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가을의 끝자락에 다시 나선 길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 강물이 흐르는 기슭을 따라 걷다가 한여름 녹음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가시가 무성한 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의 팔뚝에 매달려 깃발처럼 나부끼는 노란 단풍잎 사이로 흉물스러운 가시가 드러났습니다. 나무의 두루뭉술한 허리에서 가슴까지 사방으로 뻗어 나온 무성한 가시를 보는 순간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가슴을 적시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고생한 어머니를 병시중하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몹쓸 병 때문에 점점 더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의 몸이 안방 구들을 지키기 시작할 때는 자식에게조차 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의 생각을 먼저 읽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병구완하는 것은 평생 당신을 위해 고생한 아내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칠 년 반을 살다가 어머니는 이승을 떠났습니다. 고향 뒷산 양지바른 언덕 중턱에 어머니를 묻고 내려올 때도 당신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픈 아내와 함께 하는 동안 눈물은 이미 가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신은 아내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국도와 지방도가 보이는 그곳에 당신의 아내를 묻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쁘게 사는 자식이 달리는 차 안에서도 어머니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깊은 배려였습니다.

아내를 묻고 돌아와 여생을 혼자 살겠다며 자식의 근심을 덜어주던 아버지에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이 시간이 갈수록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외로움과 서러움 속에서 살다가 기력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어느 날 새벽, 산책길에 나서다가 집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수술 후, 조금씩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느 자식도 선뜻 당신을 떠안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허구한 날 빈집을 지키기 일쑤였고, 공원을 찾아다니며 만난 노인들과 친구가 되어 온종일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팔십 중반의 노구를 이끌고 해거름 무렵에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자식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자식이라는 달콤하면서도 쓴 열매 앞에서 가슴이 아팠을 당신은 오히려 따뜻하고 자상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우선인 당신의 가슴엔 얼마나 많은 상처를 품고 있었을까요.

아들과 딸 사이의 미묘한 차별에서 오는 서운함만 늘어놓던 내가 결혼 후,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집에 들어섰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게 환한 적이 있었을까요. 당신 앞에 나란히 앉은 딸과 사위를 지긋한 눈길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말없이 사위의 손을 잡더니, 셋째 딸인 ‘나’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며 사위의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골칫덩어리였던 과년한 딸을 혼사 시킨 안도감과 시집을 보내고도 불안한 당신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댁에 가려고 막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습니다. 어느새 부쩍 야윈 당신의 등은 그날따라 더 측은했습니다. 역 대기실을 빠져나왔습니다. 플랫폼엔 기차가 막 들어섰습니다. 기차에 올라타기 전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개찰구에 돌기둥처럼 서 있던 아버지가 옷소매로 눈물을 연신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당신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두 언니와 두 오빠를 혼사 시키면서도 활짝 웃던 당신이었으니까요. 말썽꾸러기인 셋째 딸을 떠나보내는 후련함과 미덥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라는 엄청난 생의 무게로 허망한 세월 앞에서 잠시 흔들렸을까요.

 

세월이 흘러 이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훌쩍 넘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나 또한 가슴에 박히는 가시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속수무책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은 행복이며 아픔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식과의 추억을 반추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고픈 애틋함이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한바탕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밤새워 비가 왔습니다. 아직도 단풍 몇 잎 붙잡고 저리도 아파하는, 가시가 무성한 나무를 뒤에 두고 떠나올 때야 알았습니다. 셋째 딸인 나는 당신이 눈을 감는 그 날까지, 평생 당신의 가슴에 품어야 하는 가시라는 것을.

아직도 사는 게 힘들면 한국에 나와 같이 살자, 하는 구순의 아버지 생각에 돌아오는 내내 목이 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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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4년 캐나다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

2018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

현재 토론토 한인 문인협회 회원


<추천의 말>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김철순씨와 이현숙씨를 한국의 '문학마실'에 추천, 소개합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두 사람 다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과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기에 토론토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입니다.

김철순씨의 수필쓰기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바도 있지만, 작품의 진지성과 육화된 체험의 글쓰기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제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현숙씨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인증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무게 있는 수필을 써 왔으나 근래에 시를 창작하는데 열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우 조심성 있는 태도와 사려 깊은 감성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있음이 돋보이며, 앞으로 나올 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31일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