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라는 숫자

                                   

 

백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좋은 숫자이냐

그만큼 이루었고

넉넉한 여정

 

아흔 아홉 번의 고개를 넘으며

때로는 막막한 일 있었다 해도

때로는 뒷걸음질 쳤었다 해도

이제는 모두 지난 일로 떨쳐 버리고

백 하나, 백 둘, 백 셋, 백 넷...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숫자이다

 

백이라는 숫자는

돌아서 돌아서 다시 돌아온

새해 첫날같은 숫자이다

새해 첫날에 펼쳐진 순백의 눈밭이다

모든 것 다 지워버리고

얼마든지 큰 꿈 새로 펼쳐도 되는

광대무변의 눈밭이다

 

백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숫자이냐

얼마나 가슴 벅찬 숫자이냐.

 

 

  

껌처럼

 

향내 난다 우리들의 꿈

감미롭다 그러나

아무리 씹어도

먹을 수 없는 꿈 도저히

밥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자꾸만 씹게 되는 꿈

늘이면 늘일수록 늘어나서 실낱같이 자꾸만 가늘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꿈

바람을 불어넣으면 자꾸만

픙선같이 부푸는 꿈

겁없이 커지는 꿈

터지는 꿈

볼품없이 찌부러져도 다시 살아나

계속 달라붙는

우리들의 질긴 꿈

함부로 버리자 말자.

 

------------------------------------------------------------

권이영

1991년 월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천천히 걷는 자유>(나남)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교류위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