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은 아직도  


 

 적당하게 낀 안개가 편안한 아침이다. 가시거리가 길지 않아 제한속도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 운전대를 잡고 가는 길이 여유롭다.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부분적으로 정전되었는지 몇 군데 신호등이 점멸되어 있다. 사거리에 길게 줄을 지어 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하면서 교대로 지나간다. 약속 시각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뿌연 안개 속에 온몸이 젖어 들 것 같다. 기계적이고 허둥대는 일상적인 삶에서 오늘만큼은 풀어지고 싶다. 저 안개처럼... .  약속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설렘이 일어나고 있다.

 그 ‘언제 한 번’이 바로 지금이다. 토론토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 하나, 그리고 그 반대편인 서쪽에 사는 나와 가운데 사는 다른 친구, 비슷한 시기에 이민 와서 만난 셋이다. 사는 거리도 거리이지만 각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서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하는 전화기 속의 마지막 말은 늘 ‘언제 한번 보자’는 막연한 기약이었다. 몇 번의 번복 끝에 드디어 날을 잡았다. 이른 아침에 만나 그림도 보며 지난 이야기도 하자고 했다.

 는개가 내리고 있다.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 온 두 종류 겉옷 중에 두터운 것을 걸친다. 봄을 느끼고 싶었는데 바람이 아직 차다. 몸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표 파는 곳 앞에 두 여인의 모습이 어슴푸레 보인다. 창을 바라보며 도란거리는 둘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두어 발자국 뒤에서 머물 듯 서 있다. ‘늦어서 미안하다.’ ‘괜찮다.., . ’이런 인사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 가슴 저 밑에 있던 반가움이 얼굴로 올라와 있으니까.

 카페에서 차 한 잔부터 하자며 자리를 옮겨 숲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숲은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그 기슭에 비스듬히 서 있는 비쩍 마른 나무들이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보다. 모두 몸을 꼬아 창 쪽으로 가지를 바짝 기대고 있다. 그 가지에 눈웃음을 보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기 삶의 한 토막을 연다. 다른 친구도 보여 준다. 나의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이민의 강 가운데는 망각의 늪이 있었는가 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아득하게 잊고 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삶만을 유지하고 있다. 늘 눈앞에 보이고 밀려오는 것들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지난날들의 마디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였던 ‘내’가 살아가면서 주위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작아지고 희석되고 어우러져 가고 있다. 그런 얼기설기한 나의 모습이 가끔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한다. 저 멀리 있던 어린 날의 한 자락도 꺼내 본다.

 한여름, 만삭의 몸으로 가정방문을 왔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낸다. 가파른 북선동 산허리 길을 올라오시느라 힘이 들었는지, 뒷목에서 성글 성글 맺히던 땀방울에  무안하고 어색했던 일. 개량 한복이 잘 어울리던 그분의 연세를 헤아려 본다.  

 

중학교 가정 과목의 숙제였던 뜨개질을 늘 내 것까지 해 주었던 단짝 ‘희야’도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웃으면 양쪽으로 덧니가 보이던 친구, 학년이 올라가 다른 반이 되었을 때도 방과 후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 주던 친구, 보고 싶다!

 

 주위에 가득한 안개 덕분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셋 중 누구도 그 흔한 스마트 폰조차 보는 이가 없다. 숲은 우리가 처음 앉았던 그 시간이나 지금이나 옅은 안개로 싸여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희미한 기억들을 이야기하면서, 뭉클하게 가슴 적시는 삶의 토막토막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아 - , 살고 있었지. 그렇게 소중하게 나도 살아왔었지... .’ 과거는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 지탱하게 해 주는 길고 긴 다리였다. 산다는 것, 추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은 잔잔한 감동이다. 창밖에 휘청거리며 얽혀 있던 나무들이 조금씩 허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안개가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처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술관 직원이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란다. 그림 구경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작품 감상을 못 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의 그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직 그려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언젠가 그리워 할 이 순간을 충실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려나가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림을 보러 언제 한 번 다시 와야겠다고 셋이 입을 모았다

 미술관을 뒤로하고 내려오다가 남겨 놓은 우리의 이야기가 못 잊혀서 뒤를 돌아다 본다.  조금 전 미술관에서 같이했던 안개가 산봉우리 중턱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마치지 못한 그림들을 잘 보관해 줄 모양이다.

'언제 한 번'이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이현숙/토론토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2014년)


<추천의 말>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김철순씨와 이현숙씨를 한국의 '문학마실'에 추천, 소개합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두 사람 다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과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기에 토론토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입니다.

김철순씨의 수필쓰기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바도 있지만, 작품의 진지성과 육화된 체험의 글쓰기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제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현숙씨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인증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무게 있는 수필을 써 왔으나 근래에 시를 창작하는데 열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우 조심성 있는 태도와 사려 깊은 감성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있음이 돋보이며, 앞으로 나올 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31일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