 돈이면 저금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예요. 일일이 저금하는 건 귀찮거든요.”

과연 그랬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통장은 우리 여관의 여주인 거예요. 하지만 이건 절대로 비밀이에요. 당신도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돼요. 여주인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나는 어렴풋이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건 아주 복잡한 일이라서 말하고 싶지 않아요. 힘들어요, 난. 믿어주겠어요?”

살짝 웃는 하나에 씨의 눈에 묘하게 빛이 반짝인다 싶었는데 눈물이었습니다.

나는 하나에 씨에게 키스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에 씨와 함께라면 어떤 고생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근 사람들은 모두 틀려먹었어요. 당신이 날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당신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 큰맘 먹고.”

그때 실제로 가까운 오두막에서 꽝꽝꽝 하는 못 박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때의 소리는 내 환청이 아니었습니다. 해안에 있는 사사키 씨의 헛간에서 실제로 요란하게 못을 박기 시작한 겁니다. 꽝꽝꽝, 꽝꽝꽝, 요란하게 박고 있었습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나에 씨의 바로 뒤에 꽤 많은 개똥이 있는 걸 그제야 발견하고는, 얼른 하나에 씨에게 주의하라고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도는 나른하게 밀려왔다 밀려가고 지저분한 돛을 단 배가 해안 바로 근처를 비틀거리며 지나갔습니다.

“그럼, 실례.”

허탈한 마음이었습니다. 저금이 어떻든 내가 알 게 뭡니까. 애당초 남의 일이지요. 남의 노리개가 되든 어찌 되든 그건 조금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죠. 바보 같았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하나에 씨는 여전히 일주일이나 열흘 간격으로 돈을 가지고 와서 저금했고 이제는 총액이 몇천 엔이라는 금액이 되어 있었지만 나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하나에 씨가 말했듯이 그게 여주인의 돈이든지 또는 하나에 씨의 돈이건 간에 그건 전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

그리하여 도대체 이거 어느 쪽이 실연한 결과가 되는 건가 하면, 아무래도 내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실연을 했다고 별달리 비참한 기분도 나지 않으니, 이건 매우 이상한 실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멍청한 보통 우체국 직원이 되었습니다.

6월에 들어서고 나서 나는 용무가 있어서 아오모리에 갔다가 우연히 노동자들의 데모를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사회 운동이나 또는 정치 운동 같은 데는 별로 흥미가 없었고, 아니 없다기보다는 절망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가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자신이 어떤 운동에 참가했다고 한들 종국에는 그 지도자들의 명예욕이나 권세욕을 태운 배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당당하게 소신을 말하고 내 말에 따르면 반드시 당신 자신 및 당신의 가정, 당신의 마을, 당신의 나라, 아니 전 세계가 구원될 것이라고 허풍을 떨고,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당신들이 내 말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둥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그리하여 한 창녀에게 차이고 또 차이다가 단념하고 분연히 일어나 공창 폐지를 부르짖으며 미남 동지를 때리고 소란을 떨어서 설쳐대고 가끔은 훈장을 받고 의기 충천하여 자기 집으로 달려가 여보, 이거 봐, 하면서 득의만면, 그 훈장을 살며시 열어서 마누라에게 보이면 마누라 차갑게, 어머, 5등 훈장이잖아, 하다못해 2등 훈장 정도는 돼야지, 하는 말에 가장은 기가 죽고……, 따위의 반미치광이 같은 남자가 몰두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4월의 총선거도 민주주의니 뭐니 하면서 소란을 떨어도 나는 그 사람들을 조금도 신뢰할 생각이 일지 않았습니다. 자유당, 진보당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사람들 같아 도무지 문제도 되지 않았고, 또한 사회당, 공산당은 지겹게 혼자 열을 내며 떠들어대지만 이건 또 패전이라는 기회에 편승한 건지, ‘무조건 항복’의 시체에 들끓는 구더기 같다는 불결한 인상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월 10일 투표일에도, 백부인 국장에게서 자유당의 가토 시에게 투표하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나는 대답만 예, 하고는 집을 나와 해안을 산책하다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대도 나날의 생활에 대한 우울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나 나는 그 날 아오모리에서 우연히 노동자 데모를 보고 나의 지금까지의 생각은 모조리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기발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얼마나 즐거운 행진인가요. 우울의 그림자도 비굴의 그림자도 나는 무엇 하나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뻗어나는 활력뿐이었습니다. 젊은 여자들도 손에 손에 깃발을 들고 노동가를 부르고, 나는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아, 일본은 전쟁에 지길 잘했구나 생각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진짜 자유라는 것의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정치운동이나 사회운동에서 탄생한 거라면, 사람은 일단 정치사상이나 사회사상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행진을 보고 있는 동안에 자신이 가야 할 한 줄기 빛이 나는 길이 드디어 틀림없이 만져질 것 같은 환희에 찬 심정이 되어 눈물이 기분 좋게 흘러내렸습니다. 그리하여 물속에 들어가 눈을 뜨고 볼 때처럼 주위의 풍경이 흐릿하게 녹색으로 번져갔고 그 박명의 양양한 움직임 속을, 새빨간 깃발이 불타는 모습을, 아아 그 빛깔을, 나는 훌쩍훌쩍 울면서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 쾅, 쾅, 쾅,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소리는 뭘까요. 니힐 따위로 간단히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쾅, 쾅, 쾅, 하는 환청은 니힐마저도 산산이 부수는 것입니다.

