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길에서 두 번째로 죽다

 

 

 

 

  칠흑 같은 밤에 고속도로에서 나가야 할 나들목 지나쳐 다음 나들목으로 나와 들녘이 있는 국도를 달렸다 잘못 든 길은 언제나 지루하고 화나는 일이었으나 길가의 꽃과 작물들은 내게 정신 차려 전생같이 역주행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일렀다 세상도 바뀌었으니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화내지 말고 편안하게 살다가 제 명을 다하고 저승에 가라 타일렀다

 

  나는 수십 년 전 잘못 든 길에서 역주행하여 한차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 저승에서 옥황상제는 내 역주행의 여정을 알고는 다시 태어남을 허락했었다 또한 다시 잘못 든 길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모든 생명들에게 다시 역주행하지 못하게 길을 안내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내게 세상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았고 순응하고 살아야함을 강요했으며 작은 실수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도 잘못 든 길에서 내 많은 의지와 생각들이 죽었다

 

   

 

 

문자는 역사의 길이다

- 문자 문명전을 관람하다

 

 

 

 

전시장엔 붓을 든 이천년전 다호리*) 주민들과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였다

다호리 주민들은 목판에 글씨를 써 전시장 벽에 붙였으며

후손들이 적은 글씨를 읽으며 문자의 발전함에

감탄과 칭찬을 했다

 

다호리 주민들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죽은 자의 무덤에 붓을 넣었다

죽은 자들은 저승에서 이승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후손들은 무덤에서 붓을 가져오고 한지를 만들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록했다

 

붓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음을 알렸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태조가 즉위함을 공포했다

조선이 창건되었음도 알렸으며

대한제국이 외세에 굴복해 한일합방이 되었음도 알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며 해방이 되었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음을 알렸다

 

붓은 역사의 길에서 모든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였고

대성통곡하게도 하였다

 

 

 

 

*. 경남 창원시 북면 다호리. 철기 시대의 유물이 다수 발굴되었음



정선호/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내 몸

        속의 지구』『세온도를 그리다』『번함공원에서 점을 보다』가

        있다.