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령을 가다


남효선



비릿하다. 저진치를 에도는 모롱이 물안개에 갇혀있다.

서른 해를 걸었다. 백설같은 소금단지 어깨에 걸고

앞서 간 이의 발길을 따라

열두고개, 뒤 돌아보니 길은 외줄기

모든 길은 마을을 일군다

눈부시다. 한나무재 등성이 온통 메밀꽃이다.

달밤, 허기를 어루며 환한 메밀꽃을 한 줌 뜯었다

눈부신, 새하얀 이밥처럼 달다

밤낮으로 사흘을 걸어

낙동이 굽이굽이 세월처럼 흐르는

배나들이 왁짜하다

닷새 만에 노상 만나는 장돌뱅이들이

유난히 정답다

배나들 소천댁이 끓여내는 우거지 국밥 냄새

울컥, 아랫배가 당긴다

서벽 사는 소장수 황씨, 성긴 턱수염에

누룩냄새 그득하다

소천댁 국밥집에 바지게 걸치고

놋주발 가득 소금 한 주발 내밀었다

언제 마셔도 소천장 막걸리 맛은

죽변항 곰삭은 힛떼기 식혜 맛이다

금세 뱃 속이 든든해진다



소천댁 국밥집 봉로방에 모잽이로 누웠다.

이슥토록 잠은 오질 않고

별만 또렷하다

서늘한 강바람이 별빛을 흐트린다

속내는 종내 가닥이 잡히질 않고

모잽이로 누운 발끝만 오그라든다

새벽녘, 기필코 속내를 털어놓으리라

지에미 세상 뜬지 여섯 해, 여직도 눈길에 밟힌다

바지게 벗어던지듯, 언감생심 삼년상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마흔 평생 넘나들던 한나무재 양지 둔덕에 묻었다

닷새마다 마주치는 소천댁 눈길이 곱다

이레 해 전, 술주정뱅이 남정네에 쫒겨

혈혈단신 화절령을 넘어, 통리재를 넘어

옥같은 모시적삼 한 벌 움켜쥐고

소천 배나들에 몸을 뉘었다.

타고난 손맛하나로

국밥집을 열었다.


여섯 해째 마음만 다잡았다

주먹밥 꿍치듯 눈길 한 번 제대로 못 맞추었다

밤새 뜬 눈으로 뒤채이다 봉로방을 나섰다.

서늘하다. 하마 정지에는 솔가지 태우는 냄새가

십이령 고갯길처럼 외롭다

손목을 덥썩 잡았다. 소천댁이 얼른 앞치마께로 손을 감춘다

눈길이 마주친다. 가슴패기로 바람 한줄기 스친다.

소천댁, 앞치마 감싸며 곰국 한 사발 디민다

밤새도록 끓은 돼지뼈 냄새, 크끝을 달군다

얼른 받아 마셨다. 속이 화끈 달며 맥이 풀린다.

바지게를 걸치고 봉로집 싸리문을 밀친다

소천댁, 뒤따라 나와 눈길 내리고 분홍빛 댕기 한 쌍 건넨다

건네는 손끝이 가늘게 흔들린다. 두 손으로 소천댁

손목을 덥석 쥐었다. 손아귀 안에서 소천댁 물 묻은 손끝이

꼼지락거린다. 아련하다.

닷새 후를 기약했다. 허적허적 싸리문을 나섰다

배나들재 마루에서 얼핏 고개를 돌렸다

낙동이 피우는 물안개에 싸여

소천댁, 싸리문 잡고 미동도 없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