여름이 되자 이 지방의 청년들 사이에서 별안간 스포츠 열풍이 몰아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마 나잇살이나 먹은 늙은이 같은 실리주의적인 경향도 있었는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벌거벗고 씨름을 하다가 땅바닥에 메다 꽂혀 나동그라져서 중상을 입거나, 표정까지 바꿔가며 힘껏 달려서 누구보다 누가 빠르다든가 하는, 어차피 백 미터에 20초대라는 도토리 키재기 식인 운동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 청년들의 그런 스포츠에 참가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올 8월엔 이곳 해안선 각 부락을 누비며 주파하는 역전 경주라는 것이 있어서 이곳 군의 청년들이 대거 참가하고, 우리 A우체국도 그 경주의 중계소가 되어 아오모리를 출발한 선수가 여기서 다음 선수와 교대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오전 10시 조금 지나자 이제 아오모리를 출발한 선수들이 이곳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며 우체국 직원들은 모두 밖으로 구경하러 나가고 나와 우체국장만 사무실에 남아 간이보험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왔다, 왔다, 하는 웅성거림이 들리기에 나는 일어나서 창으로 내다보았습니다. 그것이 소위 라스트헤비라는 폼을 잡은 거겠지만 양손 개구리 손처럼 쫙 펼치고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듯한 기묘한 모습으로 팔을 휘둘렀고, 그렇게 벌거숭이에다 팬티 한 장, 물론 맨발로 널찍한 가슴을 높이 치켜올리고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한껏 젖혀 좌우로 흔들며 비척비척 우체국 앞까지 와서 끄으응 하고 한 마디 지르더니 쓰러졌습니다.

“좋아, 잘했어!” 하며 옆에 따르던 사람이 외치며 그 사람을 들어올려 내가 보고 있는 창 아래로 데려와서 준비한 물통의 물을 쏴 하고 끼얹었습니다. 선수는 거의 반사반생의 위험한 상태처럼 보이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채 녹초가 되어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실로 이상스런 감격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사랑스러움 따위의 표현은 스물여섯 살인 내가 바라기는 좀 건방진 것 같지만 애처로움이라고 하면 될지, 아무튼 힘의 낭비도 이 정도면 할 말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1등을 했다 한들, 또한 2등을 했다 한들 세상은 그것에 거의 흥미를 갖지 않건만 그래도 생명을 걸고 라스트헤비가 어쩌구 하고 있는 겁니다. 특별히 이 역전 경주로 말미암아 소위 문화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또한 이상이고 뭐고 없지만 그래도 체면이 뭔지 그런 이상을 입에 올림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장래 대 마라톤 선수가 되려는 야심도 없고, 어차피 시골 동네의 뜀박질 경주에서 기록이고 뭐고가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집에 돌아와도 그 가족들에게 자랑을 떠벌릴 생각도 없을 테고 오히려 아버지에게 야단맞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텐데 그래도 뛰고 싶은 겁니다. 목숨을 걸고 해보고 싶은 겁니다.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좋은 겁니다. 그저 달리고 싶은 겁니다. 무보수의 행위죠. 어릴 때의 위험한 나무 오르기에는 그래도 감이라도 따서 먹겠다는 욕심이 있었지만 이 목숨을 건 마라톤에는 그것조차 없습니다. 거의 허무의 정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때 내 공허한 심정에 딱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나는 우체국 직원들을 상대로 캐치볼을 시작했습니다. 녹초가 될 때까지 계속 하다 보면 뭔가 탈피와도 비슷한 개운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거다, 하고 생각한 순간 예의 그 쾅, 쾅, 쾅,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 쾅, 쾅, 쾅, 소리는 허무의 정열마저 산산이 부셔버립니다.

요즘 와서는 그 쾅, 쾅, 쾅, 소리가 갈수록 빈번하게 들립니다. 신문을 펼치고 신헌법을 한 조 한 조 숙독하려고 하면 쾅, 쾅, 쾅. 직원 인사에 대해 백부로부터 상담을 좀 하자는 제의를 받고 문득 명안이 떠올랐다 싶으면 쾅, 쾅, 쾅. 당신의 소설을 읽으려고 해도 쾅, 쾅, 쾅. 지난번 이 부락에 화재가 나서 일어나 불난 곳으로 뛰어가려는데 쾅, 쾅, 쾅. 백부를 상대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하다가 좀더 마실까 싶으면 쾅, 쾅, 쾅. 드디어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하면 또 쾅, 쾅, 쾅. 자살을 할까 생각만 해도 쾅, 쾅, 쾅.

“인생이란 건 한 마디로 뭡니까?”

하고 나는 어젯밤 백부의 저녁식사 반주 상대를 해주면서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어보았습니다.

“인생, 그건 알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세상은 색(色)과 욕(慾)이지.”

뜻밖의 명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불쑥 나는 암상인이나 될까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암상인이 되어 1만 엔쯤 벌었을 때를 생각하자 즉시 쾅, 쾅, 쾅,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이 소리는 뭘까요. 그리고 이 소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지금 실제로 이 소리 때문에 거의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답장을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면 나는 이 편지를 절반도 쓰기 전에 벌써 쾅, 쾅, 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너무 시시해져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거짓말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하나에 씬지 뭔지 하는 여자도 없고 데모도 본 게 아닙니다. 그 밖의 것도 대충 거짓말 같습니다.

그러나 쾅, 쾅, 쾅, 소리만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지 않고 이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기이한 편지를 받아 든 모(某) 작가는 지독하게도 무학무사상(無學無思想)인 남자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냈다.

 

배복(拜復)

배부른 고민이군요. 나는 각별히 당신을 동정하지는 않습니다.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의, 모든 일에 아무런 변명이 성립되지 않는 추태를 당신은 여전히 피하고 있는 것 같군요. 진정한 사상은 예지보다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

이 경우의 ‘두려워하다’는 ‘외경(畏敬)’이라는 의미에 가까운 듯합니다. 이 예수의 말에서 청천벽력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의 환청은 그칠 것입니다. 그럼 이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